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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영광”

기사승인 2019.12.09  17: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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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수많은 찬양과 고백의 주제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 그 의미를 모르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합니다. 삐딱하게 보자면,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 장신구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 가부장적 문화가 전제된 수직적 사회구조의 언어가 수평적 사회구조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감성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요한13:31) 예수님도 하나님의 영광을 중시하십니다. 그러나 인자, 사람의 아들도 영광을 받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장신구가 아닙니다. 게다가 그 영광의 모습이 놀랍습니다. “이제는”의 시점이 관건입니다. 무엇으로 인자도, 하나님도 영광을 받았는가? 그 문맥은 가룟 유다가 배신 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 그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요한13:21~27)

어떤 놀라운 기적이나 성취로 인해 영광스러워진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살린 게 아닙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려는 제자 가룟 유다의 뜻을 허락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말씀하신 후에 이제는 영광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이건 어떤 영광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면, 이런 영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김옥순 수녀, 「착한 목자」

하나님은 인간을 허락하십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과 씨름한 천사, 그는 결국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고 선언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인간인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과 겨뤄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야곱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강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강제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제한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과 겨뤄 이긴 자가 되는 순간,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심으로 인간 야곱에게 승리를 허락한 자, 스스로에게 패배를 허락한 자가 됩니다.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순간, 그 약하디 약한 아기의 몸으로 임하신 순간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인간 그 누구든 하나님을 죽일 수 있게 허락하셨습니다. 장성한 청년의 예수로서 저항하고 압도할 수 있건만, 거부하고 배반하고 죽일 수도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 허락이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받은 영광의 순간입니다. 이 허락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인해 받으신 영광입니다. 부활절만이 아니라 사순절 십자가의 길 자체도 그래서 영광의 절정입니다. 부활이 어쩌면 십자가의 영광이 남긴 빛의 잔영은 아닐지.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이 익숙한 주제, 뭉클한 찬양을 다시 읊조려 봅니다. 더 이상 이 고백은 세상이 침 흘리는 영광을 구하는 기도일 수 없습니다. 승리를, 성취를, 명예를 향한 집착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손에 심장을 내어주겠다는 고백입니다. 사랑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자가 약자입니다. 모든 힘을 내려놓고 기꺼이 약자가, 패배자가 되겠다는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그리 하셨듯이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내 삶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사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나의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빼앗긴다 해도 사랑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찜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렵고 과분합니다. 가슴 찡하고 더 없이 아려옵니다. 또한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정녕 하나님께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만이 가능케 하실 테니까.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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