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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선택된 자들만의 천국

기사승인 2019.11.07  17: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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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5 거기(베데스다 못)에는 서른여덟 해가 된 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6 예수께서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을 아시고는 물으셨다. “낫고 싶으냐?” 7 그 병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에는,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9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다리 저는 환자들과 중풍병자들이 누워 있던 베데스다 못,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을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병이 나았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기회가 왔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먼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탄합니다. 너무나 희박한 단 하나의 가능성은 과연 희망이었을까? 같은 아픔을 가진 이웃을 미워하게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원망하게 하는 희망이 정녕 희망인지. 베데스다, 자비의 집이라 불렸지만 한 사람만을 위한 자비는 과연 자비일 수 있을까? 99%가 패자고 1%만 승자인 경쟁은 승자에겐 자기도취를, 패자에겐 자기비하를 안겨주는 악순환의 덫이 아닙니까. 청년실신의 시대, N포세대라는 말조차 익숙하다 못해 잊혀져가는 오늘을 돌아보게 합니다.

도저히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인생에게, 38년 된 환자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접근은 파격입니다. 마음을 위로해주시거나 남보다 먼저 못에 닿도록 부축해주시거나 혹은 “치유 될지어다!” 능력의 말씀으로 치유해주시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한복음5:8,14)

▲ Sarolta Bn; “자물쇠도 문도 벽도 없는 자유와 사랑의 들판에서 함께 춤추지 못합니다. 1등, 승리, 성공, 부…라는 열쇠를 끌고 가느라.”

일어나서 스스로 걸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신만 먼저 살겠다고 경쟁하고, 앞선 이는 미워하며 정죄하는 그 자리가, 남이 도와줄 때까지, 천사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그 자리가 죄라는 말씀이 아닐지.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고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조차 등지는 자리, 자기비하와 자포자기에 빠져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리가 죄의 자리가 아닌지.

내 자식만 경쟁을 뚫고 승자가 되면 하나님께 영광일뿐, 일류대만 들어가면 승자독식이 가능한 구조적 불평등과 부조리는 그대로 용인하는 자리가 죄의 자리가 아닌지. 학벌주의는 당연시 하면서 기회의 평등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리가 죄의 자리 아닙니까. 나만, 우리만 성공하는 천국은 배제된 이들의 고통을 텃밭 삼은 지옥이 아닙니까. 지옥은 살아남은 자들만의 천국을 부르는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 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나라는 냉정한 명령이 주님의 사랑이셨습니다. 그 길만이 참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살자는 죽음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삶의 길, 서로를 살리는 살림의 길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털고 일어나 걸어 가야할 방향은 베데스다 못과 반대방향일 것입니다. 경쟁해서 혼자 사는 길이 아니라 서로 함께 상생하는 길!

칠포세대, 청년실신을 향해서도 주님 같은 명령을 하실까? 혹시라도 누군가의 기도가 나만, 우리 가족만 이 무한경쟁의 승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라면, 같은 명령이 아닐지. 일어나서 그 욕망의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 명하시지 않을지. 나만, 우리가족만을 위한 기도는 이 부조리한 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고, 서로를 향한 참된 사랑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절망의 시대를 향한 위로와 희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참된 희망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사는 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 아들만, 내 딸만 살려달라는 기도는 응답 돼도 지옥이 아닙니까. ‘모두 함께’가 아닌 천국은 사랑에게 지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는 길이 어떻게 가능할까? 난제입니다. 하지만 38년 된 환자는 다만 일어나 걸어갔을 뿐입니다. 진정한 바람이 있다면, 그 바람이 곧 길입니다.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주님이 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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