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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性·誠의 여성신학 관점에서 본 박순경 통일신학과 세계(진실) I

기사승인 2019.11.02  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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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5)

박순경 통일신학과 그리스도 케리그마

이상에서처럼 앞에서 길어진 탐색을 거쳐 박순경 통일신학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그녀 신학의 시작점이자 핵심관건이고 목표가 되는 민족의 분단과 피압박의 상태를 어떻게 넘어서는가의 문제이고, 그 모든 수난과 고통의 과정에서 겪은 민족적, 민중적, 여성적 체험들을 어떻게 한민족과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문명사적 의미로 확대 해석해낼 수 있을까의 물음이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우리 민족이 그녀가 젊은 시절 사고의 출발점에서 만난 이스라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나고, 그 구원사적 계약을 이어받아서 세계를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약속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2019년 우리의 현실을 어떠한가? 그녀가 그토록 비판적으로 지적한 미국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온 사회적 삶을 뒤덮고 있고, 거기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서 오늘 한국교회의 물질주의적 타락은 더 이상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한 교회들이 주동이 되어서 반공기독교의 선봉장이 되어 미국기와 이스라엘까지 들고서 거리에 나와 타도 북한을 외치면서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프로세스를 반대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일찍이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의미지우면서 그 한 배후로 지목한 미국 제국주의적 지배는 트럼프 정부에 들어서서는 지금까지 그래도 지켜왔던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체면도 내려놓고 전방위적으로 한반도의 삶을 옭죄어 온다. 거기서의 자주성과 주체성, 독립성의 훼손은 말할 수 없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분단 상황의 유지를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군사적, 경제적 부담으로 민중들 삶은 더욱 더 피폐화되고 있다.

1988년 3월30일 한국여성들의 고유한 ‘88선언’을 선포한바 있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주관의 민족통일에 관한 여성신학정립협의회에서 여성민중목회자 조화순은 “우리가 계속 당하면서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분단 때문이라고 조금만 이유를 설명해 주면 금방 확산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라고 언술하며 “이제 이 통일의 문제까지도 저 아래로 내려가서 밑바닥의 문제로부터 위로 치받쳐 올라오는” 방식으로 여성들이 앞장서자고 촉구하였다.(1) 또한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여성신학회가 ‘민족’의 문제를 주제로 삼아서 한국여성신학을 성찰한 『민족과 여성신학』에서 최영실은 한국교회에서 인습적으로 해석해 온 예수 산상수훈의 이야기가 어떻게 여성들과 민중들의 의식을 오히려 비주체적으로 만들고 불평등과 불의를 심화시키는 의식으로 오용되어왔는지를 분명히 밝혀주었다.(2) 이런 한국 여성신학자들의 전통 신학에 대한 전복적인 성찰과 성토에 함께 하면서 나는 오늘 한국 교회와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살펴본 박순경 통일신학이 어떠해야 할런지를 다시 생각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본인의 聖·性·誠의 여성신학과 간략하게 연결해 보면서 어떻게 그 통일신학이 오늘의 변화된 상황 속에서는 다시 세상과 교회 밖의 다른 세계를 향해서 더 크게 열려야 하는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본인이 보기에 박순경의 신학은 그것이 무르익었던 8-90년대 관점과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최근의 입장도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너무 기독교 신앙 중심적이고 성속이원적이다. 그녀가 기독교 하나님과 그 구원사가 모든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면서 ‘역사적’이고, 이 세계 안의 구체적 삶과 사건을 통해서 현현된다고 계속 강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대기독교 중심적이고, 남성예수 중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그러한 박순경 통일신학의 핵심에 ‘예수 그리스도론’이 자리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그녀의 ‘부활’ 이해가 있다고 본다. 그녀의 신학이 매우 삼위일체론적으로 성령론 중심적이고, 그래서 그 안에 이러한 경색을 피할 가능성을 많이 담지하고 있지만, 그녀가 성속의 종말적 하나됨을 강조할 때 쓰곤 하는 ‘묵시적 종말론’도 결국 2000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의 ‘부활’에 대한 고정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라고 본인은 이해한단다.

이것은 그녀가 초기 요한복음의 예수 언어로 체험한 자신의 존재사건(‘다 이루었다’)과 그것을 칼 바르트의 로마서 신학으로 확인한 후 그녀의 영 이해와 부활 이해가 거기에 고착되어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부활은 명멸(明滅)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며,(3) 그녀가 “삼위일체적 하나님 신앙은 결코 형이상학이 아니다”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해도 그녀 신학이 하나의 형이상학적 실체론으로 굳어버린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가 앞의 탐색에서 여러 모양으로 밝혀보고자 한 대로, 2014년의 저서에서도 한민족의 고대창조설화에 대한 더욱 더 과감한 인정과 끌어들임에도 불구하고 유대 기독교의 하나님과 한민족 신관의 관계를 “반립”(反立)이라는 언어로 정리하고, 새 교회, 새 생명의 창조의 어머니 마리아의 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집중을 거두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은 이렇게 될 때 그녀의 ‘한민족’의 신학, 그녀의 ‘物’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 ‘어머니’와 ‘여성’에 대한 인정이 과연 어느 정도로 오늘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되겠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는 것이며, 그녀가 그토록 그 ‘복권’을 위해서 애를 쓴 주체들의 실제가 그렇게 되면 여전히 종속의 상태이고, 결국 한국 신학은 또 하나의 서구 신학에의 종속이고 아류가 아닌가 하는 회의적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와 사회의 현실을 볼 때 그녀가 그처럼 비판했던 서구 자본주의 선교사 신학과 반공기독교, 그리고 그 안에서 서구 중세보다도 더 심각한 남성 성직자들의 현존을 보면서 그러한 의심이 들고, 박순경 통일신학의 한계와 그 안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 기독교신학의 배타성과 독단주의적 속성이 다시 떠오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한계와 불철저성을 나는 한국의 박순경 신학에서뿐 아니라 오늘 서구(미국)에서 지금까지의 ‘전통’, 또는 ‘정통’ 신학을 넘어서 그 견고한 폐쇄성을 성령론적으로 더욱 급진적으로 ‘탈’하려고 한다는 최근의 여성신학에서도 본다. 지난 봄에 한국에서도 번역 소개된 미국 여성신학자 셸리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이 내가 만난 예이다. 여기서 저자는 비서구사상과 생태주의와의 대화로 서구에서 다원주의 신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는 캐더린 캘러의 여성신학에 많이 기대면서 자신의 신학을 성령론적으로 보다 확대하기를 원했다. 그 일을 위해서 그녀가 새롭게 집중하는 것은 죽음의 성금요일과 부활의 성일요일 사이의 중간기인 ‘성토요일’이다. 그녀가 그러한 성토요일의 신학이 오늘 21세기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된 삶과 죽음이 혼재된 ‘트라우마’의 현실에 보다 적실하게 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4) 하지만 그녀도 그 예수 ‘부활’ 이해에서 다시 흔들리고, 요한복음 19장 30절의 예수가 신포도주를 맛보신 후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의 영(spirit/pneuma)을 넘겨주셨다’라고 한 증언으로부터 그 예수에게서 마지막으로 넘겨받은 영이 ‘하느님’의 영인지 ‘예수’의 숨(영)인지, 아니면 생전에 예수가 자신이 가고 나면 제자들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한 ‘성령’인지 등의 구분을 물으면서 여전히 예수 부활의 유일회성과 그 특이성에 매달리는 모습이다.(5)

나는 이러한 모습이 그녀 신학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회성에 대한 강조이고, ‘영’으로서의 실재 이해가 철저하지 못해서라고 여긴다. 다시 말하면 저자가 캐더린 켈러의 ‘테흠’(tehom, 심연)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창조와 부활도 직선적이고 일회적인 것보다는 반복되고 지속되는 나선형의 ‘되어감의 사건’(continual becoming)로 이해하지만 그러한 이해를 분명하게 예수부활 사건에까지 적용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6) 그런 이해는 그러나 나 본인의 견해로 보면 기독교 신앙의 보다 근본적인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여성신학이 그렇게 넘고자하는 전통신학의 ‘(남성)그리스도우상주의’와 그 그리스도에 의한 ‘부활’의 독점을 넘지 못하는 모습인 것이다.

한국토착화 여성신학자로서 본인은 여기서 그러한 일이 결코 유대 기독교 전통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 일은 과감히 유대기독교 전통 밖으로 나가는 일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지점에서야말로 인류의 다른 종교 전통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 몸의 죽음과 영, 그 이후(以後)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7) 이와 더불어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5.18광주항쟁이나 지난 2014년의 4.16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대면한 끔찍한 트라우마의 현실에 보다 깊숙이 다가가서 여러 차원의 영의 현현 이야기, 남은 자들의 실존적 변화와 사회적 부활의 이야기들을 경청할 때 우리는 보다 더 부활의 ‘실제’(reality)에 다가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본인의 聖․性․誠 여성신학의 부활 이해이다.(8)

박순경 통일신학 그리스도론의 한계를 넘어서서 주체사상과 대화하기

박순경은 불트만 등의 비신화화도 한편으로 세차게 비판하면서 예수의 부활사건을 철저히 내면화하거나 또는 정치신학화 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가 특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예수 부활의 유일회성을 건드리는 일이다. 그녀에게서 그 일은 생각할 수 없는 더 이상 넘어서서는 안되는 경계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편으로 언제든지 민족통일은 한민족 전체에 관계되고, “세계문제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적 주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면서 “서양 기독교와 신학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건”이라고 밝힌다.(9) 그녀는 “민족들을 연합시키는 구심점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그녀의 신학 안에 세계 인류문명사 전체를 포괄하기를 원하는 것이다.(10)

물론 여기에 대한 답으로 그녀는 유대 기독교의 ‘창세기’로부터 시작되는 ‘창조자·구원자 하나님’을 말할 것이고, 그로부터 전개된 예수사건과 그 부활사건의 성령론으로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보다 후세대로 태어나서 오늘 인류 하나됨의 문제가 단지 종교의 일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세속’과 ‘보편’의 일이기도 하고, 유대기독교 문명과 나란히 할 수 있는 다른 문명들을 동시에 마주하는 본인에게는 그녀의 그러한 답이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물론 본인도 ‘신앙’과 ‘계약’의 의식을 유대 기독교 전통의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처음 얻었지만 그것이 곧 다른 종교 전통들을 배제 내지는 ‘개종’의 형태로 차등화 시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박순경 통일신학이 제일 관건으로 삼는 북한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위해서도 그와 같은 배타주의적이고 단편적인 ‘부활’ 의식은 변해야 한다. 그녀는 말하기를, “주체사상이 말하는바 ‘집단의 영생’은 민족에 뿌리박고 있으며, 민족공동체 이상을 가리키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했다.(11) 하지만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그녀가 제안하는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결국 다시 일종의 ‘선교’가 되어서 그 대화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최근 재미 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가 내놓은 『북녘의 교회를 가다-최재영 목사의 이북 교회 제대로 보기』에 보면 그는 평양 시내 한복판에 서있는 ‘영생탑’(永生塔)과 관련해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영생탑이 기독교의 ‘부활교리’를 복사한 듯이 느껴졌지만, 그는 거기에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그 주체사상이 강조하는 인간이해, 다시 말하면 육체를 가진 개인의 생애는 유한하지만 그가 속했던 사회와 집단은 영원하다는 ‘사회정치적 생명’으로서의 인간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12)

본인은 주체사상에 대한 이러한 전적인 탈신화화와 세속화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박순경의 신학적 이해가 만약 ‘부활’에 대한 다원성의 인정에 있어서 좀 더 열려있다면 주체사상과의 대화도 훨씬 더 그 존재성을 인정하면서 동등하고 평등한 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서구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선교를 그렇게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박순경 신학의 배타적인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보완 내지는 다른 구원론과 더불어 ‘가종’(加宗)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미국에서 통일운동 단체를 설립해서 남북 양쪽을 왕래하며 “북측의 종교 실태를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는 위의 저자 최재영 목사는 2015년을 전후해서 약 4년 동안 이북의 교회와 그곳의 여러 종교들의 실행을 돌아본 결과, 남북 분단으로 인한 남쪽 내부사회 갈등의 본질은 “좌우 이념 대립이라기보다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다”고 지적한다.(13) 즉 진지한 사상과 성찰의 문제라기보다는 왜곡과 거짓과 자기주장이 난무한 증오와 편견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왜곡을 걷어내고 북쪽의 교회공동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북쪽의 인민들이 오랜 동안 피땀 흘리면서 지켜온 민족정신과 자주정신을 근거로 해서 “주체 문화가 뿌리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일구어진, 참으로 유일한 한민족적 교회라고 한다. 그래서 거기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은 주체 문화와 공존하며 민족종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라고 평가한다.(14)

한반도의 민족종교와 주체사상 그리고 북한의 ‘가정 교회’

이것은 대단한 주목이고 발견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저자는 거기에서 전후 북한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처소 교회’나 ‘가정 교회’들을 그 고유한 모습으로 들면서, 목회자를 따로 세우지 않고, 교회당을 별도로 가지지 않으면서 가정에서 소수의 그룹이 모여서 기독교 신앙을 지속해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한국전쟁을 혹독하게 겪은 주체사상의 북한사회에서 교회가 토착화된 모습이라고 해석해 낸다. 박순경 선생님도 강조하셨지만 6.25전쟁의 파괴와 피해는 20세기 어느 전쟁보다도 커서 300만 명 이상의 인명살상을 초래했고,(15) 특히 미국이 개입한 북한지역의 피해는 엄청나서 전쟁 시기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엔 단 한 채의 교회당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 참혹함을 직접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그래서 미국의 실체를 제국주의로 받아들이면서 철저한 민족주의로 뭉쳤다고 한다.(16)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 이전에 조선인이어야 하는 절박한 현실 속에 살아왔고, 철저한 민족주의적인 기독교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강조해서 남한 교회가 ‘예수와 성공’을 함께 품었다면 북의 교회는 ‘예수와 민족’을 품고 이어온 것이라고 한다.(17) 남측 교회의 최대 미션이 ‘선교’ 또는 ‘전도’라면 북측 교회는 그런 맥락에서 ‘조국통일’ 혹은 ‘민족통일’을 가장 큰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18)

우리가 익히 들었듯이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1926)은 평양 숭실학교를 다녔던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고 한다. 그는 항일투쟁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일찌감치 ‘지원사상’(志遠思想, 뜻을 원대하게 하라)을 통해서 민족의 자력으로 광복을 이룩하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위의 책 저자 최재영 목사는 이러한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도 소개하면서 특히 그가 1913년 숭실학교 친구들과 더불어 평양 ‘기자묘’(箕子墓) 숲을 방문하여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서했던 일을 소개한다.(19) 또한 그 행적으로 한민족의 창조설화인 단군신앙과 관련해서 중요한 산인 황해도 은률군 구월산(九月山)에서의 일도 전해준다. 기독교측에서 보면 이 은률군에는 장로교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가 전도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은률읍 교회당이 있었고, 지금은 ‘은률군 김형직 혁명사적관’이 되어서 그 교회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은 살아생전 이곳 은률교회를 구심점으로 삼아서 교인들과 반일인사들을 규합해서 반일활동을 하고 항일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20)

이상의 일들을 모두 함께 생각해 보면, 북의 주체사상은 박순경 선생님도 많이 강조하셨듯이 단순한 마르크시즘의 추종이 아니라 한민족의 시원과도 연관되고, 특히 항일민족항쟁과 깊이 관계되며 거기에 기독교 신앙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매우 통합적인 안목에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민족의 시원과 관련한 구월산은 바로 일제 시기 3.1운동 후 항일항쟁을 가장 치열하게 이끈,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의식으로 전 세계와 우주를 품에 안았던 한국 대종교(大倧敎)의 창시자인 나철(羅喆 1863-1916)이 민족증흥과 독립, 세계개조를 기원하면서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21) 이러한 모든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박순경 통일신학이 북의 주체사상과 대화하려고 하고, 좁은 서양기독사 위주의 구원사를 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 도래의 종말적 의미를 한민족의 역사와 체험으로부터 규정하려고 한 일이 그 안의 한계와 불철저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선생님도 지속적으로 언급하셨지만, 현재도 북한은 6.25전쟁이 정전된 후 미국과 지속적으로 대립 가운데 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독특한 교회형태인 가정 교회 제도를 정착”시켜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북측의 교회에게 그래서 우리 남측의 교회와 신학은 오히려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무조건 북한을 왜곡하고 악마화 하면서 오히려 친일과 친미, 친이스라엘을 외치는 한국 보수교회의 신앙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복음적인가는 그래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미주

(미주 1) 조화순, “민족통일은 여성의 발로부터”, 제5차 한국여성신학 정립협의회 개회예배 말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여성신학과 민족통일-제4,5,6차 여성신학정립협의회 보고서』, 143쪽.
(미주 2) 최영실, “산상설교를 통해 본 민족의 분단 극복과 화해의 길”, 한국여성신학회 엮음, 『여성신학사상 제6집 민족과 여성신학』, 한들출판사, 2006, 66-86쪽.
(미주 3) 이은선, 한국 페미니스트 그리스도론과 오늘의 기독교“,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종교聖․여성性․정치誠의 한몸 짜기』,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1, 82쪽 이하.
(미주 4) 셸리 램보 지음, 『성령과 트라우마-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박시형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9.
(미주 5) 같은 책, 229쪽.
(미주 6) 이은선, “성토요일의 성령론과 여성신학적 조명”, 한국기독교연구소/ 새물결 공동주관, <트라우마에 대한 신학과 목회 세미나: “죽음과 삶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 자료집, 2019년 4월15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1세미나실, 20-26쪽; 온라인저널 m.ecumenian.com/ 2019.04.20
(미주 7) 이은선, “삶의 신학의 한 주제로서의 죽음, 죽음에 대한 종교다원적 성찰”, 『삶의 신할 콜로키움 생로병사관혼상제』, 대화문화아카데미, 2007, 172-202쪽.
(미주 8) 본 논문에서 이 주제에 대한 성찰들을 모두 살필 수 없지만 다음의 글들이 그 핵심을 드러내기를 희망한다; 이은선, “세월호 참사와 우리 희망의 근거: 세월호 1주기, 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인가?”; “부활은 명멸(明滅)한다: 4.16 세월호 2주기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 117-128; 129-164.
(미주 9)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63, 69쪽.
(미주 10) 같은 글, 81쪽.
(미주 11) 박순경,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 같은 책, 135쪽.
(미주 12) 최재영, 『북녘의 교회를 가다-최재영 목사의 이북 교회 제대로 보기』, 동연, 2019, 414-415쪽.
(미주 13) 같은 책, 5쪽.
(미주 14) 같은 책, 6쪽.
(미주 15) 박순경,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 『통일신학의 여정』, 126쪽.
(미주 16) 최재영, 같은 책, 62쪽.
(미주 17) 같은 책, 329쪽.
(미주 18) 같은 책, 458쪽.
(미주 19) 같은 책, 120쪽.
(미주 20) 같은 책, 128-136쪽.
(미주 21) 이은선, “3.1운동 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 변선환 아키브 편, 같은 책, 40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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