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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라는 우상(다니엘 6:1-10)

기사승인 2019.10.08  17: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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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걷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실정법을 지키기 위해 독배를 마셨고, 그래서 세계가 인정하는 성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근거가 불분명한 잡설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실정법을 지켜주기 위해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라, 힘으로 철학과 사상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독배를 마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는 법정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나, 도망할 기회를 거부하고 독배를 마셨다는 기록 등이 보여주는 소크라테스의 면모입니다.

소크라테스보다 한세기전에 살았다는 다니엘도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숨어서 기도하는 방법도 있었을 테고 30일만 참는 방법도 있었을 테지만,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식으로 태연하게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적들은 영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성향상 분명히 숨거나 참지 않고 계속 기도할 것을 알고 덫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마치 그들의 악한 의도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면으로 실정법에 도전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 Edward Poynter, “Daniel's prayer”(1865) ⓒWikipedia

법치주의의 우상은 법입니다. 법은 중요한 것이고, 상식과 양심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소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신성한 것’이 아닙니다. 신적이거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법은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관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해야 하고, 정치사상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법이 그 자체로 신격화되기 시작하면 그 사회는 법치주의 사회가 아니라 “법신주의” 사회가 됩니다. 시민에게는 양심에 따른 불복종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건만, 법신주의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신주의 사회는 법이라는 신 뒤에서 자기 권력을 절대화하려는 악당들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신앙인이 악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권력도 절대화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실정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오직 하나님의 법만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자유를 명목으로 실정법을 함부로 무시하고,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법이 상식과 양심을 무시할 때 그 악법을 향해 저항하는 신앙인의 양심에 대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자들이 제정한 악법에 정면으로 맞섰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니엘이 초인적인 인물이라는 증언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가 승리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참으로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하신다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인해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힘을 얻게 됩니다. 다니엘이 얻은 힘을 우리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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