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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중에 할 수 있는 것

기사승인 2019.10.16  18: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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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주의 눈은 깨끗해서 악을 볼 수 없고 주께서는 고통을 지켜보지 못하십니다. 어찌 속이는 자들을 지켜만 보시고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가만히 계십니까.(하박국 1,13)

하나님을 향한 탄식들이 꽤나 많겠지만, 그 가운데 으뜸이고(?) 나머지 모든 것들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은 과연 정의로우신지요 하는 탄식일 것입니다. 탄식들은 생각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비롯됩니다. 이때 생각 속에 그려지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생각의 세계는 아름답고 건강하고 선하고 정의롭습니다. 당위성이 곧 현실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은 우리의 실제 현실이 아닙니다. 고통을 수반하는 이 차이가 부조리로 경험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그 크기가 허용한계를 넘어가면 탄식을 불러 일으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깨끗한 눈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 수사적 표현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예언자의 하나님 이해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현재를 나타내려는 의도가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 예언자 하박국 ⓒGetty Image

예언자가 지금 겪는 하나님은 '깨끗하지 못한' 현실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언자가 알고 믿는 하나님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깨끗한 눈에는 담을 수 없는 악한 현실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그 고통 가운데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악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죄없는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의미의 의인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르고 따라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지켜보고만 계실 수 있습니까? 대단히 심각한 질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침묵은 계속되고 상황은 아무런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것 같기만 합니다. 그의 침묵을 고통에 고통을 더합니다. 의인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합니다.

신앙과 현실의 불일치를 통렬하게 느끼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 마주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탄식을 계속할 수도 있고 침묵을 견디지 못해 떠날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하박국처럼 탄식을 멈추고 이제는 하나님이 답하실 때라고 하며 경비병처럼 숨 죽이고 온 힘을 다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의인들의 고통과 시대의 부조리를  '담고 있는' 깨끗한 눈의 하나님, 그의 침묵 속에서 무엇이 영글어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침묵을 깨고 그 깨끗한 눈에 어울리는 깨끗한 평화의 세상을 담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에 대한 응답일 것입니다.

탄식을 들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깨끗한 눈에서 희망과 힘과 새세상을 보는 오늘이기를.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숨쉬고 세상에 새생명을 불어넣고 있음을 깨닫고 새삶의 발걸음을 내딛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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