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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

기사승인 2019.07.01  18: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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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묵상하며

33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35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3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37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마태12:33~37 새번역)
너희 말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사전이 아니라 너희 마음이다. … 이 부주의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되돌아와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결산의 날이 올 것이다. 말에는 망각한 힘이 있다. 말에 신중을 기하여라. 말이 너희를 구원할 수도 있고, 너희를 저주할 수도 있다.(메시지성경)

비행기 조종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높은 나무에 걸렸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거기는 나무 위입니다.” 그러자 조종사가 말합니다. “당신은 아무래도 목사인 것 같습니다.” 깜짝 놀라 그 사람이 묻습니다. “어떻게 알았소?” “틀림없이 맞지만 전혀 쓸모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알아봤소.”

목사가 하는 말이나 설교, 정말 맞기만 하고 쓸모없는 말은 아닙니까? “하나님 뜻이 있거예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테니, 잘 될 거예요. 믿고 기도하면 분명 응답하십니다.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맞기는 하지만, 삶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말입니까? 정말 맞기만 하고 쓸모없다면 큰 문제입니다. 심판 날에 자신이 한 온갖 쓸 데 없는 말에 해명을 해야 하고, 그 말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이 된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Pinterest

쓸 데 없는 말과 쓸 데 있는 말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같은 말도 쓸모 있을 때가 따로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가난에 견디다 못해 딸에게 가보로 내려오던 금목걸이를 팔아오라고 시켰습니다. 어느 보석상에게 찾아가 보여주니, 세밀하게 감정을 한 후에 말합니다. “지금은 금시세가 좋지 않으니, 이 보석은 나중에 더 급할 때 팔고, 우선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돈을 벌면 어떻겠소?” 그래서 일하게 된 딸은 보석감정을 배웁니다.

시간이 흘러 수준급의 보석감정사가 된 어느 날 가보인 그 금목걸이를 직접 살폈습니다. 그런데 금은 도금이고 보석도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보석상에게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보석상이 미소 지으며 대답합니다. “만일 그때 말해줬다면, 그 말을 믿었겠느냐? 다급한 상황을 이용해 헐값에 사려는 꼼수로 의심했겠지. 다른 보석상에 가서 물어도 마찬가지로 의심하며 절망했겠지. 그때 진실을 말해줬다고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니. 너는 보석감정사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내 말을 믿게 할 신뢰를 얻을 수 없었겠지.(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20~22의 우화를 각색 및 축약)

진실이라도 침묵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익히도록 기다려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진실이 쓸모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아무 쓸모없어 보여도 계속 말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도 하나님 나라를 계속 전하십니다. 제자들조차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 메시야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조롱받고 제자들은 도망갔을 때, 그 모든 가르침은 정말 쓸데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듣는 이 없어도 노래하는 새처럼, 주님께서는 전하셨습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회의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비판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많은 참석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눈치를 줬지만, 1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비판한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개선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분의 표정은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큰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하나님 주신 말씀이라면, 다들 듣기 싫어하는 비판이어도, 아무도 듣지 않고 무시한다 해도 계속 해야 하는구나.”

사랑의 말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아도, 의심해도, 사랑은 사랑을 멈출 수 없습니다. 다만 진실이어도 침묵해야할 때와 아무도 듣지 않아도 계속 말해야할 때를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침묵의 말이든, 비판의 말이든, 말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이기 때문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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