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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자의 죽음

기사승인 2019.12.09  17: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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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오신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며

성탄이 다가 온다. 주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오고 계시다.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오시는 하나님이 우주의 희망이다. 개혁이다. 혁명이다. 하늘에는 영광이며 땅에는 평화다.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오셔서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섬기고 사랑하시며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죽임을 당하시고 그로서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성육신에 전율한다.

아무 것도 아닌 자는 세상에 없다!

제목은 “아무 것도 아닌 자의 죽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는 없다. 생명을 만드신 분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존귀하며 소중하며 의미 있고 아름답다. 오직 세상에서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낮추어 보며 그렇게 규정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사람을 나라, 민족, 인종, 권력, 소유, 학력, 외모, 지위, 직업, 종교 등으로 점수를 매겨서 계급화 한다. 계급의 틀 안에 사람을 가두고 억압과 소외, 천대와 고립으로 무력화시키며 “너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 라고 세뇌시킨다. 영웅과 지배자, 독재자와 귀족, 특권층이 다스리는 제국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자들로 분류되어 그들의 소모품으로 숨을 죽인 채 살고 있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굼벵이처럼 뒹굴며.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나의 열등의식이 서로 통해서였을까? 20여 년 동안 나그네로 살면서 그 나라 또는 그 민족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규정하고 천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가장 먼저 만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나를 경악과 충격에 빠트린 인도의 다섯 번째 계급인 ‘달리트’와 여섯 번째 계급인 ‘아디바시’다.

호주에서는 백인에게 압제와 학대를 당하고 있는 ‘에버리진’을 만났고, 스리랑카에서는 ‘싱할리’에 의해서 학대당하는 ‘타밀’족을 만났다. 미얀마에서는 ‘버미’족에게 경계의 대상이며 각종 불이익과 제약을 받고 있는 ‘친’족을 만났다. 터어키에서는 ‘쿠르드’족을 만났고,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틴’ 사람들을 만났으며,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에 속하는 ‘조선족’을 만났고 콩고에서는 ‘피그미’들을 만났다.

그들이 다수의 횡포에 눌려서 두려워 떨며 신음하는 것을 도시 광야에서, 난민촌에서, 가난한 거리에서 보았다.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쓰레기처럼 불도저에 밀려서 고향을 떠나 뿌리 뽑힌 나무처럼 힘겹게 살고 있었다.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그들은 지금도 절망에 구렁텅이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들, 스스로 희망이 없는 그들에게는 오직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오시는 주님만이 희망이다.

주 예수여! 아무 것도 아닌 자들에게로 오시옵소서!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말은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을 순회하며 달리트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 달리트의 첫 인상은 지렁이였다. 비가 온 뒤에 지상에 나와서 물웅덩이에서 놀다가 햇볕이 내려 쬘 때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볕 아래서 몸이 말라서 죽어가는 꿈틀거리는 지렁이, 아무도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그들이 살아도 죽어도 그만이다.

▲ 예수는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세상에 오셨다. ⓒGetty Image

달리트들은 인도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재산을 가질 수 없고,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교육을 받을 수 없고, 공동 우물을 사용할 수 없고, 군대에 복무할 권리가 없는 천민 계급으로서 상위 계급들의 궂은일을 처리하는 도구에 불과하였다. 21세기가 되어 시대가 달라졌어도 그들은 농업 노동자로서 날품팔이며, 부쳐 먹을 땅이 없으며, 문맹이며, 자녀 또한 문맹이었다. 자기가 사람이라는 의식도, 인권 의식도 없는 그들은 때리면 맞고, 굴종하고, 모욕당하고, 헐벗고 굶주리며 몸마저 병투성이였다.

사람이 사람의 굶주림과 아픔을 방치하고 무시하고 짓밟으며 괴롭히는 것에 흥분하며 분노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달리트들의 고통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나는 마치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대변인인양 그들의 문제를 낱낱이 고하며 민원을 해결해 주시라고 호소하였다.

굶주리는 달리트에게 밥을 주시라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달리트에게 고기를 주시라고! 장애와 성인병에 시달리는 달리트를 고쳐 주시라고! 과로에 시달리는 달리트들에게 휴식을 주시라고! 자녀들을 단순노동자로 파는 달리트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라고! 만성 실업에 시달리는 달리트들에게 일자리를 주시라고!

나 자신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어서 복음을 전하며 밥을 주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자주 울었다. 때로는 배고픈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민망하고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턴가 내 몸 팔아서 달리트들에게 밥을 주시라고 기도하며 순회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캠벨병원이 있는 잠말라마두구는 나의 순회 거점 중의 하나였다. 오며가며 병원에서 쉬어 가는데 아이들 몇 명이 병원 캠퍼스에서 자며 구걸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로 고향과 일가친척으로부터 버림을 받아서 오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들 또한 부모님에게 수직 감염된 에이즈 환자로서 언제 무슨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들은 인도 사회에서 최고 천대를 받는 달리트 보다 더 낮고 더 천한 밑바닥에 자리한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달리트에게서 조차 차별과 천대를 받는 아이들, 그 어디에서도 존중과 예의, 친절과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인생은 축복이고,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를 잃고 버림받은 아이들의 삶은 이미 지옥의 입구에 있었다. 그들은 지옥의 불에 그슬렸고 추위에 얼었고, 외로움에 떨고 있었다.

달리뜨 마을 순회 속도를 조금 늦추고 에이즈 고아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20여 명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최선을 다해 만들면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차별과 천대, 소외와 고독은 나로서 해결해 줄 방법이 없었다. 병든 몸을 원망하며 잠 못 이루는 그들의 고뇌와 고통에는 손잡고 울며 기도해 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일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 선교센터로 알려져서 조사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인도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몸은 한국에 있어도 나의 마음은 둥둥 인도를 떠다녔다. 내 마음이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 살고 있는 데칸고원 달리트마을과 에이즈고아원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트마을은 희미해졌지만 샨띠홈의 에이즈 고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졌다.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아무도 다정하게 불러 주지 않는, 아무도 품어주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자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눈물짓기도 많이 하고 이름 없는 풀꽃을 볼 때도 아이들을 떠올리며 울고 웃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밀입국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인도에 있을 때 보다 용돈과 절기 선물들을 더 챙겨 보내면서 만날 날을 고대하였다. 만나서 함께 얼싸안고 뒹굴 날을 기다리며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지난 9월 추석 명절 전에 샨띠홈에서 한 아이가 죽었다

그는 양쪽 부모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고, 부모로부터 에이즈에 수직 감염되었고, 할머니나 삼촌 등 친인척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친구 없는 외로움에 떨었고, 5, 6세 때부터 에이즈 환자 병동에 버려진 아이였다. 어린 그의 외로움과 침묵 속에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나는 아무리 세상이 냉혹해도 우리가 사랑으로 그 아이의 울타리가 되면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눈이 크고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원체 말이 없고 수줍었다. 우리 샨띠홈의 연장자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에 맏형 노릇하며 가오를 잡을 법도 한데 그는 무슨 일에나 양보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순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부터 그 아이가 10여 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결석 통보를 받았다. 그가 그 주간에도 샨띠홈 친구들과 함께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결석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결석에 대하여 변명하는 존 바부 눈에 눈물이 파도쳤다.

“우리 반 애들이 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요. 아침부터 오후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아요. 모두들 제가 없는 것처럼 저를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말해요. 그리고 선생님조차도 저를 무시하고 자주 부모님의 직업을 물으면서 창피하게 만들어요. 교실이 무섭고 끔찍한 지옥이예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르르 전기가 흘렀다. 개구쟁이로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행복해야할 아이가, 날마다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침묵의 고문을 당하며 홀로 고독과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는 다는 사실과 우리의 보살핌이 아이에게 위로와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존 바부는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취급하며 잔인하게 무시하는 냉혹하고 살벌한 교실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수줍고 내성적인 그는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아무에게 말하지 않고 말없이 저항하는 결석을 택하였다. 그러나 교사와 우리 어른들은 그의 고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의 절규는 ‘외롭고 힘들어서 못 살겠으니 제발 나를 고통에서 구해 주세요. 저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저를 지옥에서 건져주세요.’라는 아무 것도 아닌 자의 피눈물이었다.

부모님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일찍부터 세상의 차별과 소외를 느끼며 외로움과 두려움에 신음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순간, 어미의 심정으로 냉혹한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며 아이들에게 세상을 이길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절박한 부담감과 깊은 고뇌를 느꼈다. 세상은 존 바부 뿐 만 아니라 에이즈 고아들 모두에게 냉정하고 잔인하며, 무례하고 폭력적일 것이었다. 하루바삐 아이들에게 세상 이길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할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불시에 인도로부터 추방을 당하였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마음뿐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지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인도에서 나온 후, 세상을 떠돌며 유배살이를 하는 중에 나에게 힘과 위로를 준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었다. 그들의 사랑과 기도가 나에게 견딜힘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다시 얼굴을 마주할 날을 기다린다!

내년이면 귀양살이가 풀리고 서로 기쁜 얼굴을 마주대할 것인데, 존 바부가 가혹한 세상과 운명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왔다. 20세 꽃다운 그가 피기도 전에 죽었다. 그가 죽기 전에 샨띠홈 동년배들에게 했다는 말이 가슴을 팍팍 찔렀다.

“아무리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친구 삼아 주지 않고, 사랑도 결혼도 할 수 없고, 가정을 이룰 수 없는데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세상이 나에게 이토록 가혹한가? 이토록 짓밟는가? 이토록 무정한가? 이제 더 이상 살아야할 이유도, 힘도 없다.”

아무 것도 아닌 그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내 가슴에 묻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그를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서 가슴에 묻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아무 것도 아닌 자로 세상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다. 아무 것도 아닌 자로서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복음 안에서 만남이 우주적인 축복이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은 희망이다. 개혁이다. 혁명이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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