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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 “독선과 배타가 돈독한 기독교 신앙 아니다”

기사승인 2019.07.03  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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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 가치를 진작시키는 기독교가 되기를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모습일까. 2017년 모 교단에서 1년 여의 기간 동안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1.6%가 부정적이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 이에 대한 원인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기독교의 모습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은 기독교

또한 교회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약간 불신’이 41.4%, ‘매우 불신’ 33.9%로였다. 이 둘을 합치면 교회에 대한 불신은 74.3%에 이른다. 교회에 대한 신뢰는 거의 바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는 2년 전의 것이다. 최근, 소위 극우 기독교 인사들의 행보로 인해 이 수치는 더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딱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 않을까. 속된 말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독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렇게 사회의 지탄으로 대상으로 머물러야 할까. 정말 출구가 없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기독교, 유아기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이런 물음이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오강남 명예교수를 만나게 했다. 2001년 오 교수가 출판한 『예수는 없다』로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출간 15주년을 맞아 전면 개정판이 출판될 정도였다.

▲ 여러 책들과 강연을 통해 열린종교인의 자세를 강조해 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오강남 교수를 만났다. ⓒ에큐메니안

오 교수는 이 책뿐만 아니라 여러 책들을 통해 교회의 교리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유아기적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열린 종교인의 자세를 주문해 왔던 것이다. 아울러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 현대의 가치에 맞지 않게 그 내용을 고수하려는 문자적, 율법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으로 극우 기독교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된 기독교의 탈출구를 오 교수의 주장으로부터 찾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오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다음은 오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한국을 방문해 바쁜 일정을 보내시고 계신데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특히 종교학을 공부하시게 된 이유라든가, 그리고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부분까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 기독교 신앙 부분은 에큐메니안에 찾아와 악플을 남겨 놓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웃음)

저는 초등학교 3, 4학년 경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도 미션 스쿨로 가서 자연히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의문도 많았습니다. 대학교 갈 때는 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 하여 종교학과로 진학했습니다.

한국에서 종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끝내고 캐나다로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가르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가 속한 교단의 교리대로 가르치고 글을 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자진해서 교적을 정리했습니다. 그렇지만 캐나다에서는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단이면서 아주 개방적인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와 퀘이커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 다른 독자들은 어떠한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저술하게 되신 배경 아니면 뒷 이야기 좀 부탁드립니다.

1997년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빌 핍스(Bill Phipps) 목사가 취임하면서 신문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빌 목사는 예수가 우리 마음 안에 부활했고, 예수만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딸이며, 예수님만이 하느님께 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등의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작 캐나다 연합교회에서는 자기들의 총회장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수 기독교, 특히 교포사회 한국 기독교에서 야단이 났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교인일 수 있고 더구나 최대 교단의 총회장이 될 수 있는가 하며 한국 목사와 장로들이 신문에 기고를 하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이를 보다가 저도 교포들에게 현재 서양 기독교 신학의 일반적 추세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불교 등 이웃 종교와의 대화 중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교포 신문에 한참 연재하다가 교포 목사회의 반발 때문에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글들을 좀 보완해서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시편137편 1절에 나오는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노라”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가 있던 유대인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가지고 있던 심정처럼, 저도 제 잔뼈가 굵은 한국 기독교 현실을 생각면서 안타까워 울고 싶은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그런 제목은 수필류의 책에나 적절할 뿐, 다른 제목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낸 몇 개의 제목 중에 <예수는 없다>가 있었습니다. 편집실에서 만장일치로 그 제목이 채택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나더군요. 그래서 <그런 예수는 없다>고 하자고 하니 그러면 김이 빠진다는 답이 왔습니다. 절충안으로 책 표지 안에 영어로 “No Such Jesus”라는 제목을 넣고 첫머리에 <그런 예수는 없다>는 머릿말을 넣었습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지금 제목으로 낙착이 되었습니다. 추천사를 써 주셨던 어느 교수는 그 제목 때문에 자기 이름을 빼라고 해서 빼드렸습니다.

▲ 2001년 출판한 『예수는 없다』는 책을 통해 한국교회에 많은 깨달은 주었던 오강남 교수, 이 책이 출판된지 15주년을 맞아 전면개정판을 출판하기도 했다. ⓒ현암사 제공

▲ 이 책이 출판되고 제 기억에는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기억이 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반론격의 책들도 출판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반응을 접하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물론 반론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교포신문에 반론이 몇 번 올랐습니다. 그 반론에 대한 답을 제 책 끝에 달아 놓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막상 책이 나오자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박수의 이메일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은 목사님들이 이런 책을 싫어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메일을 보내면서 자기는 교회 교직들에게 다 사서 돌렸다고 하더군요.

향린교회 고 홍근수 목사님은 저를 설교자로 초청하고 연세대 등 몇 개의 신학교에서도 강연 할 정도였습니다. 저를 반박하는 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은 천편일률 제가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저도 이 책을 후배들과 읽고 독서토론회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발견한 부분인데요, 영문 제목이, 직역하자면,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선생님께서 전통적인 관점에서 왜곡되어 있던 예수상을 바로잡고 싶은 뜻에서 저술하셨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생각에는 이 부분이 어느 정도 성과(?) 혹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하시는지요?

제가 아는 어느 여자 분은 친구로부터 책을 선물 받고 제목 때문에 불온서적이라 여겨 책꽂이에 제목이 안 보이도록 꺼꾸로 꽂아두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난 다음 우연히 꺼내보고 표지 안에 ‘그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날 밤 기도하며 울며 다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있어서 읽은이들 보다는 ‘그런’이 없어서 읽은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되네요.(웃음)

▲ 그간 선생님께서 동·서양 고전을 넘나드시며 특히 동양 고전, 노자와 장자를 풀이한 책들을 출판하셨습니다. 노자와 장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유학간 대학교 박사과정에서는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고,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되었더군요. 저는 한국에서 주로 서양종교 사상 공부한 입장이라 거기서는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했습니다. 불교의 용수, 화엄, 선사상을 비롯하여 노자 장자의 도가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무하면서 종교에 이런 심층이 있구나 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으로 화엄의 법계연기사상을 택했습니다. 노자 『도덕경』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닮은 데가 많은데 놀랐고, 『장자』는 해학과 풍자, 비유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선불교와 닮은 데가 많아 깊이와 재미를 더해주는 책이었지요. 톨스토이, 하이데거, 마틴 부버, 헤르만 헤세 등 서양사상가들이 노장 사상에 심취되었다는 사실도 즐거운 발견이었습니다.

▲ 선생님의 전공이 종교학이시고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를 읽고 애정어린 비판도 하셨습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오랜 세월 삶을 꾸리시고 강단에서 가르치고 하셨는데요. 캐나다에서 접하신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의 차이점 혹은 한국 기독교가 이런 면에서 캐나다 기독교를 닮았으면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캐나다에는 기독교인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 같은 기독교인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캐나다 연합교회는 세계에서 최초로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동성애 목회자도 인정했습니다. 최근에는 자기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공언한 목회자도 교단에서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이른바 산업화된 사회에서 근본주의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줄어든다고 하는 것은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인지가 발달하면서 따르는 자연적 현상이라 볼 수 있지요. 지금은 ‘탈종교 현상’이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라고 봅니다. 세계에서 제알 잘 산다는 북유럽은 실질적으로 “신없는 사회”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른바 제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는 종교는 “무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근본주의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했고, 지난 3월 아이슬란드 국회에서는 모든 재래종교는 “대량살상무기”라고 공표했습니다. 한국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도 무종교라고 하는 이들이 인구의 56%로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들보다 많아졌습니다.

▲ 오강남 교수는 이번 한국방문 시기 동안 학문공동체 일원들과 코카서스 3국을 방문했다. ⓒ오강남 교수 제공

▲ 한국에서는 종교다원주의 혹은 종교간의 대화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활발하고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극소수 혹은 거의 없어졌다고 하는 평가가 과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한국에 와서 놀라운 점 중 하나는 한국 보수 교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단어가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와서 적어졌다고 하는 것은 이제 상당수 깨친 종교인들이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 없을까요. 논의가 활발하던 활발하지 않던 종교간의 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맥스 뮐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하고, 세계적인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없고 종교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의 대화와 이해가 없어서 빚어지는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현 정치와 관계하여 독선과 배타가 곧 돈독한 신앙이라고 여기는 오해가 불식되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 선생님께서는 종교간의 평화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종교간의 충돌로 인한 전쟁도 많습니다. 특히 각 종교마다 극우주의가 활성화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극우주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선생님의 해법 등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 이른바 제1세계에서는 극우주의가 판을 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 봅니다. 한스 큉의 분석에 의하면 새뮤엘 헌팅턴이 지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은 세계 종교사에 무지한 저자가 세계에 분쟁이 있기를 바라는 미국  국방성의 부탁으로 지어진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코카서스 3국을 다녀 왔습니다. 세 나라도 정치적인 문제와 함께 종교 문제가 얽혀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종교 때문에 전쟁이 나느냐 하는 것은 별문제로 하고 종교가 전쟁을 격화시키거나 서로 으르렁거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평화의 첫걸음이 되지 않나 보는 것입니다.

▲ 선생님께서 많은 책들을 통해 열린 종교인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열린 종교인의 자세가 진보적인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버거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열린 종교인으로 살고자하는 독자들에게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근본주의 신앙은 편한 면도 있습니다. 스스로 고뇌하고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위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사의 모든 문제가 신의 뜻이라 설명하기만 하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열린 종교인들, 심층적인 종교인들은 무조건적으로 믿기보다 스스로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중시하고 거기서 참된 신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사회에서는 버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시대를 이끌려면  천당/지옥, 남녀차별, 인종 차별, 소수자 차별,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백안시하는 태도, 내세만의 강조로 인한 현실 무시 등을 부추기는 재래종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열린 종교인들은, 자기 종파의 교인수 늘리기 위한 선교가 아니라, 이 사회와 세계에 종교의 본령이라는 사랑, 정의, 평등,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진작시킨다는 새로운 의미의 미션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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