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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카피다, 한신대 연규홍 총장 석사학위논문

기사승인 2019.06.23  19: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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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회는 왜 침묵했는가

“이건 표절이 아니라 카피다.”

2010년 당시 현 한신대학교 연규홍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에 대해 표절심사를 진행한 위원회의 실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단순히 몇 군데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해외 논문을 번역해 자신의 연구인 것처럼 제출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당시 한 위원회에서는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과 같은 결의로 마무리했다.

“외국 논문 표절은 사실이나 통상적인 시효에 따라 문제삼지 않기로 하다. 단, 윤리적 책임을 물어 향후 3년간 교내 연구비 일체(학술연구비지원규정 제2조 및 제3조에 의한 일반연구비 및 교원연구보조비) 지원을 중지하기로 하다.”(아래 사진들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 연규홍 교수의 석사학위논문 표절심사 예비조사위원회 회의록 1 ⓒ에큐메니안
▲ 연규홍 교수의 석사학위논문 표절심사 예비조사위원회 회의록 2 ⓒ에큐메니안

이 문제는 연규홍 교수가 총장으로 입후보 하고 총장에 당선 되었을 당시 다시 문제가 제기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총장에 당선된 연규홍 교수는 표절문제는 이미 결론이 지어진 것이고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단순한 의혹 제기에 불과하며 자신을 흔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이 문제는 일단락되어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지는듯 했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 표절심사 과정 문제없었는가

하지만 며칠 전 에큐메니안은 그 당시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표절심사를 진행했던 “연구윤리 관련 예비조사 위원회 회의록 및 회의 결과 보고” 문건과 이 회의록과 관련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 앞으로 발송된 공문을 입수했다. 또한 이 표절심사 위원회와 관련, 기자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담은 메시지와 메일이 제보되었다. 이에 이 당시 위원회에 참석했던 당사자들을 찾고 의견을 청취했다.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이렇다. 이 당시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표절문제를 심사했던 위원회는 “예비조사” 위원회였고, “본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또한 한신대학교 총장 선거에 들어가기 전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 예비조사와 본조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예비조사가 본조사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 표절은 어느 정도 수위였는가, ▲ 왜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은 이 문제를 알고도 총장 인준을 진행한 것인가 등이다.

먼저, 논문표절심사의 예비조사와 본조사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국가법령정보센터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 제19조, 제20조 그리고 제21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고 있다.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 ① 전문기관 및 대학등의 장이 연구부정행위를 검증하고자 할 경우에는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② 해당 기관의 장은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하였을 경우에는 예비조사 없이 바로 본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③ 대학 등의 장은 연구부정행위 검증을 위해 제16조 제1항에 따른 해당 연구가 수행될 당시 연구자의 소속 기관에서 협조를 요청할 경우 이에 적극 응하여야 한다.
④ 대학 등의 장이 연구자의 연구부정행위를 제보 받아 검증하였을 때에는 그 결과를 해당 연구자의 소속 기관 및 해당 논문의 발간 학술단체에 통보하여야 한다.

제19조(예비조사) ① 예비조사는 연구부정행위 의혹에 대하여 본조사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로, 제보를 접수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착수하여야 한다. 예비조사기구의 형태는 해당기관의 장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② 해당 기관의 장은 피조사자가 연구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에는 본조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
③ 해당기관의 장은 증거자료에 대한 중대한 훼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조사위원회 구성 이전이라도 제23조 제2항에 따른 증거자료 보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④ 해당기관의 장은 예비조사가 종료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제보자에게 예비조사 결과를 문서로 통보하여야 하며, 본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를 포함하여야 한다. 단, 익명제보의 경우는 그러하지 않는다.

제20조(본조사) ① 본조사는 연구부정행위의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위한 절차로, 제21조에 따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② 조사위원회는 제보자와 피조사자에게 의견진술 등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당사자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제21조(조사위원회 구성 등) ① 해당기관의 장은 본조사를 위해 위원장 1명을 포함한 5명 이상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조사위원회 또는 검증기구를 구성할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1. 조사 위원 전체에서 외부인의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함
2. 조사 위원 중 해당 연구 분야 전문가 50% 이상으로 하되, 이 중 소속이 다른 외부 전문가 1인 이상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이 조항들에 따르면, 연구부정, 즉 표절 등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경우, 반드시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기서 예비조사와 본조사의 차이점은 조사기구의 구성에 따른 것이다. 예비조사기구는 “자율적”이지만 본조사기구는 “조사 위원 전체에서 외부인의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하고, “해당 연구 분야 전문가 50% 이상으로 하되, 이 중 소속이 다른 외부 전문가 1인 이상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왜 본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쉽게 말하자면, 예비조사는 해당 대학 내의 전문가로 구성될 수 있지만, 본조사는 외부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당시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표절심사는 한신대 내 전문가로만 구성되어 표절을 심사했던 것이다. “연구윤리 관련 예비조사 위원회 회의록 및 회의 결과 보고” 문건에 의하면 염○, 김○○, 유○○ 교수 등이 참석조사위원이었고 문건 자체도 “예비조사”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살펴보면 이 3명의 예비조사위원들은 2차례 회의를 가졌다. 2010년 11월25일과 12월3일이었고, 이 당시 2차례 회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가지고 결과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 결과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작성되어 있다.

3. 예비조사위원회는 위 ○가지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 검토하였음.
③ 연규홍 교수 석사논문에 대한 외국논문 표절 의혹
- 대학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연구윤리 지침에 의하면, 타인의 저술 문장을 마치 자신의 문장인 것처럼 사용하는 행위(타인의 연속된 2개 이상의 문장을 인용표시 없이 그대로 사용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전공 분야의 특성과 해당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판정한다.)는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봄.
- 연규홍 교수의 석사학위 논문 「초기 M. Luther의 “Iustitia Christi” 연구」(1984)은 Martin Brecht의 논문 「Iustitia Christi : Die Entdeckung Martin Luthers」(1977)의 표절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함.
- 판단 근거: 연규홍 교수의 석사학위 논문의 2, 3, 4장은 Brecht 논문의 2-6절의 내용과 논술 순서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
- 또한 ○○○ 교수가 연규홍 교수에게 제기한 위 석사학위논문 표절의혹에 대한 질의서에 대한 연규홍 교수의 소명서(2007.4.20)를 봐도, 본인의 논문이 Brecht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해명 자체는 없음.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2010년 12월17일(금) 오후 2시30분 한신대 본관2층 회의실에서 “학술진흥 및 연구윤리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 당시 예비조사결과를 보고 받은 자리에 참석했던 교수들은 정○○, 이○○, 최○○, 유○○, 김○○, 김○○, 염○, 홍○○ 교수 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결정된 결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외국 논문 표절은 사실이나 통상적인 시효에 따라 문제삼지 않기로 하다. 단, 윤리적 책임을 물어 향후 3년간 교내 연구비 일체(학술연구비지원규정 제2조 및 제3조에 의한 일반연구비 및 교원연구보조비) 지원을 중지하기로 하다.”

그렇다면 왜 예비조사는 본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2010년 12월17일(금) 오후2시30분 회의가 핵심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길래 본조사로 가지 않게 되었냐는 것이다.

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교수들을 중심으로 연락을 취해 의견을 청취했다. 한 교수는 이렇게 언급했다.

“연규홍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에 대해 표절이냐 아니냐는 논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연규홍 총장의 석사학위논문표절로 학위를 취소하게 되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교수가 없다고 보았다. 연규홍 교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누군가 이 결정으로 다른 교수들의 논문까지 검증하자고 나서면 당연히 검증해야 하고 그에 따라 학위가 취소될 교수가 한 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7-80년대 석사학위논문 표절은 비일비재 했다. 관행이라고 하면 비판을 받겠지만 그런 시절이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또 한 교수는 이런 언급을 했다.

“그 당시에는 연규홍 총장의 석사학위 논문표절을 인정하고 본조사로 이어졌다면 석사학위가 취소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사실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연규홍 총장은 그렇다고 치고 그를 지도교수로 해서 학위논문을 쓴 학생들의 문제가 얽힌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잘 알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의견들에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제와 겹쳐진다. 2018년 당시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를 거쳐 표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2018년 3월 본조사에 들어갔다. 본조사를 거쳐 김 전 장관에 대한 논문표절 심사를 진행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김 부총리의 석사논문 136군데에서 정확한 문헌 인용 표시가 없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 타인의 문장을 정확한 인용 표시 없이 사용하는 것은 연구 부적절행위에 해당한다. … 당시 경영대 석사논문 심사 기준을 봐도 일괄 인용의 정도와 빈도 측면에서 적절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 다만 당시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심사위원들도 인용 사실을 인지했던 점들을 고려해 위반의 정도는 경미하다고 판단된다.”

이 당시 서울대 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거쳐 정확한 인용 정도까지 표시해 발표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한신대 조사위는 예비조사에서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윤리위는 본조사로 이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었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표절은 어느 정도였나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서울대 진실성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표절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 표절 정도는 반드시 본조사에서 도출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예비조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예비조사위 문건이나 윤리위 결과보고서 그 어디에도 표절정도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표절 정도는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이는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이 있고, 이 문건을 보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요청을 해야 하는 부분이며 학교측에서는 이를 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부분이다.

그래서 이미 공개되어 있는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과 이를 표절했다고 하는 독일 논문을 직접 비교해 보기로 했다. 즉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인 「초기 M. Luther의 “Iustitia Christi” 연구」(1984)와 Martin Brecht의 논문 「Iustitia Christi : Die Entdeckung Martin Luthers」(1977)를 직접 비교해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먼저 요약하자면, 우선 Martin Brecht의 논문제목과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제목이 같다. 전자가 ‘발견’이라고 한 것을 후자는 ‘초기’라고 살짝 변용을 했다. 하지만 목차에 들어서면 이러한 단어변용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전체가 Brecht의 논문 전체를 번역해 요약하고 있다.

연 총장은 5개의 장으로 논문을 나열한다. 1. 문제와 연구사, 2. 저작집 서언(1545)에 나타난 루터의 개혁적 원리 발견, 3. “Iustitia Christi”의 형성과정, 3.1 초기신학 작품에 나타난 신학적 갈등, 3.2 제 1시편 강해에서의 “Iustitia Dei”의 문제화, 4. “Iustitia Christi”의 신학적 형성, 4.1 새로운 신학적 발단, 4.2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의로우신 하나님”, 4.3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 강해에 나타난 “구속으로서의 Iustitia Christi”, 5. 결론

이러한 순서도 Brecht의 논문 순서와 동일하다.

먼저 기자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 부분은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1장의 첫 단락이다. 연 총장은 Martin Brecht의 문장을 그대로 번역해 옮긴다. 여기에서 마르틴 루터의 개혁적 원리의 발견과 시기와 내용에 관련된 독일 저자의 물음을 그대로 가져오며 역사비평의 연구방법이 새로운 암시를 가져왔다는 그의 논조를 그대로 번역한다.

그 후 K. Holl과 G. Ebeling 그리고 E. Bizer의 역사비평 방법에 관한 한계에 대해 Brecht의 입장을 번역했다. 이어서 마치 연 총장은 자신이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루터의 초기 자료를 엄밀히 고증하고 해석하려는 의도를 밝힌다. 하지만 이는 Brecht의 입장이다.

어떤 학위 논문이든지 연구사와 연구 의의 등 가장 앞부분에 위치하는 내용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은 앞부분에서조차 Brecht의 논문을 그냥 번역해서 옮겨놓았다. 연 총장 자신의 말이 없다.

위에 제시한 사진은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과 Brecht의 부분을 비교하기 위해 게시한 것이다(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은 한글로 되어 있으니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인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Brecht의 논문을 기자 자신이 번역한 것을 제시하며 연 총장이 석사학위논문에서 번역한 것은 밑줄을 그었다.

오늘 루터의 종교개혁 발견(Reformatorische Entdeckung)을 다루는 사람은 극심하게 지치고 좌절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것의 시기와 내용에 관한 논란은 가망 없어 듯 보인다. 이 사건을 첫 번째 시편 강의 기간(1513-1515)에 잡는 것과 1518년으로 시기를 늦게 잡는 것 사이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개혁 연구에 있어 이런 상태의 심각성은, 역사비평 방법 수단으로는 외견상 원자료의 발언과 그것의 자격 문제에 대해 일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데 있다. 금세기에 있어 루터 초기 신학에 대한 집중적 탐구는 그것의 탈선보다는 차라리 그것의 인상적인 결과를 통해 두드러지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연구는 루터의 발견의 주제를 언젠가 내버려둘 수 없다. 각 세대의 종교개혁 역사가들은, 학문과 교회를 종교개혁 시초와 토대에 대해 확신시켜야 할 과제에 새로이 직면했다. 교회사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종교개혁의 세계사적 과정의 종교적, 신학적 기원을 해명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교회사가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종교개혁 초기에 대한 판단은 분명히 종교개혁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에 대해서 규정적 기능을 지니며 이 기초 없이는 넓은 노정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다 많은 의견에 근거해 새로운 일치에 이를 수 있다.
연구가 여기서 걸어야 하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자료의 가능한 한 객관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연구 상황으로부터, 이 주제를 논구함에 있어 분명히 그때마다 참여한 학자의 관심이 특히 중요하며 결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경고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의 예로서 K. Holl의 칸트적으로 채색된 루터의 “양심적 종교”의 관점, 실존주의 신학과 해석학에 의해 결정된 G. Ebeling의 루터 해석, 혹은 E. Bizer의 말씀의 신학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는 더 계속할 수 있다. 각각의 보는 방법은 그 나름의 학파를 형성했고 그것의 문제 제기에 상응하는, 일부 분명히 귀중한 연구들을 내놓았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연구는 드물지 않게 문제 범위에 있어서 복잡해졌고, 차별화되었고, 추상화되었고, 그것들은 때로는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루터에게 있어 서의 지나친 강조(Überspitzung), 역설, 엄격한 표현들에 간섭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들은 종종 중재되기 어려웠고 따라서 더 이상 요청받지 못했다. 여기에 경련, 오의(Esoterik), 무결실성(Sterilität)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자명하게 역사적 연구는 자기 관점 없이는 추진될 수 없다. 그러나 루터의 초기에 대한 몰두에 있어서 자신의 고유한 전이해(Vorverständnis)를 의식하고 그것을 솔직히 드러내고 원자료를 들음에 있어서 가능한 한 무시하는 것이 특히 적절하다. 내 자신은 루터 이해에 있어서 원래 나의 스승 H. Rückert와 Holl 학파에 의해서, 또한 G. Ebeling의 연구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E. Bizer 의 방법은 역시 오랫동안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루터의 의인론의 시초에 대한 세미나 와 연관해서 개방성과 긴장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했다. 루터의 중심적 발견은 원래 의인론과 상관한 다는 것을 나는 원자료에 대한 잠정적 지식에 근거해서 전제하였다.
루터의 초기에 대한 탐구가 빠졌던 난제들은 개별 연구자들의 입장의 제약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특별히 문제 자체에서 기인한다. 실로 때로는 원자료에 대한 그릇된 해석을, 예를 들어 Holl 학파 내에서 그렇게 영향력 있고, 루터 연구에 다른 면에서는 공헌한 E. Vogelsang에게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더 깊은 데 있다: 금세기 시작 이래 루터 연구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혹은 고려되지 않았던 초기 루터의 강의 자료를 다루었고, 이것은 루터 신학의 초기를 서술함에 있어서 새로운 토대가 되었다. 새로운 자료들이 관심을 끈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결과를 간과할 수 없다. 이 전의 루터 연구로부터 벗어나서 적어도 단계별로 청년 루터에 고정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의 발언과 문제 제기는 열정적으로 종교개혁적이라고 주장되었다. 이를 위해서 루터의 성숙한 신학의 중요한 주제 들, 예를 들어 그의 그리스도론 혹은 성례전론은 차라리 뒷전으로 물렀거나 종파적 루터 연구에 넘겨졌다. 이런 일방화가 지속적으로 루터 연구의 균형 상실을 초래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은 부당하지 않다. 사람들이 특별히 다룬 자료들은 깊고도 넓은 개혁의 문서들이다. 이것은 그것을 분명히 해석하는 것 자 체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물지 않게 그것들의 진술들은 애매하다. 더구나 이중적 문맥에서 해석 될 수 있다. 즉 때로는 루터가 유래한 중세 후기 신학과의 문맥에서, 때로는 루터의 성숙한 신학에서부터 해석될 수 잇다. 여기에서 상이한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루터 자신의 허다한 발언들과 자신의 신학적 발전에 대한 회고, 특히 1545년 Weimar에서 출판된 루터의 라틴어 저작집 첫 번째권의 유명한 서문은 해석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런 발언들에서 루터의 관심, 즉 그가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수된 경건과 신학의 오류들에 사로잡혀 있었는지가 대개 설명될 수 있다. 이 관심이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해석에서 고려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자신 발언 에 반하여 종교개혁적 발견의 초기 연대 설정을 지지하는 저 많은 루터 연구가들은, 루터의 대부분의 초기 작품을 전(前)종교개혁적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루터의 기억 착각으로 간주하였다. 여기서 자료에 있어서 어떤 난관에 빠지게 되는지를 K. Aland는 실질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Bizer와는 다른 길로, 루터의 회고적 자기 증언과 초기 저작의 발언들이 1518년에 비로소 일치한다는 결과에 도달했다. 이 맥락에서 때로는 루터의 신학적 발전을 그의 종교개혁적 돌파의 자서전적 경험과 구별하려는 시도들은, 내게는 미봉적 해결책인 듯 보인다. 이런 해결책은 본질적인 것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설명할 따름이고 루터의 신학적 연구를 일부 너무 학문적으로 나타나게 한다. 청년 루터가 1518년 이전에 그의 해석 방법에서 혹은 그의 신 관념에 있어서 직선적인 발전을 거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문제는 얼마나 오래 어느 정도나 그가 중세 후기의 신학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Bizer는 언제 어디서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적인 것이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적어도 루터 자신의 신학적 발전과 개혁적 발견에 대한 그 자신의 발언 을 초기 자료에서의 발견과 조화를 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다음 연구에서 이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Iustitia Dei”의 주제가 루터의 종교개혁적 신학에 있어서 중심적 의미를 가지는지 혹은 다 만 다른 것 가운데 하나인지는 결론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긴 부분을 해석해 인용한 것을 독자들에게 사과드리지만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린다. 또 하나의 예를 더 제시한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13-15쪽과 Brecht의 논문 186-187쪽 부분이다. 이 역시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사진과 Brecht의 논문 사진을 먼제 제시한다(이 사진들 역시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아래 부분은 Brecht의 논문을 기자가 해석한 것이며 연 총장이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에 번역해 옮긴 것은 밑줄을 그었다.

11. 루터는 결국, 기대에 반해 그의 새로운 통찰이 확증된 (물론 약간은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어거스틴의 영과 문자(De spiritu et littera) 독서를 언급한다. 로마서 강의가 입증하듯이, 루터는 1518년 이전부터 오래 이 어거스틴의 글에 친숙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후기 연대 추정에 대한 반증은 아니다. 루터는 1518년 초에 새롭게 영과 문제와 접촉하게 되었으니, 어거스틴의 이 글에 대한 Karlstadt의 주석과의 맥락에서였다는 것은 입증된다.
요약하자면, 1545년의 서문은 그 일련의 발언들에 있어서, 1518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보고하는, 본질적으로 분명히 이해 가능한 본문이다. 루터의 보고는 무엇보다 다음 점들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 1518년까지 하나님의 의는 믿음을 통해 선사된 의인으로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2. 1518년에 “Iustitia Dei”의 새로운 이해는 입증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복음에 대해 루터가 처해 있던 갈등, 긴장과 저항의 무엇인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루터의 초기 신학에 대한 고찰 방식이나, 지금까지 실천되지 않았다. 4. 1518년 이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주목해야 한다. 루터에게서 일찍이 거듭 개별적 종교개혁적 통찰들이 번뜩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우리의 물음은 이것이 언제 통일적으로 견지되는 개념으로 결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Pesch는 1545년의 서문과 연관해서 루터 연구에 의해 토론된 물음들을 수집했다. 이 수집 목록은 이 연구의 출발 위치를 또 다시 분명히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1. 서문은 루터의 종교개혁적 발견을 작 하기 위해 기초가 나쁘지 않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작업가설 혹은 단서로 이해된다. 2. 서문은 1518년과 연관된다. 3. 종교개혁적 인식의 내용은 주석적 성격이지만, 또한 거꾸로 거기서부터 제약된 것처럼 즉시 조직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4. 루터의 초기 저서와 서문과의 관계는 다음의 분석에서 해명 될 수 있다. 물론 서문은 이를 위한 비판적 지침을 내포한다.
우리가 작업가설로서의 서문과 더불어 초기 저서로 향하기 전에, 그것들과 루터의 해당하는 다른 자기 증언들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섭렵의 결과에 작업가설에 부여되어야 할 비중이 일부 달려있기 때문이다.
1532년의 식탁 담화 연설(Tischredenäußerungen)은 서문과 매우 가깝다. 이것들은 Iustitia Dei 표현이 루터의 양심에 가져다 준 당혹감에 대해 보고한다. 루터는 여기서 여러 번 “천둥”(Donnerschlag)에 대해 말한다. 의로운 신은 징벌하는 신으로 등식화되고 체험되었다. 그는 의롭다. 그러므로 처벌했다. (Iustus, ergo puniet) 이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새로운 발견은 서문에서와 거의 비슷하게 서술된다. 역 시 1542/1543의 탁상 담화도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은 언급한 바와 같이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 끝까지 진행된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은 Brecht의 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당시 예비조사위원들은 “99% 카피”라고 했을까.

그것은 군데군데 나타나는 독일어 오역에 기인한다. 만약 연 총장이 독일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번역했다면 99% 카피가 아니라 “100% 카피”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 기사에서는 오역에 대해 다루지 않겠다.

논문을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면 문제를 제기한 저자가 다른 이들의 견해를 가설로 내세우며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이 주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문제제기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결론부에서 자신의 주장이 하나 정도는 담겨야 한다.

그러나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은 이러한 부분이 모두 결핍되어 있고 심지어 Brecht의 논문을 그대로 번역·복사한 것이다.

왜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회는 침묵했는가

이제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이 총장 선거가 진행되던 시기에 이미 연 총장의 논문표절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총장 선임을 결의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 부분은 정치적 이해 관계였다고만 언급해 둔다. 누가 누구를 위한 정치적 이해 관계였는지는 자칫 명예훼손의 문제까지 직결되기 때문이다(아래 게시한 공문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은 연규홍 교수의 석사학위논문표절에 관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에큐메니안

또한 총장 선거가 시작되기 전, 즉 총장 입후보시기에 한 교수가 연 총장에게 “논문표절문제가 있다. 그러니 입후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연 총장은 총장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야기를 전한 당사자인 한 교수는 “그 정도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총장 후보에 등록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걸 보면서 제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이야기 할 가치도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접었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또 하나 언급해야 할 점은 이사회의 무반응에 대한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장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침묵한 것의 의미를 이사회 내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연 총장 관련 해법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한신대학교 “연규홍 총장에 대한 신임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연 총장에 대한 자격 문제이다. 논문표절, 금품수수 그리고 (교원) 특혜채용비리 등이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연 총장의 반대파로 지칭되는 학생, 교수 그리고 직원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내 사찰 건이다.

연 총장에 대한 금품수수와 특혜채용비리는 이와 관련된 “박현준” 음악감독의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새롭게 등장한 학내 사찰과 관련해서는 김강호 전 비서실장의 양심고백으로 문제가 제기되었고 증거 자료도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논문표절문제도 이번 기사를 통해 정리되었다.

연 총장의 언급처럼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은 표절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표절의 수준을 넘어 99%가 해외논문을 번역해 자신의 논문으로 제출한 것이다. 연 총장의 석사학위논문은 자신의 논문이 아니라 Martin Brecht의 논문이며, 흡사 Brecht가 석사학위를 받은 격이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본조사가 재게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상곤 전 장관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예비조사를 통해 이미 결의된 문제이기 때문에 본조사가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연 총장의 최측근이었던 김강호 전 비서실장은 이러한 주장을 예상했던 것일까, 본조사가 어렵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게시판에 글을 게제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주장은 “‘학위검증위원회’를 구성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한신대학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회 문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학문적 성과나 학교 발전 등이 아니라 전혀 별개의 것으로 총장이 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장 총회가 제도적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보완책 이전에 이사회가 왜 그렇게 묵인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신대학교나 한국기독교장로회나 한국의 많은 신학대학들 중 이미 이사회 문제로 몸살을 앓은 학교들이 존재하고 어떤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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