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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허락했을까

기사승인 2019.08.29  03: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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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나치의 Aktion T4 작전에 대하여 (1)

1939년 9월1일 독일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한 문서에 서명한다. 그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Wikipedia

Reichsleiter Bouhler und Dr. med. Brandt

sind unter Verantwortung beauftragt, die Befugnisse namentlich zu bestimmender Ärzte so zu erweitern, dass nach menschlichem Ermessen unheilbar Kranken bei kritischster Beurteilung ihres Krankheitszustandes der Gnadentod gewährt werden kann.

A hit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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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지도자 보울러와 의사 브란트에게

치료에 가망이 없을 만큼 병세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환자에게 병세에 관해 엄격한 감정을 실시한 뒤에, 특별히 지명한 의사에게 자비로운 죽음의 처치를 허가할 권한을 부여한다.

A 히틀러

T4 작전의 시작과 참혹한 결과

이 문서가 허락한 것과 관련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1980년대 독일과 전세계는 경악하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 하에 독일 제3제국에서 자행되었던 의료범죄, 이른바 Aktion T4 작전(이하, T4 작전)에 따라 독일 내 장애인들을 ‘안락사’라는 미명 하에 학살한 사건이었다. 시간상으로 올해가 80년이 된다.

기자 자신이 장애인이라 그런지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가 문서에 서명한 날을 며칠 앞두고 이 T4 작전과 관련 연재를 시작한다. T4 작전에 관해 될 수 있는대로 자세히 쓸 예정이다.

히틀러의 서명으로 시작된 T4 작전의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먼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역사학과 Robert N. Proctor 교수는 자신의 저서 『Racial Hygiene: Medicine under the Nazis」(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의 내용을 따라 결과만 간략하게 언급해 본다. 프록터 교수는 1939년부터 1941년 8월까지 살해된 장애인은 70,27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191, 괄호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

또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밝혀진 나치의 기밀 문서에 따르면 작전 중단 발표 1달 후인 1941년 10월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들은 275,000여명을 안락시켰다고 한다. 그 방법도 다양한데, 몰핀 주사, 약, 그리고 청산가리 가스나 화학무기 등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187)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나치가 T4 작전의 규모를 1,000:10:5:1로 규정했다고 한다. 즉 독일 인구 1,000명당, 10명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고, 그중 5명은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1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 당시 6천5백만-7천만명으로 추산되는 독일 인구 중에서 65,000-70,000명이 이 작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즉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는 것이다.(191)

우생학, 장애인 학살의 배후

도대체 이러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T4 작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학자들은 우생학이 그 뒤에 있다고 한다. 먼저 이번 글에서는 우생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생학이란 용어는 1883년 프란시스 갈튼(Francis Galton, 1822-1911, 영국)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진화론과 함께 발전되었으며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갈튼은 찰스 다윈의 사촌이었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은 후 ‘새로운 지식세계’에 들어온 것에 대한 기쁨을 전했으며, 그것을 사회 전반적으로 적용하기 원했다.

우생학(Eugenics)이란 말의 의미는, Eu는 ‘좋다’는 뜻이고, Genics 는 ‘태어남’을 의미한다. 따라서 Eugenics는 쉽게 말하자면, ‘좋게 태어났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좋다’의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라는 것, 우생학을 어떻게 사회에 적용하려 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그 심각성을 알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좋게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기형이나 질병이 없이 태어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우생학을 적용하려 했던 나치에게 좋게 태어난다는 것은 푸른 눈과 금발을 의미했다.

우생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만을 보전함으로써 인류의 진화를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프란시스 갈튼의 우생학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렇게 문명화된 사회에서 약자들은 그들의 종류를 번식시킨다. 가축들을 교배시켜 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부주의, 혹은 잘못된 방향의 보살핌이 얼마나 빨리 한 가축 종의 약화를 가져오는지 매우 놀랍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경우를 제외하면, 최악의 동물들이 교배하도록 허용할 정도로 어리석은 경우는 거의 없다.”(1)

결국 가축을 교배할 때, 원하는 품종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을 교배하게 함과 동시에 필요한 형질을 갖지 못한 개체들은 제거하거나 더 이상 교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동물 중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가축의 품종 개량과 같은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프란시스 갈튼 자신 역시 바로 그것을 이야기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거되고 바람직한 사람들은 번식해야 하지 않을까?”(2)

앞서 언급했듯, 나치가 바로 그것을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북유럽인들은 가장 ‘진화한’ 인종이었고, 동양인들과 흑인, 그리고 유대인들은 ‘진화되지’ 못한, 원숭이에 가까운 인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덜 진화된 사람들을 제거하고 더 진화된 사람들만 남겨 진화의 속도를 촉진시킴으로써 이 땅에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치는 우생학을 바탕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한 장애인이나 유태인 등에 인종 학살을 실행한 것이다.

우생학, 미국에서 중흥기를 맞다

우생학 운동이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자금을 그렇게 많이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나독일을 제외한 서유럽에서는 그렇게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켈로그(Will Kellogg, 1860–1951)와 같이 거부들에 의해 자금을 조달받아서 사회 전반으로 상당히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생학 소사이어티, 컨퍼런스, 그리고 연구기관들이 설립되었고, 과학 논문 들이 출판되었으며 각 대학에는 우생학부와 학과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 제2차 국제우생학대회 로고 ⓒWikiCommons

이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반적으로 1900년 멘델 법칙의 재발견은 유전 형질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으며, 유전학자들과 사회개혁가들에 의해 우생학이 대중적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20세기 초반의 많은 미국인들은 혈통과 유전 형질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으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결정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 초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우생학 사상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까지 발전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버지니아 주에서 우생학을 근거로 유전적으로 열등한 아동의 출산을 막는다는 ‘단종법’이 1924년 제정되었다. 이 단종법의 제정으로 8,300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법의 첫 피해자는 캐리 벅(Carrie Buck)이란 여성이었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정신박약자여서 린치버그에 있는 ‘간질환자.정신박약자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에 따라 캐리 벅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17살 때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는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양부모는 그녀를 어머니가 있는 수용소로 보냈고, 그녀가 출산한 아이조차 빼앗겼다. 수용소 측은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에 의거 그녀에게 불임수술을 시도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소송 명칭은 벅과 수용소장인 존 벨의 이름을 딴 ‘벅 대(對) 벨(Buck v. Bell)’ 소송으로 붙여졌다. 이 사건을 추적한 학자들에 의하면 이 소송은 애초부터 수용소 측이 단종법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법정소송으로 비화시킨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주장이 나왔을까.

캐리 벅의 국선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어빙 화이트헤드 변호사는 단종법 찬성자로 간질환자 수용소장을 지냈고 수용소 측 변호사와 친구인 점 등으로 볼 때 한마디로 ‘짜고 치는’ 재판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미 대법원은 1927년 “3대에 걸쳐 저능아라면 충분하다”며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한다는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결국 캐리 벅은 버지니아주 단종법의 첫 희생자가 된다.

벅의 불임수술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 33개 주에서 단종법이 시행되어 1970년대까지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수가 6만5천여명이 넘는다. 2차 대전 종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이 미국의 유전학 프로그램과 ‘벅 대 벨’ 소송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유대인 학살정책을 변명할 정도였다. 유럽에서 시작된 우생학이 미국으로 건너가 중흥기를 맞았고 이러한 모습은 다시 독일로 돌아왔던 것이다.

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우생학과 관련된 이야기로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자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며 이번 기사를 마치고자 한다. 아마 2005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고향인 기자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고향 교회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형, 잘 지내죠. 형, 고민도 있고 상의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어요. 그래서 양수 검사를 했는데 아이에게서 다운증후군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태어나 청천벽력(靑天霹靂)이라는 말을 이렇게 실감나게 경험했던 순간도 없었다. 도대체 후배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하는 고민으로 한참을 침묵으로 보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말을 건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오래 못사는 건 알지. 아이가 자라는 중에 또 다른 질병이 없고 잘 보살피면 50살까지는 산다고 하더라. 어쩌면 아이를 먼저 보낼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냐.”

그리고 또 한참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수화기 넘어 후배의 답이 돌아왔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낳아 키워야지요.”

그리고 기자도 이내 후배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건냈다.

“그래, 그러면 됐지. 아프지 않게 잘 키워.”

미주

(미주 1) Charles Darwin,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1st edition (London: John Murray, 1871), 168–169.
(미주 2) Francis Galton, Quoted from Karl Pearson, Letter, and Labours of Francis Galton(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30), v. 3A, 348.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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