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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설레는 삶의 현재”

기사승인 2019.12.05  01: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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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 … 23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누가복음 11:14~23/새번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몰아내는 것이라면, 하나님 나라가 확실히 여기 있는 것이다. … 이것은 전쟁이며, 중립지대는 없다. 내 편이 아니라면, 너희는 내 적이다. 돕지 않으면 방해하는 것이다.(메시지성경)

하나님 나라가 이미 온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땅의 문제가 아니라 뜻의 문제고, 속지(屬地)주의가 아니라 속지(屬志)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에 깨어 참여하는 자리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랑이 귀신을 몰아내는 삶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늘 이어지고 있고, 이미 이르러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그 뜻 안에 있느냐, 그 뜻 밖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함께 모으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 Vladimir Kush, 「Walnut of Eden」

자연스레 물음이 따라옵니다. 내 안에서는, 내 삶에서는, 내 관계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귀신을 내쫓고 있는가? 귀신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주님과 함께 하며 함께 모으는 사람인가, 아니면 반대하며 헤치는 사람인가? 이런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믿습니까, 구원 받았습니까?’라는 물음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성경을 몇 번 읽었고, 주일을 성수했고, 십일조를 얼마나 했는지가 아닙니다. 얼마나 감동적으로 설교하고, 교회를 얼마나 부흥시켰으며, 기도로 얼마나 기적으로 일으켰는지도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의 삶”이 필요하고, “삶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삶은 하나님의 현존과 사랑을 향해 자신을 열어 드립니다. 삶으로 기도하면, 사랑과 살림으로 돌이켜 응답합니다. 기도의 삶과 삶의 기도가 이미 하나님 뜻이 이뤄지는 현존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열어 드리니, 자연스레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응답이 열매로 맺힙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열매 맺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곧 하나님 자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니 곧 교회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그러므로 정답의 소유일 수 없습니다. ‘구원 받았다’라는 과거일 수 없습니다. ‘구원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라는 현재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까?’일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습니까?’일 뿐입니다. 언제나 두렵고 설레는 삶의 현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두려움과 떨림으로 물음 앞에 섭니다. 지금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지금 나는 구원 안에 있는가? 지금 내 등에는 주님 주신 십자가가 있는가? 이미 온 하나님 나라를, 그 뜻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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