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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가마(에스겔 24:1-14)

기사승인 2019.07.19  18: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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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걷자

“죄로부터의자유”를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하는 일인 줄로 착각해서 그렇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먼저 심리적인 압박을 최소화하는 현대 심리상담을 잘못된 방향으로 어설프게 적용하다가 그렇게 된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악한 기득권자들이 사람들의 죄책감을 악용하는 것도 사실이고, 과도한 죄책감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만, 그렇다고 죄책감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거듭남도 태어남의 일종이기 때문에 오랜 인내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의 진통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죄책감과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력자들의 죄를 묻어주고 합리화해주는 풍조입니다. 때로는 대의명분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행해지는 이런 잘못된 풍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발생한 이후로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6절)로 하여금 자기 죄를 기억나게 하시려고 죽은 양의 피를 땅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바위 위에 두셨습니다(7절). 하나님의 분노가 가상의 분노가 아니라는 점(8절)과 그분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14절)임을 알게 하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녹슨 가마가 불태워지고 있다>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린 죄는 너무나 중대한 죄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록 심판의 시점에 이르러서 회개한다고 하더라도 그 죄가 벗겨지지 않습니다(12절). 그리고 음란의 죄(13절)가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음란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며, 우상숭배는 탐욕에서 비롯되고, 탐욕은 하나님을 잊게 만들고, 하나님을 잊은 자는 공의와 자비를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섰던 예루살렘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이 나라 곳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흘린 자들이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지 않습니까? 이런 나라가 곧 녹슨 가마입니다.

그들의 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요구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반공”, “반동성애(반인권법)” 같은 구호로 똘똘 뭉쳐서 권력자들의 죄를 감싸주고 합리화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교회가 바로 녹슨 가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은 그저 그분에게 공순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인간의 악을 기억하시거나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요즘 세상에 하나님이 무서워서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요. 그래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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