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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아모스 9:1-15)

기사승인 2020.01.14  17: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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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걷자

“숨어도 소용없고(3절), 망해서 천하에 불쌍하게 되어도 봐주지 않으며(4절), 심지어 죽어도 소용없다(2절).”

아모스 예언자가 마지막으로 선포하는 메시지는 비타협적이고 불관용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신앙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 말인 듯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악’이라는 추상적인 대상만을 미워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전쟁만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행하는 자와 사탄의 노예가 된 자들에 대해서도 심판을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뿐 아니라 죄를 범한 사람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의인이 겪는 환난은 사실은 시험과 도전이며 피할 구멍이 있으나(고전10:13), 악인이 당한 심판에는 피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죽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절).

▲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착각은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한다. ©Getty Image

회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불완전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죄인과 의인으로 나누는 기준은 “회개하는 믿음”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잘못으로부터 돌이켜서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가 의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 없는 철저한 심판을 선포하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이 사실을 일러주려 하셨습니다. 원칙 없는 관용, 근본 없는 포용, 처벌이 생략된 용서는 하나님의 자비와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 대하여 마지막 한 푼까지 다 받아내신 후에 용서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마5:26).

그러나 결벽증과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속죄할 의사가 분명한 사람에게까지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지 않고 무자비한 비난으로 난도질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돌아오게 하시는 심판이지 죽이는 것이 목적인 심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백성들은 또한 그분의 완전한 회복의 구원을 알게 됩니다(11-15절).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역사 가운데에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사43:19). 그리고 그분의 새 일은 ‘자비’와 ‘정의’라는 서로 대립하기 쉬운 가치의 연합으로 나타납니다.

자비로우면서 정의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을 본받는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온전하게 따라 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실 것을 믿는다면 실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갈6:9).

여상범 목사(제주노회) uptiger@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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