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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기사승인 2019.11.02  18: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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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리교 운동권으로 설움받으며 목사안수 받은 이야기

인천구치소에서 한달하고 반쯤 살았을까? 그런데 1심 재판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나를 그냥 석방시켜준다. 나가라는데 안나가고 버틸 필요야 없지만 그래도 도대체 이해가 안되니까 교도관에게 물어 보았다. “아니, 어디로 이송되는거요? 석방되는거요?” 그랬더니 교도관은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석방시키라고 해서 석방시키는거다. 당신이 무슨 빽이 있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석방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뭔가 석연치 않은 출소?

기소유예인지? 기소중지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기소가 안 된 것인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내보내주니까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 기억속에는 한달 반 기간은 인천구치소에서 일반범들과 함께 구금생활을 했는데 실제 기록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그걸 악착같이 알아볼 이유도 없고. 그래서 내 인생에는 한달 반이라는 유령의 삶의 기간이 생겨버렸다.

물론 추론해 볼만한 일은 있었다. 92년은 내가 목사안수를 받는 해였다. 다만 구치소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목사안수는 틀렸구나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갑짜기 구치소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다시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온 것이다.

4월이면 내가 소속된 감리교 중부연회가 숭의교회에서 열리고 연회가 끝날 때 쯤에는 목사안수식이 거행된다. 나를 안수할 목사로는 조화순 목사를 세웠다. 내가 연회장소인 숭의교회에 나타나자 많은 선후배들이 관심을 보인다. 관심 정도가 아니라 감격이라 표현해야 하나? 도대체 김정택이라는 인물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사안수를 김정택도 받게 되다니 이건 분명 하나님의 은총일 수밖에 없다는 뭐 그런 표정들이다. 모두들 정말 기쁘게 환영해 준다.

허기야 나도 돌이켜 보면 어떻게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구속될 때마다 자동적으로 학교는 퇴학당했으니 졸업은 틀렸구나 했더니 그래도 1985년 유화국면에서 복학이 되더니 기막히게 14년만에 감신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목사 자격 따는 것도 자꾸 법이 바뀌는 바람에 개척교회 담임을 3년 해야 하는데 마침 민중교회 운동의 태동과 함께 송현산마루 민중교회를 개척해서 3년을 채워  목사가 될 자격을 취득했으니 참 감격적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한경수 감독의 사회로 드디어 연회가 시작되었다. 목사는 정회원-감리교 제도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 자가 교회를 담임하여 3년간 전도사를 하면 목사안수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목사안수를 받고 또 2년이 경과해야 정회원이 될 수 있다.-에게만 연회회원 자격이 부여되기에 나같은 준회원들은 참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준회원들이 정회원들의 연회책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준회원 진급자 명단에 김정택, 송병구, 서구석, 서정문은 진급이 1년 유급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기록이 고쳐지지않고 그대로 연회가 마치면 세 친구는 지난 해에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정회원되는데 1년이 늦어지는 것이 되고 김정택은 아예 목사안수를 못받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 현 인천 만수감리교회 ⓒGetty Image

휴식시간이 되자 감리교 운동권 준회원, 정회원들이 모였다. 4인의 유급사태를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함을 서로 인식하고 우선은 정회원들이 연회가 속개되면 감독에게 따져 물어 이유를 밝히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그 결과에 따라 다음 행동방향을 잡기로 하였다.

회의가 속개되자마자 정회원 운동권들은 사회자에게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어떤 이유로 네 사람만 유급시켰는지 이유는 밝혀야 한다는데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장내의 분위기가  감독이 이를 설명해야 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자 감독은 아주 자신있고 무게감 나가는 소리로 네 사람은 준회원 영성수련회 때 대자보를 붙이고 준회원들을 선동하고 감독에게 항명을 했기때문에 유급을 시켰다고 말하였다.

장내가 시끌시끌 해졌다. 사방에서 참관하고 있던 준회원들이 그게 무슨 유급 이유가 되냐고 다들 소리를 질렀다. 감독이 참관자들은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발언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발언을 하면 퇴장시키겠다고 윽박질렀다.

수련회 사건은 분명 있기는 있었다. 그렇지만 패기가 있는 젊은 신학도라면 그럴만도 했다. 전에는 없었던 준회원 영성수련회를 한경수가 감독이 되면서 처음 설치했기 때문이다. 송병구가 “이건 아니다. 후배들 군기를 잡으려는 것 같은데 이건 문제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대자보를 쓰고 형님도 연명 하시죠.” 해서 나도 “그래!” 하고 이름을 올렸다.

대자보에는 많은 친구들이 연명했는데 그 중에서 운동권 네 명을 한경수가 꼭 찝은 것이다. 운동권 정회원들이 그 수련회는 진급과 상관이 없지 않느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준회원들만 참여하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유급을 시킬 이유가 되느냐? 누가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했느냐? 당신이 감리교에서 법도 무시하고 독재자냐? 등등등.

회의는 한감독에 대한 비판과 항의로 메꾸어지고 있었다. 운동권과 친한 중진목사가 나서서 연회 기간 중에 임원들이 협의해서 유급을 철회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수습안을 내놓았다. 옥신각신은 있었지만 가까스로 수습안이 통과되어 회의는 다른 안건처리로 넘어갔다.

3박4일 연회기간은 빠르게 흘러 이제 마지막 날이 되었다. 10시가 되면 목사안수식이 거행되고 안수식이 끝나면 연회는 종료된다. 아침 일찍부터 숭의교회 주변에는 장사꾼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꽃장수들도 여럿 보였다. 축하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목사가 되는 것을 그토록 기다리던 식구들, 친인척들, 교회신자들! 많이들도 모여 안수식을 기다렸다. 나도 정장을 하고 나를 안수할 조화순 목사와 함께 안수식장으로 들어가 앉았다.

감리교운동권들도 과연 김정택의 안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한 마음들을 가지고 자리를 메웠다. 사회자인 한경수 감독이 단상에 나타났고 목사안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안수받을 목사들을 호명하기 시작했고 호명된 사람들은 단상위로 올라갔다. 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언제 불러주나 귀를 쫑끗 세우고 김! 정! 택!이라는 단어를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감독은 호명하기를 그쳤다. 더는 부르지 않을 것이 현실로 너무나 명확해지자 감리교 운동권들이 들고 일어났다. 연회가 연회 기간 중에 유급을 철회하기로 했는데 왜 목사안수에 김정택을 뺏느냐? 당신이 감리교 감독이냐? 단상에서 내려오라는둥 정말 화란 화는 다 터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감독은 김정택 안수를 결단코 허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보니 단상에 올라가 있는 진급자들 중에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사람, 한사람 김정택이 안수받지 못한다면 우리도 받을 수 없소 하고 내려온다. 사태가 이러다보니 축하객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운동권의 이유 있는 항의도 축하객들에게는 추태(?)로도 보여질 판국이었다. 목사안수식 자체가 무산되는 최악의 상황도 예견되었다.

만약에 한 감독이 운동권의 방해로 목사안수식을 더 이상은 진행할 수 없다고 하고 그 책임을 운동권에 넘겨버리고 단상에서 내려오면 어떻게 될까? 이때 조화순 목사가 일어났다. “일단은 안수식을 진행합시다. 많은 축하객들이 오셨는데 기쁜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게 되어야 하지요. 감리교에서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구속까지 당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은 김정택 후배가 안수를 못받는 것에 대해 여러 동료들보다도 내가 더 마음이 아픕니다. 한경수 감독의 행위에 대해 나도 이해가 안되고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나중에 해결합시다. 그리고 지금은 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참으면 좋겠습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감리교운동권들은 참았다. 그냥 그대로 참았다. 식은 진행되었고 김정택은 안수를 받지 못했다.

기타 누락자를 위한 감리교 운동권들의 노력

감리교 운동권은 4인의 진급과 한 감독의 책임사퇴를 위한 행동을 개시했다. 집회도 하고 집에도 찾아가고 심지어는 감리사들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김포공항에까지 몰려가 피켓시위를 함으로서 감독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4인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서 감리교운동권은 집요했다.

그렇지만 진급을 시킬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지 않고 마냥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92년 연회 유급사건이 얼마 남지않은 93년 연회로 이어질 판이다. 93년 연회를 걱정할 판국이었다. 선배 중진목사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한경수의 자존심도 세워주면서 사건도 종료시킬 수 있는 방안이 93년 연회에서 3인은 진급시키고 김정택은 안수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경수도 받아들이고 운동권도 받아들였다.

이때 잘 아는 선배 중진목사가 나에게 말했다. “안기부에서도 김정택을 진급시켜 제도권에서 안아야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감리교에서 문제삼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문득 “그러면 내가 인천구치소에서 아무 이유없이 석방된 것은 안기부의 지시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그러면 안기부는 요주의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유화책을 가지고 있는걸까?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하여튼 93년 연회는 3인도 진급시키고 김정택은 목사안수식에 끼워주어 아무일없이 잘 끝마쳤다. 목사는 되었지만 목회 자리는 없었다. 목사가 되었으니 송현산마루교회는 전도사로 수고하고 있던 후배 손연경이가 담임을 해야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으니 담임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는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나를 받아줄 교회가 있을리가 없지. 그토록 명예가 실추된 한경수 감독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을테니까.

목사는 되었지만 목사 역할은 할 수 없는 목사! 그게 김정택이구나. 비참한 감정에 빠져들어야 할 텐데 웃음이 나왔다. 제도권에 안착할 수도 없고 제도권에서 보호해 주는 현장활동도 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감리교와는 무관하게 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만난 악연

우리 가족은 송현산마루교회가 있는 송현동을 떠나 연수동으로 전세방을 옮겼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집사람은 연수동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공임대아파트에 있는 어린이집에 교사로 취직을 하고 나는 전세집에서 요가와 단식을 지도하였다.

어느날 아내가 나에게 말한다. “복지관 관장이 당신을 봤으면 해. 관장과 얘기하다 남편을 물어봐서 목사라고 했더니 어느 교단인지를 물어봐. 그래서 감리교라고 했지. 그랬더니 반색을 하면서 한번 자리를 만들어 달래.” 그래서 그러마고 했지. 그래서 나는 그 복지관 관장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보니 복지관의 운영주체는 감리교 만수교회였고 관장은 만수교회 권사임을 알았다.

관장은 나에게 복지관 부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김정택이가 월급을 받게 되다니 이건 보통 횡재가 아니었다. 복지관 부장이 되면서 집에서 하던 요가와 단식 프로그램은 복지관 프로그램으로 전환됐다. 복지관에서는 프로그램을 늘려야 하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건강강좌들을 그냥 설치하기만 하면 되었다. 기공, 기천문, 수지침 등등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내가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설치했다.

복지관 부장으로 내가 뭐 일을 잘 했나보다. 관장이 나에 대해서 담임목사에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담임목사께서 나를 선교목사로 만수교회 부목사로 앉히겠다고 하니 담임목사인 성중경 목사를 만나자고 한다. 참 뭐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계속 잘 풀리나 보다.

성중경 목사를 만나니 성목사는 그냥 순박하고 신실해 보였다. 감리교에 이런 선배 목사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목사안수에 머물지 않고 정회원 목사도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드디에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난 어느날 만수교회 장로들의 요청으로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장로 중에 한분이 말한다. 성중경 목사님이 부목사님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어요. 같은 지방의 주안교회 한경수 감독이 김 목사님을 부목사로 받아들인 것 때문에 성목사님께 노하셨어요. 아무래도 김목사님이 한 감독님을 만나 사과하고 선처를 부탁해야 할 것 같아요.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역시 한 감독의 눈을 감리교 동네에서는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감독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때 일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노여움을 풀고 만수교회에 있을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했다. 그렇지만 그때의 응어리가 쉬 풀리지 않는 표정이다. 특별한 확답도 받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만수교회에 그냥 있기는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달이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권사인 복지관 관장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복지관 사정이 어려워 복지부장 자리를 더 이상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만수교회 부목사도, 복지관 복지부장도 사표를 제출했다. 한경수감독과 나의 관계를 처음부터 알면서도 나를 채용하였다면 따져 물을 것이 있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그들이 고마웠다. 그래서 부목사 자리도, 복지부장 자리도 깨끗이 사표를 제출했다.

김정택 목사 kjt94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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