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그러나 경건이 자족(하는 마음)과 함께 있으면 그것은 큰 이익이 된다.(디모데전서 6,6) |
경건이란 무엇인지요? 디모데서 기자는 이 구절 바로 앞에서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합니다. 이것은 경건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임을 함축합니다.
경건한 척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신앙적 외모'를 저자가 '이익'과 연관시킨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이익이 꼭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익이 행위의 동기가 되고 목표가 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익은 넓게 말해 '생산적 활동'의 자연스런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활동에 관심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혹시 경건이 이익을 낳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목표가 되고 경건은 그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경건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입니다. 그 활동의 목표는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의'여야 합니다.
▲ 자신의 삶의 방향성이 자신을 나타내는 신앙적 외모일 것이다. ⓒGetty Image |
신앙적 외모로서의 경건은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 내지 욕심이 아니라 '신앙적 내면'으로서의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영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서의 '신앙적 외모'는 사람들이 흔히 보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를지도 모릅니다. 종의 노래에 나오는 대로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과 밖이 조응하는 그의 '경건'은 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의'의 이익입니다. 바로 여기서 성서가 말하는 경건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경건에 이를 수 있을런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가운데 하나가 본문이 말하는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존중합니다. 탐하지 않습니다. 나눌 수 있습니다. 소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일 수 있습니다.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처지와 감정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족할 줄 알 때 '경건'은 사랑의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풍성해지는 오늘이기를. 이렇게 경건과 자족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산출해내는 큰 이익으로 행복해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