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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성령의 역할 강조와 영원한 선택

기사승인 2019.07.20  18: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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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의 삶과 신학 (9)

칼빈은 그의 첫 번째 신앙문답서에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인간 본성의 능력을 능가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유일하고도 고귀한 선물이다. … 신앙은 성령의 빛이다. 이 성령의 빛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이 조명되며 우리의 의지가 확고해진 다.” (미주 17)

신앙에 앞선 성령의 강조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신앙을 성령론 속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성령의 선물이며,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먼저 말하지 않고는 신앙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신앙보다 성령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칼빈을 따르는 장로교 신학의 특징인데, 이점은 칼빈의 칭의론을 루터의 그것과 비교할 때 분명히 드러납니다.

칭의론은 신앙을 통해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행위와 노력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 칼빈의 그의 신학에서 성령의 능력과 역할을 강조한다. ⓒGetty Image

따라서 의롭다는 여김을 받은 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완전해지고 깨끗해져서 의로워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 롭다고 인정하시고 용납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은 강조하는 바가 서로 크게 다릅니다. 루터는 신앙을 통해 은혜로 의롭다는 여김을 받는다는 이 주장에서 강조점 이 ‘신앙’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칼빈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강조점을 둡니다.

칼빈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근거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고, 신앙의 주체는 우리의 종교적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분명히 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신앙을 일으키는 일이며, 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그 의 모든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III.i.1-4).

위로와 소망의 교리인 영원한 선택(예정)

칼빈의 ‘앞선 것’의 강조가 신학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예정론입니다. 그러나 이 예정론은 칭의론이 루터의 신학에서 차지하는 것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칼빈은 목회적 차원의 관심에 서 이 교리에 도달하였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그가 성서를 연구􏰀면서 얻은 해답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선택 또는 결정하셨다(롬 8:28-30)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무수한 일반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구원으로 예정되고 어떤 사람들은 멸망으로 예정된다는 것같이 불합리한 일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놀라게 하는 그 흑암 속에서 이 교리의 유용성뿐 아니라, 그 심히 향기로운 열매까지도 알려진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알기까지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충분히 또 분명하게 확신하지 못할”(III.xxi.1)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III.xxi.5).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값없는 선물로서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더 이상 캐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칼빈은 신자들의 구원에 대해 이같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머리에 접붙임을 받아 결코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다”(III.xxi.7).

칼빈이 예정을 말할 때,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이 예정론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 것은, 정확히 구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만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는 죄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단호한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 반(semi)-펠라기우스적인 인간관과 구원관에 맞서는 어거스틴적 바울적인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전적인 은혜에 대한 강조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정론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에 대한 강조를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예정론이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놓고, 그로써 기독교 자체를 왜곡시킨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기획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 입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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