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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통일신학의 그리스도 이해와 ‘민중’

기사승인 2019.10.19  16: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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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3)

박순경의 민중신학 비판과 부활이해

앞에서 들었듯이 박순경은 ‘민중과 여성이 민족이다’라고 했다. 그런 박순경 통일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과 역사성을 결정적으로 확증한 궁극의 사건이고, 한민족의 삶과 역사가 그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 안에 포괄되는 신적 근거이다. 박순경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무신론에서 “기독교 전통에 내포된 추상적인 영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1) 그리고 그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론”이라고 한다.(2) 그래서 그의 통일신학은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한 핵심 과제로 삼는 것이고, 이것은 곧 한국의 민중신학, 북한 주체사상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와의 논변에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관계문제를 논하는 박순경은 바르트의 시각으로 불트만 신학에 근거한 안병무의 예수와 민중 이해를 세차게 비판한다. 그녀는 안병무 등의 한국 민중신학자들이 신약성서의 갈릴리 예수운동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사건’과 ‘케리그마’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철저히 그 “객관적 사실”(das objective Faktum)성을 탈각해 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해서 예수의 민중운동과 20세기 한국에서의 민중운동, 더 나아가서는 예수와 민중을 동일화(“합류”)시키고, 특히 예수의 부활사건을 철저히 민중들의 봉기나 환호, 분노 등으로 환원시키면서 부활을 한갓 인간의 환상이나 상징, 암호 등으로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거기서 동일화된 신은 그녀에 따르면 결코 민중운동이나 역사변혁의 원천도, 종말적 동력도 되지 못한다는 것인데,(3) 이렇게 해서 우리는 박순경 통일신학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이 가장 집약적으로 강조된 곳이 예수의 ‘부활’ 이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특수한 민족사가 세계 인류사로 보편화되는 사건이 ‘예수사건’이라면, 그래서 한민족의 역사도 당연히 그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사에 포괄된다고 한다면, 그 예수사건의 핵심을 부활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녀의 통일신학은 이 부활의 해석에 집중하는 것이다.

박순경은 칼 바르트와 더불어 자아나 인간주관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절대 타자적 주체를 인식관계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한국 민중신학이 불트만도 넘어서서 20세기 한국 민중이나 민중운동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예수사건과 부활을 이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70년대 인권민주화운동이 예수사건의 해석원리가 된다는 말”이고, 그와 같은 일은 한국 민중신학이 발판으로 삼는 20세기 케리그마 신학도 이미 비판한 19세기 예수학파의 문제, 즉 예수사건을 19세기 부르주아 서양인의 종교도덕적 관점으로 해석해 내는 오류에 유사하게 빠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4) 그녀에 따르면 한국의 민중신학은 전통교회의 권위지배 구조에 대한 비판을 “무차별적으로 성서적 케리그마에까지 적용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초대교회의 부활 케리그마는 그 당시의 민중과 민중운동을 넘어서 “신적 그리스도론의 차원에 집중”한 것이므로 “그러한 케리그마가 민중해방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는 영원한 동력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5)

또한 그녀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8절의 부활전승에서 500여 명의 부활현현 증인을 말하고 자신도 그 증인에 넣은 것은 바로 그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한국의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대로 “민중전승을 억누른 것”이 아니다. “그(바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한 분이요 역사의 예수와 동일한 분으로서 고백된 것”이고, 그의 사도직은 바로 그러한 회심사건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박순경은 “바울의 회심사건에서의 부활현현의 시간성은 우리가 계산하는 시간의 한정성을 초월하면서도 시간성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이다”라고 언명한다.(6)

그녀의 이해에 따르면, 안병무나 서남동이 성서의 ‘몸의 부활’을 민중이 갈망하는 메시아 왕국에 대한 “신앙의 상징”이거나 “이 세계의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여 역사의 새 시대에 다시 부활 환생한다는 민중의 의지이며 갈망”이라고 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 즉 부활 주체를 탈락시키는 것이다.”(7) 그래서 여기서는 예수의 부활이 오히려 민중사를 설명하는 “술어”가 되고, 그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도 한 술어로서 “인간의 관념 이외의 다른 것으로 생각될 수 없게 되어 버린다”(8)고 비판한다. 바로 이러한 세찬 비판과 더불어 나온 박순경의 강력한 대안이 “생명의 주재자 의로운 하나님만이 ... 십자가 사건에서부터 새 창조, 새 생명에로의 사건의 주체이며”, “부활한 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신적 주체성에 참여한다”라는 것이다.(9) 그녀는 자신도 부활증인들의 범주가 교회의 선포과정에서 “해석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사건이 “비역사적이라고 규정되어 버릴 수 없다”고 강변한다.(10)

민족운동과 민중운동의 불이성(不二性)

이상처럼 간략하게 살펴본 한국 민중신학 1 세대와 더불어 수행한 박순경의 부활 논쟁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특히 오늘날 점점 더 우리 ‘몸’이 문제시 되었고, ‘물’(物)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그녀처럼 예수 부활에서 그 케리그마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담보하려는 고투는 깊은 의미를 함축한다. 한편으로 그러한 부활이해는 한국 민중교회의 현실에서 보았듯이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한계를 지시해 준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특별히 본인처럼 오늘날의 다원적 상황과 한반도 주체성을 더욱 숙지하면서 전통 기독교 신학의 경직성과 폐쇄성, 보수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聖․性․誠의 한국 여성신학)에게는 그녀의 부활 이해가 다시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는 지점임을 본다. 박순경 부활 이해에서도 잘 드러난 대로 그녀의 민중신학 이해에서의 핵심 축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역사성을 ‘불이적’(不二的)으로 담보하려는 것이다. 이 원리에 근거해서 그녀는 민중신학의 다음 세대인 강원돈의 “물(物)의 신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비판하기도 하고, 또한 전통 그리스도론적 ‘삼위일체론’을 탈각시키는 박재순의 민중신학이 삼위일체론을 오해한 데서 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녀에 따르면 삼위일체론은 시간과 역사가 결여된 형이상학적 사변이 아니라 바로 그 시간과 영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통일되어 있으며, 그 통일성이 바로 부활사건의 시간성이라는 강조와 설명이다.(11)

▲ 1975년 안식년을 맞아 독일을 찾은 박순경 선생. 이 안식년 연구를 통해 박순경 선생은 본격적으로 한국신학으로의 전향을 이룬다. ⓒ월간 <말>

이러한 이해 가운데서 박순경 통일신학 민중 이해에서의 또 다른 축은 ‘민족’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같은 글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민중신학자들과 구체적인 신학 주제를 가지고 논변하기 이전에 먼저 “민중의 민족사적 고찰”과 “민족․민중주체의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민족주의 민중신학’의 기본 관점을 밝힌다. 그녀는 자신이 70년대 인권 민주화운동, 특히 기독교적 맥락에서의 ‘민중개념’이 서구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한계를 넘지 못한다고 늘 지적해 온 것을 밝히고, 그 원인이 한민족 근현대사의 민족사적 맥락, 특히 1920년대 태동한 사회주의적 항일 민족운동사를 살피지 못해서라고 밝혀온 것을 강조한다.(12)

그녀에 따르면 1920년대 이래의 항일민족운동에서의 좌우연합전선들은 “민족개념의 변화”를 가져왔고, 민족해방과 동시에 세계변혁의 주체로서의 민족개념을 암시했다.(13) 그리고 그 개념은 8․15 이래 또 4․19 직후의 통일운동, 80년대 이후의 통일운동에서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이해에 따르면 70년대 이후의 한국 민중신학은 오히려 이 점에서 충실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 이해에서도 한계를 드러낸다. 민중신학자 중에서도 서남동이 민족사적 민중전통을 찾아내려 한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가 일관되게 민중을 프롤레타리아계급과 구별하려 했고, 예를 들어 3․1 독립선언문의 ‘2천만 민중’이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거기서의 민중을 미국 링컨 대통령이 말한 ‘Government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of the people’에서의 people과 등가화시킨 것 등은 바로 그러한 표시라는 것이다,

1980년 4월에 서남동이 쓴 글에서 민중이 공산주의적 ‘인민’ 개념에 내포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양자를 구별하면서 ‘민중신학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며 사회혁명만이 인간의 전부가 아니고, 개인과 영혼의 가치가 사회주의 밖에 있다’고 말한 것 등은 그의 민중개념이 서양의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예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반공기독교를 운명적으로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신학은 “통일에의 길을 예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14) 즉 박순경의 시각에서는 서남동 등의 민중신학자들이 더욱 과감하고 용기 있게 마르크시즘을 끌어안지 못했고, 당시 한국사회와 교회의 상황이 기독교의 마르크시즘 비판이나 극복보다도 “반공기독교의 극복”이 더욱 절실했는데도, 70년대의 민중신학은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인 것이다.(15)

박순경은 이렇게 참으로 급진적으로 민중과 민족, 마르크시즘과 기독교 등의 관계를 연결시키면서 거기서 한국 민족과 민중 개념의 세계사적 의의와 독창성, 세계 문명사적 의미를 발견하려고 고투한다. 본인도 올해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3.1운동정신뿐 아니라 그 이후의 우리 항일독립운동이 어떻게 민족과 민중의 의식과 더불어 ‘세계대동’의 큰 이상을 포괄하면서 세계사 변혁의 주체의식으로 더욱 성장했는지를 밝혔는데,(16) 박순경 통일신학은 그렇게 한국적 민중의식은 특히 근현대 항일민족항쟁의 긴 경험에서 얻어진 민족의식과 더불어 성찰되어야 하며, 그 불이적(不二的) 통합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민족은 민중의 모체이다.” 그 둘은 항상 붙어있을 수밖에 없고 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민중현실을 도외시한 민족은 “한갓 과거적 의식에 불과한 비역사성을 의미”하거나 “예속적 자본주의 시장에서 구차하게 빌어먹고 연명하는 비역사성”을 보일 따름이다.(17) 박순경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패했다고 해도 그 이론이 제기한 자본주의 세계의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다시 안병무의 ‘물질’과 ‘계급’에 대한 인식이 그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온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녀에 시각에서는 기독교의 사랑이나 성서에서의 물질의 공개념 같은 것들이 오늘 구체적으로 마르크스에 의해서 매개되고 재표현 되지 않았다면 충분하지 않고, 한민족의 1920년대 이래의 민족사는 그 양쪽을 모두 포괄한 통일과 참된 자주성 확립을 위한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민족․민주 주체성에 대한 통찰이다.

그녀는 이러한 입장에서 70년대의 인권민주화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80년대 소장파의 민중신학이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보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여긴다. 그런 민중신학과 연계된 80년대의 NCC 활동에 대해서 박순경은 그 활동이 충분히 반공기독교의 문제를 들추어내지 못했고, 재야․해외동포의 통일운동을 포섭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배타적이기까지 했다고 비판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즈음의 시기에 NCC에서 나온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소위 ‘88선언’에 대한 그녀의 구체적 언급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는 당시 한국 기독교계의 민족과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관계설정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분명히 통일신학은 “우선 반공기독교에 대한 비판 작업”이라고 언명한다. 그리고 반공기독교가 주장하는 한반도의 ‘흡수통일’이 얼마나 큰 민족적 혼란을 가져오고, 또 동시에 세계 문명사적으로도 큰 손실인지를 모른다고 탄식한다. 그녀는 지적하기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것은 한반도 전체를 미․일과 같은 지배세력들에게 예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세계의 불의를 몰각하는 반민족적 반복음적 처사”라는 것이다.(18) 그녀에 따르면 NCC가 미약하게나마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나, 정확히 그 문제점을 제시하지 않았고, 한국 기독교계의 통일의식이 대체로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독교적 추세는 근현대사의 민족․민중해방과 변혁이라는 주제에 위배되는 반역사적인 것”이고, “남북연합이든 연방제이든 그것이 북 흡수통일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근현대사의 민족․민중의 경험, 고난, 희생, 유혈의 역사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분명한 어조로 왜 우리가 흡수통일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지의 이유를 밝힌다.(19)

유사한 맥락에서 그녀는 80년대 통일운동에서 NL(National Liberation) 운동과 PD(People's Democratic Revolution)의 대립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PD없는 NL이란 공허한 소리이고 NL없는 PD란 도대체 실현될 수 없다”고 일갈한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그녀의 입장은 당시 동유럽의 변화와 구소련 해체, 경제군사적 대국 일본과 또 점점 더 세계 헤게모니로 등장하는 중국의 세계상황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NL이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한반도 주변의 상황이 남과 북이 하나 되고 협력해서 어떻게든 민족자주성을 재확립하는 일이 제일 시급히 요청된다는 시각을 견지한 것이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 그리고 북한 주체사상

이렇게 박순경에게 있어서 민족주체성과 자주성을 세우는 일은 그녀 신학의 핵심관건이고, 민족․민중의 통합적 주체성을 세우는 일이 그 방향으로 가는 가장 적실한 길이었다. 같은 시각에서 그녀는 북한의 ‘주체사상’도 해석해 내고, 단순히 좁은 의미의 기독교 통일운동이 아닌 ‘범민련’(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의 통일운동을 강조한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비역사적이고 추상적인 신학이라고 세차게 비판한 토착화신학이 중요한 주제로 삼는 유불선이나 무속, 동학이나 대종교와 같은 한민족의 종교사상들과도 대화하면서 민족적 주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언설한다.(21) 이렇게 얻어진 민족적 주체성과 민족․민중의 주체성은 세계사에서 고유한 것이고, 유럽이나 남미를 능가하면서 앞으로서의 인류 문명사에서 세계변혁을 이끌어갈 고유한 것이라고 역설한다.(22)

박순경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은 범민족․민중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서양 근대의 민족주의를 능가하는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우익 민족운동은 서양의 부르주아 개인주의, 자본주의의 영향권 내로 합류해 들어가서 민족운동 본래의 해방운동의 의의를 상실해 갔다.(23) 그녀는 8․15해방이 미군․연합군의 승리의 ‘선물’이라는 “착각”을 기독교측이 오랫동안 이어왔고, 38선이 우연히 설정된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미국의 지배 권력의 표출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6.25전쟁에 대한 브루스 커밍스의 대안적 입장이나 존 할러데이의 언술, “남한은 1950년 6월 북한으로부터 침략 받은 것이 아니라, 1945년 이래 미제로부터 침략 받았다”라는 말을 인용한다.(24)

미국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1947년 8월에 조선 문제를 UN에 이관시켜서 여운형이나 김구 등 민족지사들의 좌우연합의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좌절시켰고, 6.25 전란 중인 1951년 9월 8일 미․일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미․일 군사체제를 시작하여 오늘의 경제․군사 대국 일본을 가능케 했다고 그녀는 밝힌다.(25)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제주 4.3사건이나 6.25 동란 중의 희생과 참상, 1960년 4.19혁명과 80년대의 광주 “민족․민주화운동” 속에서도 한민족 민주통일운동의 맥이 어렵게 이어져 왔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녀는 특별히 5.18광주항쟁을 크게 의미화 하는데, 즉 그녀에 따르면 5.18항쟁은 “한-미연합의 군사작전에 의해서 저질러진 범죄”로서 “한-미연합군사행동”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민중항쟁’이라고만 할 수 없는 “민족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민족민중민주항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민민통일운동에로 연계될 수밖에 없었고, 그를 이어받은 80년대 운동은 그래서 “통일과 민주화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5월 항쟁은 바로 8.15해방정국의 좌우합작운동을 비롯한 그 이래의 통일운동의 맥을 살려낸, 그래서 “민민통일운동의 전통을 이어 준 분수령”이라는 것이다.(26)

이러한 박순경의 한국 현대사 이해에 따르면 기독교측의 민족․민주의식은 그러나 이에 반해서 지속적으로 친미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성격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70년 후반기의 민중신학도 박정희 파쇼정권 아래서의 민중의 인권침해 상황을 고발하기는 했지만 국제자본주의 아래서의 민족모순을 짊어지고 있는 민중의 계급모순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족통일과 민중해방의 불가분성”을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27) 박순경은 이러한 맥락에서 서양기독교 선교 외에 바로 8.15 해방이 한국 기독교로 하여금 “복음을 미국의 자본주의 반공주의와 혼동하게 한 역사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어놓는다. 그러면서 일본인 고부로 나오끼씨가 『한국의 비극』이라는 책에서 8.15해방은 “한인의 환상이었다... 일본의 첩생활 36년 지내다가 8.15를 계기로 미국의 식모로 자격이 바뀌었을 뿐이다”라고 했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한국 기독교가 “미국의 식모살이, 즉 신식민주의적 예속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온 것”이라는 세찬 비판을 내어놓는다.(28)

그런데 오늘 2019년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비판과 평가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 2018년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선언이 나온 이후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지는 미국의 간섭과 주장에 의해서 간단히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처절히 경험하고 있고, 5.18광주항쟁에 대한 감추어졌던 진실이 당시 전두환 세력과 미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점점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부분의 국회의원들과 한국의 대다수 보수기독교인들은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지지한다. 오늘의 NCC 계통 통일운동도 박순경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흡수통일이었던 독일통일 탐구에 경도되어 있고, 21세기의 통일담론을 찾아가는 일에서도 여전히 서구 신학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토착화신학이나 박순경 통일신학이 이루어놓은 민족담론이 오늘의 통일논의에서도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경원시된다는 것이 토착화 여성신학자로서 본인이 최근 몇 년간 에큐메니컬 통일운동 그룹에서 경험한 바이다. 그녀의 관점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제통일의 길을 선택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사회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데, 한반도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오늘날 세계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믿음이고,(29) 그녀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자리매김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박순경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단순히 서구적 마르크스주의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일제하에서의 항일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6.25의 잿더미를 딛고서 이후 미국 자본주의 중심의 국제사회에서 오랜 고립과 억압 속에서도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려는 고투 속에서 나온 것으로 민족과 민족사의 배경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더해서 이 주체사상과 특히 거기서의 ‘인간개조’ 사상이 기독교의 예언자적 선포와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새사람과 새나라의 이상이라는 성서적 주제에 “접근”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히 성서의 부활에 대한 이해를 하나의 추상적 관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한  이러한 구체적인 역사에서부터의 인간개조 사상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언술한다.(30)

그녀는 북한 주체사상에서 제일 많이 비판받는 수령론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톨릭교회의 교황제와 유사한 것으로 풀어내면서 분열을 거듭하는 개신교에 비해서 가톨릭의 교황이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더 유지시키는 근거가 되는바 북한 사회 수령의 유일성과 독재성은 그와 유사하게 북한 사회의 자주성 유지를 위해서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31) 그녀가 199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되고 수감까지 되도록 하는데 한 주요 요인이 된 이 주체사상에 대한 성찰은 점점 더 전개되어 그녀의 책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의 결론에서는 북한 주체사상이 바로 ‘영원한 우리 민족’이라는 민족 개념의 응축이라고 밝히고, 그것은 결코 단순히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만 해명될 수 없는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항일혁명 투쟁의 선열들의 민족해방 쟁취와 사회주의 체제 설정에 입각해서 획득된 실로 역사 혁명적 개념”이라고 웅변한다.(32)

그러므로 인간개조론이 “현실적 과정에서 거듭 실패한다고 해도 종말론적 인간혁명 개념으로서 지탱되어야 할 것”이고, 수령론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양도될 수밖에 없으나” 그것이 “민족의 자주성을 대표하고 견지해 온” 이상 그 “역사적 수행의 의미”를 무효화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그녀에 따르면 민족의 자주성 전개는 바로 남북 공동 민족 전체의 과제이므로 주체사상을 남한 자체의 민족모순을 극복해나가는 수단으로 쓸 수 있고, 그것을 남북이 함께 “민족사상”으로서 정립하고 전개시키자고 촉구한다.(33) 이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이러한 큰 포괄과 선취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박순경 통일신학이고, 그녀의 민족 자주성에 대한 큰 포부이며, 세계문명사적 의미를 뚜렷이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

(미주 1)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8쪽.
(미주 2) 박순경, 『통일신학의 미래』, 33쪽.
(미주 3)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중신학의 문제-새로운 민중신학 전개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미래』, 68쪽.
(미주 4) 같은 글, 60쪽.
(미주 5) 같은 글, 66쪽.
(미주 6) 같은 글, 63쪽.
(미주 7) 같은 글, 65쪽.
(미주 8) 같은 책, 62쪽.
(미주 9) 같은 책, 65쪽.
(미주 10) 같은 글, 63/63쪽.
(미주 11) 같은 글, 71쪽.
(미주 12) 박순경, “민족신학․통일신학․여성신학의 총괄적 재론”, 같은 책, 31, 38쪽.
(미주 13)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중신학의 문제”, 『통일신학의 미래』, 40쪽.
(미주 14) 같은 글, 42, 44쪽.
(미주 15) 같은 글, 45쪽.
(미주 16) 이은선, “3.1운동 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 변선환 아키브 편, 같은 책, 38쪽 이하; 이은선,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같은 책, 431쪽 이하. 이 글들에서 본인은 특히 나철 등이 중광한 한국 대종교를 한국 유교 문명으로부터의 창조적인 자생적 열매로 보면서 어떻게 그 정신 속에 세계대동의 큰 이상이 포괄되어 있고, 그것이 3.1운동을 비롯하여 특히 1920년대 이후의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음을 밝혔다. 박순경 통일신학은 한두 군데 이 대종교에 대한 언급도 하지만, 주로 러시아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에 주목하면서 항일의식에서의 민족․민중의식의 합작과 세계사적 의식을 강조한다.
(미주 17) 박순경, “민족통일과 민중신학의 문제”, 『통일신학의 미래』, 47쪽.
(미주 18)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립 과정에서”, 같은 책, 30쪽.
(미주 19) 같은 글, 54쪽.
(미주 20) 박순경, “민족신학․통일신학․여성신학의 총괄적 재론”, 같은 책, 31, 32쪽.
(미주 21)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87쪽.
(미주 22) 박순경, “한민족과 신학”, 같은 책, 55쪽.
(미주 23) 같은 글, 54쪽.
(미주 24) 박순경, “민주통일운동의 역사적 조명: 1945년부터 1980년까지를 중심으로”, 같은 책, 104쪽.
(미주 25) 같은 글, 105쪽.
(미주 26) 박순경, “민족민주통일운동의 초석, 5.18민중항쟁”, 『통일신학의 미래』, 388-389쪽.
(미주 27) 같은 글, 109쪽.
(미주 28) 박순경,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 같은 책, 120쪽.
(미주 29) 박순경, “통일신학: 조국통일과 하나님나라”, 같은 책, 99쪽.
(미주 30) 박순경,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 같은 책, 128쪽.
(미주 31) 같은 글, 128-129쪽.
(미주 32) 박순경, 박순경,『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 704-705쪽.
(미주 33) 박순경,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 같은 책, 128쪽, 130-131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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