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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적 이성이 깨닫지 못한 신을 찾아서

기사승인 2019.09.08  16: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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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하느님과의 소통 방법 (1)

지금 우리는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지구촌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삶의 논리의 세 축은, 기술과 과학,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서구적 이성의 산물이다. 이 이성의 찬란한 만개로 ‘현대인들’은 부족함을 모르는 풍족함 속에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외치며 살고 있다.

서구적 이성의 폐해

그렇지만 현대 선진국 시민들의 이러한 풍요로운 일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의 희생이 전제되고 있다.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못 사는 제3세계 빈민들의 눈물과 반항하지 않는 듯 보이는 자연의 착취 속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1) 갈수록 부익부빈익빈의 추세 속에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자연의 황폐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서구적 이성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이 지구촌은 많은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의 많은 지성인들도 이성을 새롭게 좀 더 폭넓게 규정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술적이고 도구적인 합리성, 목적 합리성 외에도 미적 합리성을 얘기하는 사상가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부족하다고 윤리적 합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Illustration: getty/enjoynz, mehau kulyk/science photo library, victor habbick visions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성 또는 합리성하면 아주 좁게 과학적 또는 이론적 합리성만을 생각했다. 칸트가 이성을 이론적 이성, 실천적 이성, 미적 이성으로 세분화해서 논의했지만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의 영향 아래 이론적 이성만이 참다운 합리성으로 간주되고 다른 두 이성은 합리성에서 배제되기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윤리 도덕, 종교와 예술 등이 합리성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순전한 주관적 느낌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새로운 이성을 탐구하기

이런 협소해진 이성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20세기 들어서서 하이데거를 비롯해서 하버마스 등을 통해 시작되었다. 하버마스는 칸트의 세 가지 이성을 다 포괄하고 함축하는 넓은 의미의 이성을 제안하며 그것을 ‘의사소통적 이성[합리성]’이라고 이름했다.(2) 그러면서 그것이 실존세계, 사회세계, 사물세계의 배경과 태반이 되는 생활세계를 형성해나가며 문화와 사회 그리고 인격[인성]을 이루게 하는 근본이라는 의미에서 ‘생활세계적 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그런가 하면 벨쉬(Wolfgang Welsch)라는 철학자는 그의 방대한 『이성』이라는 대작에서 이성을 ‘가로지르기[횡단적] 이성(transversal Vernunft)’이라고 이름한다. 그는 이성이 다양한 영역과 문화권들을 가로질러 옮겨다니며 옮김[이행]의 활동을 하는 것에 착안하여 그렇게 명명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역사와 전통, 문화권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지구촌 시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다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권역 가로지르기’에서 이성의 독특한 역할을 본 것이다.(4)

어쨌거나 유럽의 지성인들 스스로가 서구적인 이성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하며 21세기 인류가 하나의 지구 위에서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이성’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서구인들이 간과해온 새로운 차원이 보완된 그런 이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서구의 지성인들은 ‘새로운 정신성, 새로운 영성, 새로운 종교성’이라는 표제어로 명명하기도 한다.

한국의 생활세계적 이성

진정 지구인들이 ‘하나의 세계’를 힘있는 자들의 소유와 착취라는 지배의 논리가 아닌 새로운 논리에 의해 함께 꾸려갈 생각이라면, 서구인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생활세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 다른 생활세계와 문화전통 속에는 다른 ‘생활세계적 이성’이 형성·유지되어 왔음을 수긍하고 거기에서도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한국인의 생활세계와 문화 속에서 형성·유지되어온 ‘생활세계적 이성’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한국인의 삶의 논리 또는 문법이, 끝이 없는 욕망과 무한한 경쟁 속에서 남을 착취하고 지구를 피폐화시키고 있는 세기말의 병리적인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가?

20세기 서구 문명이 확산시켜 나가고 있는 지구파괴와 인간성 말살의 위험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은 마르틴 하이데거이다. 그는 이성중심, 존재자중심, 인간중심의 삶과 사유의 방식이 퍼뜨리고 있는, 지구적 아니 우주적 지배의 논리와 그 폐해를 간파했다. 새로운 사유에 의한 새로운 시작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생활세계에서 쫓아낸 ‘성스러움’의 차원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을,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였다.(5) 서구의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몰아낸 다양한 형태의 무(無)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맺음과 경험만이 인류에게 구원의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 글에서부터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무에 접근하여 무에 대한 경험을 다양한 형태로 기술하고 있는 경우들을 고찰하기로 한다.

미주

(미주 1) 참조 Vittorio Hösle, Philosophie der ökologischen Krise (환경 위기의 철학), 신승환 옮김,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1997, 31이하, 42이하.
(미주 2) 참조 J.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I. Handlungsrationalität und gesellschaftliche Rationalisierung (의사소통 행위 이론. 제1권: 행위의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화), Frankfurt a.M. 1981;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II.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 (의사소통 행위 이론. 제2권: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해), Frankfurt a.M. 1981.
(미주 3) 참조 이기상,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서광사, 2003. 제1장 <다문화 시대에 문화의 새틀 짜기: 해석학, 화용론 그리고 사건학>, 19〜77.
(미주 4) 참조 Wolfgang Welsch, Vernunft. Die zeitgenössische Vernunftkritik und das Konzept der transversal Vernunft (이성. 현대의 이성비판과 가로지르기 이성 구상), Frankfurt a.M., 1996, 761 이하.
(미주 5) M. Heidegger, “Spiegel-Gespräch mit M. Heidegger (하이데거의 슈피겔 대담)”, Antwort. Martin Heidegger im Gespräch (대답. 하이데거와의 대담), Neske: Pfullingen, 1988, 99/100.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나는 구원의 유일한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즉 사유와 시작이 [사유자와 시인이 사유와 시작에서] 신이 나타날 수 있도록 또는 신의 부재가 거두어지도록 예비하는 데 있다.”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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