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한국 사회 친일·극우 계보학

기사승인 2019.10.07  17:54:56

공유
default_news_ad1

- 노론, 친일 매국노, 부일배 그리고 대한민국 극우

100년 후 역사가들이 20세기 한반도 중심의 우리 역사를 조선,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시대, 남북분단의 시대로 정리할 것이다. 남북분단의 시대는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이 대립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나 나는 대한민국을 ‘포스트 조선’으로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성리학적 이념에 지배되고 있고, 계급의식과 양반의 기득권으로 그 사회를 주도하며 정권을 장악하였던 노론 후손들의 이합집산과 작당으로 나라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노론의 세력이 일본제국주의 시대에는 친일 매국노와 부일배로 변신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반공과 친미, 극우∙보수파로 행세하면서 권력의 뿌리에서 끈질기게 나라와 민족의 피를 빨며 한국을 자신들만의 나라로 유지, 존속시키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먼저 부일민족반역자 중에서 매국노로 불리는 집단을 짚어 보자.

을사오적 - 노론

1905년의 을사늑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이토는 일왕의 친서와 한일협약안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강제하여 승인하도록 만들었다.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제의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 간에 문제의 ‘을사보호조약’이 정식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한 조선에서 영국∙미국∙청국∙독일∙벨기에 등의 경성주재 공사관들이 모두 철수하였다. 이 조약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을사오적,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다. 이지용은 고종의 5촌 조카로 왕족이었고 나머지는 노론이다.

정미칠적 - 노론

1907년 정미년에 법령제정권, 관리임명권, 행정권 및 일본 관리 임명을 골자로 하는 7개조항의 조약이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체결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원안대로 통과된 이 조약은 ‘정미7조약’ 또는 ‘한일신협약’이라고 부른다. 정미칠적은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증응, 이재곤, 임선준 그리고 내각총리대신인 이완용이었다.  

경술팔적을 포함하여 작위를 받은 76인 - 노론 56명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으로 조선(대한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6월 30일에 경찰권을 빼앗은 일제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을 통하여 나라를 합병하는 수순을 밟아서 병탄의 구체안을 논의했다. 8월 22일 순종 앞에서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쳐 그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조약 조인 사실을 1주일 동안 비밀에 부쳤다. 그리고 8월 29일에 이완용이 시종장인 윤덕영을 시켜서 순종의 어새를 날인하여 칙유문과 함께 반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개국 519년 만에 막을 내리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뉴스타파 화면 캡처

경술국적 8인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장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시종무관장 이병무, 이완용의 처남 숭녕부총관 조민희이다. 이들은 나라를 판 공로로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사후에는 작위와 재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경술8적과 한일병탄에 공을 세운 대신과 왕족 68명이 10월 16일에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은 76명 중 56명이 노론이었고,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이었고, 나머지는 왕족이거나 왕실의 일원들이었다. 수직자 76명 중 후작 6명, 백작 3명, 자작 22명, 남작이 45명이었다.

이들에게는 2만5,000~50만 4,000원의 은사금이 공채로 하사되었다. 1910년 당시 쌀 한 가마가 3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들에 대한 예우가 파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작위는 후손들에게 승계되었다.

부일민족반역자는?

친일파는 을사늑약, 정미칠조약, 한일병탄늑약에 참여해서 나라를 파는데 앞장을 선 매국노와 1910년 이후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공직, 각종 단체 등에 참여해서 일제에 적극 협조한 자들로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 등이 있다. 매국노 뒤를 이어서 출현한 부일민족반역자들은 일본의 무단정치와 문화정치에 적극 협조하며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등 각 분야에서 특혜를 받았다.

미군정하에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1947년 3월, 최초로 친일파의 숫자를 거론할 때, 읍∙면사무소의 직원까지 친일파에 포함시키는 등 친일파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규정하였다. 이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자 ‘부일협력자의 경우, 범위는 광범위하게 하되 제재는 관대하게 하고 반면 민족반역자의 경우, 범위는 좁게 하되 제재는 엄중히 한다는 방침을 정하였다. 이에 따라 기초위원회는 부일협력자는 대략 10만~20만명, 민족반역자는 약 1,000명, 전범은 약 200~300명, 간상배는 약 1만 명 내지 2~3만 명 등 총 20만 명 정도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추산하였다.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반민법을 근거로 구성된 “반민특위”는 767명을 조사 대상자로 삼았으며 1949년 8월 31일 이승만의 방해 공작으로 업무를 마칠 때 까지 688명을 친일파 인사로 규정하였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4776명을 친일부역자로 선정하였으며, 2005년에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3차례에 걸쳐서 1,006명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발표하였다.

부일민족반역자 - 각료 정치인들

참으로 뼈아프고 절망스럽게도 부일민족반역자들이 해방 후 역대 정권에서 다시 중용되어 한국정치를 장악하였다. 『친일문학론』으로 친일파 연구의 효시가 된 임종국 선생님의 조사에 의하면, 제 1공화국 경우, 각료의 34.5 퍼센트가 친일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2공화국의 경우, 각료의 60퍼센트가 친일 전력자들이었으며, 이들의 상당수가 제3공화국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노론대신처럼 나라를 판 매국노는 아니었다. 하지만 창씨개명, 조선어 폐지, 동방요배, 신사참배 등에 앞장서고, 청년 학생들이 징병 징용, 위안부로 가도록 선동하였다. 독립투사들을 밀고하는 등 동족의 고혈을 빠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의 앞잡이였다.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에 그 앞잡이들이 반공, 친미주의의 옷으로 갈아입어 신생 대한민국의 행정부의 핵심부서를 점령하였으며, 군부독재 치하에서도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그들 무리는 아베의 망언에 민족적 자존심을 가지고 침착하고 바르게 대응하는 정권이 한국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며, 비난하며, 저주하며  태극기 부대로 도처에서 맹활약하며 극우∙ 보수의 뿌리가 친일민족반역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부일민족반역자 출신의 역대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각료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역대 대통령 중 친일경력자는 박정희와 최규하, 두 사람이다. 총리 가운데는 장면(2, 7대), 백두진(4대), 정일권(9대), 진의종(17대), 김정렬(19대, 일본군 항공 대위/ 공군참모총장/이승만정권, 국방부장관/장면정권, 민주공화당 초대의장, 주미대사, 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 삼성물산 사장, 정우개발 회장, 국무총리 역임) 신현확 등이 있었다.

다음의 글들은 정운현 저, 『친일파는 살아 있다』, 178~185쪽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역대 각료들과 정치인들의 친일 전력은 아래와 같다.

제1공화국
* 내무부: 윤치영(조선임전보구단, 국민동원총진회), 백한성(평양지법 판사), 김형근(경성, 대구지법 판사), 이익홍(평북 박천경찰서장), 장경근(경성지법, 복심법원 판사). 이근직(원주군수), 김일환(만주군 경리장교, 대위), 홍진기(전주지법 판사)
* 재무부: 백두진(조선은행 근무), 박희현(총독부 내무부 지방과장), 인태식(강원도 홍천 세무서장), 송인상(조선식산은행 근무)
* 법무부: 이우익( 함흥지법, 대구복심법원 판사), 조진만(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복심법원 판사), 조용순(해주, 평양, 광주지법 판사), 이호(경성지법, 광주지법 순천지청 검사), 홍진기(전주지법 판사)
* 국방부: 신태영(일본육사 26기, 육군 중좌), 김정렬(일본 육군 항공대 조종사)
* 문교부: 이선근(만주협화회 전국연합협의회 협의원)
* 농수산부: 임문항(총독부 군수, 강원도 광공부장). 정낙훈(충남 보령, 연기, 서산 군수), 정운갑(경성제대 졸업, 고문행정과 합격)
* 상공부: 이재형(금융조합이사), 안동혁(총독부 기사, 식산국 근무), 박희현(총독부 내무부 지방과장), 김일환(만주군 경리장교, 대위), 구용서(조선은행 도쿄지점 근무)
* 부흥부: 송인상(조선식산은행 근무), 신현확(일본상공성, 군수성 근무)
* 체신부: 이응준(일본 육사, 육군중좌), 곽의영(충북 광공국 상무과장, 괴산, 청원 군수)

제2공화국 (8개월 존속)
* 조재천(법무부장관): 1940년 조선 변호사시험, 고등문관 사법과 합격, 1943년 판사 임명
* 현석호(국방부장관): 1933년 고문 행정과 합격, 전남 경부를 거쳐서 1936년 화순군수, 1938년 도 이사관으로 승진, 황해도 산업과장, 농촌진흥청 과장, 충남 광업부장
* 김선태(무인소장관): 전주지법 판사, 대전지법 청주지청 판사
* 주요한(부흥부장관): 수양동우회에서 국방헌금 4000원 기탁, 조선문이협회간사, 임전대책협의회 참가 
* 이석기(내각사무처장): 고문 행정과 합격,  충남 아산군수
* 김영선(재무부장관): 고문 행정과 합격, 진도 군수

제3공화국
* 정일권(외무부장관): 봉천군관학교 졸업,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간도헌병대 대장/국회위원, 국무총리
* 엄민영(내무부장관): 구주제국대학교 졸업, 고등문관 행정과 합격, 전북 임실, 무주 군수/경희대 법대학장, 주일대사
* 최규하(외무부장관): 만주 대동학원 졸업, 길림성 통양현 행정과장 / 국무총리, 제10대 대통령
* 홍종률(재무, 체신부장관): 구주제대 졸업, 만주 고등문관 행정과 합격, 만주 대동학원 졸업, 만주국 경제부 금융사 사무관 / 연세대 교수, 충북 도지사, 국회위원
* 임충식(국방부장관): 간도특설대 근무 / 육군 5군단장, 합참의장, 육군대장 예편, 국회의원
* 이한림(건설부장관): 신경군관학교 2기 / 1군 사령관, 육군중장 예편, 관광공사 사장, 호주 대사
* 박춘식(교통부장관): 만주 육군관관학교 7기 졸업, 간도특설대 근무 / 3군단장, 육균소장 예편
* 민복기(법무부장관): 경성제대 졸업, 고등문관 사법과 합격, 경성지법 판사 / 법무부 차관, 검찰총장, 대법원장
* 김용식(외무, 무임소, 국토통일원장관): 일본 중앙대 졸업,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합격/ 변호사, 주영대사, 대한적십자총재
* 황산덕(법무, 문교부장관): 경성제대 법문학부 졸업, 일본 고등문관 행정, 사법과 합격 / 서울대 교수, 성균관대 총장
* 이호(내무부장관): 도쿄 제대 졸업, 인ㄹ본 고등문관 사법과 합격, 경성지법 검사, 경성고검 검사 / 법무부장관(1공화국), 주일대사, 적십자사 총재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절 행정부는 물론 정당과 국회에도 친일 전력자들이 적지 않았다. 제1공화국은 당 대표체재가 없었고 3공화국 들어서 공화당은 대표를 ‘의장’이라 칭했는데 그들 가운데 김정렬, 윤치영, 정일권, 전예용 등이 친일 전력이 있고 5공화국 민정당에서는 ‘대표위원’이라고 칭했는데, 그들 가운데 이재형, 진의종, 윤길중 등이 친일 전력이 있다. 야당 대표에서는 신민당의 박순천, 유진오 등을 들 수 있다.

부일민족반역자 - 문학인들

그들은 기름처럼 미끈한 세치 혀와 아첨과 거짓으로 청년∙학생들을 선동하여 징병, 징용으로 보내고 여성들을 강권하여 위안부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아들과 딸들을 일본의 총잡이로, 성 노리개로 보내는 일에 광분했던 자들의 글이 교과서에 버젓하게 실리고 그들의 이름으로 제정된 상들이 명예롭게 수여되고 그런 자들이 대학교 강단에서, 문단에서 아성을 쌓으며 한국 문단과 언론을 이끌어 왔다. 친일 청산의 길이 요원하다.

다음은 임종국선생님의 『친일문학론』과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친일 문인들의 명단이다. 

『친일문학론』에 수록된 문인은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사량, 김소운, 김억, 김용제, 김종한, 김기진,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백철, 유진오,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효석, 장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용만,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로 총 28명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문인은 곽종원,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사영, 김성민, 김억, 김영일,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방인근, 백철, 서정주, 오용순, 유진오, *유치진, 윤두헌, 윤해영,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원수, 이윤기, *이인직, 이찬, 임학수, 장덕조, 장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연현, 조용만, 조우식,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로 43명이다. *가 표시된 인물 3인은 다른 분야에서 친일로 분류되었다.

글은 혼이고 정신이다. 혼과 얼을 팔아서 일신의 부귀와 출세를 도모했던 부일민족반역자들이 쓴 시와 글들이 국정교과서를 가득 채웠으니 썩어 빠진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 후손들의 민족의식과 정체성이 어떻겠는가! 친일사대주의의 세례를 받은 인간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의 명예와 유익이 된다면, 언제든지 나라를 팔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 우리는 치열하게 청산하지 못했는가?

친일 청산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독립운동에 떳떳하지 못한 이승만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친일파와 손을 잡으며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민특위를 비난했으며, 예산을 삭감하고 집행을 지연하는 등 방해 공작을 전면적으로 펼쳤다.

친일파 청산 요구는 공산주의라는 공식으로 여론몰이를 하였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법 개정을 시도하였다. 또한 정부 각 기관들은 반민특위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49년 새해 벽두에 반민특위 요인 암살 기도가 드러났고, 5월 18일에는 국회의원 3명이 남로당의 지시를 받았다는 혐의로 경찰에 끌려갔다. 6월에는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반민툭위 핵심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었다. 6월 6일 경찰의 반민특위 사무실 습격으로 특위 활동은 실제적으로 막을 내렸다.

7월 15일, 공소시효 단축안을 주도한 이승만은 측근 이인의원을 반민특위 새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2기 체제를 꾸렸다. 하지만 새로운 특위 위원들은 대부분이 친일파 비호 세력이었다. 이들은 이승만 정부 의도대로 반민특위 해체 수순을 밟았다.

해방 이후 우리민족의 가장 큰 염원이자 지상 과제였던 친일청산 작업이 성과 없이 끝나버렸고 이로써 한국사회는 외세에 빌붙은 기회주의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재구축하였고 반공∙극우체제가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부일민족반역자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 때문에 우리사회의 가치가 전도되어 버렸다.

불의가 정의를 대체하고, 악이 선을 비웃고, 음모와 술수가 진실을 덮어 버리고, 폭력이 평화를 짓밟고 , 무책임과 불성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반공∙친미주의가 절대기준이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하는 반동적인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친일파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일민족반역자들과 그 비호세력들은 그 죄과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제 강점기를 산 모든 국민들은 친일파로서 공범자라고 우긴다. 독립운동가가 아닌 이상 일제의 체재를 인정했다는 사실에서 누구나 친일파라는 것이다.

또한 일제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친일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다. 어떤 이들은 조국과 동포를 위해서, 민족의 보전을 위해서 자신이 대신 부일민족반역자의 짐을 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각종 분야의 전문가와 뛰어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들이야 말로 나라의 인재인데 친일파라로는 이유로 처벌하면 나라를 어떻게 세우겠느냐고 항변한다.

어떤 이들은 친일을 했다할지라도 교육, 문화, 문학, 예술, 산업 방면에 공로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공과를 엄밀히 따져 친일파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미 지나간 일의 시시비비를 따지다 보면 국론만 분열되고, 갈등만 조장되어 소모적이 되기 쉬우니 잊어버리자고 한다.

친일파 청산은 법적인 청산만이 아니라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역사 청산이 되어야 한다. 부일 민족반역자들의 행위를 일일이 기록하고 교과서로 만들어 가르치며, 더 나아가서는 친일파 역사관을 반드시 세워서 국민들이 매국 매족 행위에 대하여 경계와 교훈을 삼도록 해야 한다. 

*부기
2공화국의 장면 정권도 3공화국의 박정희 정권도 친일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청산을 통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권력 장악과 독재를 위해서 반공-친미주의 노선을 공유하였다는 점에서 쌍생아이다.

참고서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친일과 망각』, 다람, 2016.
정운현, 『친일파는 살아 있다』, 책보세, 2014.
이덕일, 『이회영과 젊은 그들』, 역사의 아침, 2014.
박시백, 『35년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비아북, 2018.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1·2·3권』, 민족문제연구소, 2015.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분야별 주요 인물의 친일이력서 친일파 99인, 1·2·3권』, 돌베개, 2009
김주용, 『친일 비겁한 변명, 만주지역 친일단체』, 역사공간, 2014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