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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기사승인 2020.01.12  16: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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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초대(마태복음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부터 주현절이 시작됩니다. 주현절은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난 때를 기념하는 날로,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예물을 바친 때가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신 날이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짜나 동방박사가 방문한 날짜, 세례를 받으신 날짜 자체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난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지를 따지는 일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복음서에 나타난 어떤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났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또 그 사건이 정말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사건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마태복음만 기록하기 때문에, 그 날에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났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이야기는 4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기에 초대교회가 이 사건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또 이를 통해 주현절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세례를 받으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나타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의 경우 사탄에게 시험받으신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공관복음서는 공통적으로 세례를 받으신 후, 시험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고 보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굳이 설명 드릴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가진 육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 당시 에세네파의 예식인 세례를 일반 사람들에게 행합니다. 에세네파에서는 자신들의 일원이 된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주었지만, 세례요한은 회개를 위해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 모두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의 방식은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침례교에서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세례를 받는데, 과거처럼 완전히 머리까지 푹 넣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유아 세례를 주다가 사고가 많이 나서 이런 방식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머리까지 물 속에 담그는 방식을 취한 이유는 물속에서 육신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아마도 레위기 15장을 비롯한 여러 구절에 나타난 부정해진 사람은 몸을 씻고 저녁이 지나야 정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많은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셔야만 하는가?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는 완전하신 인간인데 왜 육신의 죄를 씻는 세례를 받으셨는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이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 점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을 아무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첨가합니다. 마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세례요한의 대사가 등장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는지 여쭈어봅니다.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마치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처럼 연출합니다. 죄를 씻는 회개의 세례가 아니라 이 땅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기름 부음의 의식입니다. 많은 성도님도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시는 장면을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경우는 또 완전히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의 증언으로 세례 장면을 바꿔놓았는데, 자신이 세례를 베푼 이유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발견하기 위함이었고, 자신이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내려오는 그분이 바로 자신들을 구원할 그리스도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개인의 체험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하였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마태복음이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런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립니다. 이 표현은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복음서마다 조금씩 세부내용이 달라서 깊이 말씀드리자면 끝도 없습니다만, 성령이 임하신 사건에 대한 차이점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는 모습을 예수님이 보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았다는 증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셨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은 성령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다고 말하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이를 본 것처럼 표현하고, 요한복음의 경우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세례요한의 증언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는 예수님에게만 들리는 음성입니다. 마태복음은 앞서 보셨지만, ‘이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사건을 예수님의 개인적 경험으로 그리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주변 사람 모두가 봤다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모두가 들었다거나 하는 주변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는 사건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

저는 오늘 예수님의 세례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을 따져서 각각의 복음서들이 어떤 의도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났다고 말하는 이 사건이 예수님의 사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의 머리 위에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임하였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독생자, 신적 권위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한 세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 기뻐하는 자라는 표현은 예수님에게만 한정된 표현일까요? 먼저 모든 복음서는 세례요한의 입을 통해서 증언합니다.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 예수님께서는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이런 능력은 제자들에게 이어집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세례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으며, 우리도 세례를 행할 때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고 믿습니다. 성령이 임하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특수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신의 죄를 씻는 물의 세례와 함께 마음의 죄까지 씻는 성령의 세례를 받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은 어떻습니까? 마태복음만을 가지고 예를 들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만 특수한 분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세례는 회개와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18장 12-14절을 보면, 잃은 양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99마리의 양보다도 잃었다 되찾은 한 마리의 양으로 인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성령에 의한 세례 역시도 마음의 죄를 씻고 다시는 죄의 길로 들어서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오늘의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만 특별하신 분이고, 우리는 그 특별한 분을 떠받들고 그분에게 간구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는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대

주현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는 전통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신이심을 강조하던 교회 집단에서부터 유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왜 끊임없이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만 올리려고 애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죄로 가득 찬 세상을 인간의 육신 그대로 살아오셨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겪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슬픔이 있는 곳에, 아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을 끌어 안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런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우리를 고통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신적 권위를 사용하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아픔에서 이기게 해주시기를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기를, 신적인 권능으로 한 번에 뚝딱 해치워 주시기를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다 아시니까 그냥 싹 다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오늘의 사건은 특별하시고 능력 있으신 예수님께 간구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되어 하나님 주시는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같이 그 평안을 세상에 전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우리를 예수님의 길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계속해서 이 질문을 던집니다. 끊임없이 평안을 얻지 못한 채 예수님의 평안을 구하기만 하는 사람이 될지, 예수님의 길에 동참함으로 그 평안을 얻어서 세상에 평안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지는 묻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길에 서 계시겠습니까? 여전히 세상의 근심과 걱정의 길에 서서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예수님께 간구하며 금새 사라질 평안의 조각만을 구하는 삶을 사실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그 길에 동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얻어 참된 평안을 누리시며, 세상에 평안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참 성도가 되시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참된 성도가 되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그 길을 걸어가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놓여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참된 평화,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 평화가 여러분의 안에 가득 차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을 평화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평안으로 여러분의 내면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차고 넘치는 그 평화와 기쁨을 세상에 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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