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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무(無)이신 하느님

기사승인 2019.09.22  16: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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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하느님과의 소통 방법 (3)

하나이며 전체로서의 하느님을 우리는 ‘하나님’이라 이름한다. 우주란(宇宙卵, 대폭발[Big Bang])이 생기기 전의 절대허공, 태극 이전의 무극을 상정하여 보자. 태극이 전개될 수 있는 가이 없는 절대공의 상태 내지는 마당, 아직 아무런 존재자도 등장하지 않은 텅 비어 있음, 빈탕한데, 무엇으로도 막혀 있지 않은 확 트여 있음,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절대 가능성의 상태가 태극 이전의 무극이다.

하느님은 우주의 텅빔이며 우주의 마음

논리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내용도 품고 있지 않은 순전한 형식이다. 근본구조를 위한 바탕이다. 아직 아무런 갈라짐과 나뉨이 없기에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로서 단일하고 온전하며 전체다. 그야말로 없음 그 자체이며 거룩함 그 자체이다.

이 온통 ‘하나[님]’는, 태극의 유래로서의 무극, 있음의 유래로서의 텅빔(없음)을 바탕으로 하여 그 안에서 전개되는 모든 있음의 사건까지도 포함한 하나이며 온전한 전체를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거기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절대적 원천으로서의 ‘한·’[한아]이다. 그리고 또한 모든 개체로서의 ‘제나’[제 각기의 나]들을 다 자기 안에 안고 있는 큰 나로서의 ‘한 나[大我]’이다.

다석은 “단 하나밖에 없는 온통 하나(전체)는 허공”이라고 말한다. 존재자들이 넘쳐나는 물질계는 색계이며, 이 색계는 환상이라고 한다. “나는 단일 허공을 확실히 느끼는데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느껴진다. 단일 허공에 색계가 눈에 티끌과 같이 섞여 있다. 색계에 만족을 느끼면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을 찾을 생각도 못한다.”(1)

다석은 청정하고 거룩한 허공인 절대공(絶大空)이 생명의 근원이고 일체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온통 하나로서의 허공은 그저 허공이 아니라 중심은 있으되 가장자리가 없는 공[球]과 같은 무한한 허공이다. 이 무한한 텅빔[빈탕한데]에 유한우주가 담겨 있다.

▲ 무로부터 출발하신 하느님은 무이신 하느님이다. ⓒGetty Image

그래서 이 허공을 무한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천체(별)로 이루어진 유한우주가 팽창하자면 그것을 담고 있는 무한우주가 있어야 한다. 이 무한우주인 허공을 노자는 무극(無極)이라, 허극(虛極)이라고 하였다.(2)

다석은 텅빔이 참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깊이 생각해볼 때,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허공뿐이다. 모든 천체 만물은 허공 속에 날아다니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텅빔이 “천체와 만물을 창조하고 지양한다.”(3)

다석은 우주를 담고 있는 무한 허공을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느님의 마음인 허공은 둘레가 없는 공이라 끝이 없다. 웅대하고 장엄한 빈탕한데에 일천억의 태양별을 지닌 은하우주가 일천억을 넘는다.

별을 없애고 본 무한 허공이 무극이고, 일체의 별이 다 담겨 있는 무한 허공이 태극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인 이 허공이 우리 맘속에 한없는 얼을 주니 그것은 또한 영극(靈極)이다. 성령의 영극, 허공의 무극, 천체의 태극을 다 합한 것이 곧 ‘하나님’이다.(4)

하느님은 존재의 사건

무한우주를 담고 있는 하느님의 마음으로서의 텅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비롯으로서의 ‘한·[한아]’, 전체와 절대의 유일존재로서의 ‘하나’를 우리는 ‘하나님’이라 이름하였다. 다른 한편 우리는 생성과 소멸, 변화와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유한우주에서 그런 사건을 주재하는 신으로서의 하느님을 생각하였다.

별무리가 가득한, 끝을 알 수 없는 저 푸른 하늘을 본으로 삼아 신을 상정하였다. 거기에서 유래한 말이 우리말의 ‘하느님’이다. 이 말의 뿌리로서의 ‘하늘[한늘]님’은 무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성·소멸·변화되는 모든 것을 포함한 절대존재로서의 하느님을 뜻한다.(5)

‘한’은 무한 공간을 의미하며 ‘늘’은 무한 시간을 의미하니 그 둘이 합쳐진 ‘한늘’ 또는 그 변형태인 ‘하늘’은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을 포함하는 절대존재로서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시간적·공간적 사건들을 포함한 절대존재를 지칭한다.

위에서는 강조점이 있음의 유래로서의 없음에 놓여 있었다면, 여기서는 그 절대공의 없음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존재사건을 통틀어 가리키고 있다.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 안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며 벌어질 그 모든 있음들을 간직하고 있는 절대존재로서의 하느님이 간직하고 있는 상대존재로서의 무한한 개체들을 그 상호관계에서 고찰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시각이다. 없음의 무한 허공에 있음의 지평(돔)들이 끊임없이 세워지고 넓어지고 사라져 없어지며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잇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에 놓여 있는 한 점 끄트머리[긋, 점, 첨단]일 뿐이다. 그것은 다시 자신의 유래인 절대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해 무극인 텅빔이 그릇으로서의 바탕, 마당이라면, 그러한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 안에서 전개되는 생성·소멸·변화의 모든 존재사건들은 그 무한한 그릇을 잠시 채우다가 사라져 가는 내용물들이다. 하늘님은 텅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주재하므로 거룩하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실체인 무(無)와 양태인 유(有)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무와 유, 바꾸어 말하면 공(空)과 색(色)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유는 자꾸만 바뀐다.

무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체인 하나님으로는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 무와 변하는 유의 양면을 가졌기에 전체로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서 변한다.”(6)

무(無)는 변하지 않는데 유(有)는 변한다. 우리는 지금 변하는 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무를 그리워한다. 무가 유의 밑동이기 때문이다. 상대적 존재란 있어도 없는 것이지만 전체인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사명)이 있어 존재의 값어치를 얻게 된다.

우리는 나 자신이 상대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적 존재는 낱 수가 많은 작은 것들로서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존재는 모든 개체를 포괄하는 전체로서, 유일 절대의 존재로서 없이 있어 비롯도 마침도 없다. 한마디로 상대적 존재인 개체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이고 절대적 존재인 전체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그러나 개체인 우리는 하나이며 전체인 하느님을 잃어버렸다. 개체가 할 일은 이 하나[전]체로 돌아가 하나[전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개체의 참 생명은 하나[전체]이기 때문이다. 하나[전체]를 회복하고 하나[전체]로 복귀하는 것이 영원한 삶에 드는 것이요, 참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7)

미주

(미주 1)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박영호 풀이, 두레, 2000, 20.
(미주 2) 참조.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152. 류영모,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465.
(미주 3) 참조.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239/40.
(미주 4) 참조. 같은 책, 246/7.
(미주 5) 이러한 신적 존재를 우리는 일체의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무한히 커다란 울이라는 뜻으로 ‘한울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주 6)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45.
(미주 7) 참조.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308.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지나간 무지를 바로 알아 잊어버린 전체를 찾아야 한다. 하나(절대)를 찾아야 한다. 하나는 온전하다. 모든 것이 이 하나(절대)를 얻자는 것이다. 하나는 내 속에 있다. 그러니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같은 책, 309)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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