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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신학회, 박순경의 삶과 통일신학을 이야기하다

기사승인 2019.06.08  17: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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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계 학술세미나를 통해 통일신학과 여성신학 과제 밝혀

“박순경” 이 이름 석자가 가지고 있는, 신학이나 통일운동에 있어 차지하고 있는 무게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여성신학회(회장 김정숙 교수, 이하 여신학회)가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예속의 땅에서 분단의 자리가 되었다

여신학회 하계 학술세미나를 ‘원초 박순경의 삶과 신학 : 기독교, 민족 통일을 말하다.’ 주제로 통일신학과 통일운동에 중대한 역할을 해온 박순경 교수의 삶과 신학을 그려본 것이다. 2019년 6월 8일(토) 오전 10시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제1세미나실에서 세미나는 진행되었다.

▲ 한국여성신학회 하계 학술세미나가 주말에 진행되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었다. ⓒ김유미

이번 세미나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여신학회 김정숙 회장의 인사말과 여신학회 편집위원장인 최순양 교수가 박순경 교수를 소개하는 시간 그리고 박순경 교수의 삶을 집약적으로 다룬 영상이 상영되었다. 또한 박순경 교수의 후학들인 감신대 여학생회의 특송도 진행되었다.

먼저 김정숙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선조의 자리가 예속의 땅 식민지의 자리였다면, 1세기를 뛴 지금의 자리는 분단의 자리임을 되새겼다. 김 회장은 지난 세기 선조의 뜻이 독립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뜻은 통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다며 그 취지를 밝혔다.

이어진 축사에서 최영실 교수(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이 자리를 마련해 준 여성신학회에 감사를 전하며, 오늘 이 자리가 박순경 교수의 뜻을 알게 되는 자리가 될 테니 우리에게 부여될 과제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순경 교수의 뒤를 따라 정진할 후배, 후학들에게 격려를 전한 것이다.

박순경, 88선언을 자신의 신학에 녹여낸 학자

1부 행사에 이어 시작된 본격적인 학술세미나는 이화여대 강단에서 함께 신학의 길을 걸어 온 서광선 교수(이화여대)가 “민족 통일의 여정에서 : 박순경의 통일 신학과 88선언”을 주제로 세미나의 시작을 알렸다.

서 교수는 먼저 1951년 한국전쟁의 한 복판, 부산에서 만난 박순경 교수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그때의 만남을 서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구질구질한 피난지 부산의 한복판에서 만난 대학생 박순경 선생님은 전쟁터, 폭탄과 포탄이 쓸고 간 언덕 위에 홀로 피어있는 들국화처럼, 청순하고 외롭고 아름다운 젊은 지성인이었습니다.”

또한 근본주의 목사 집안에서 성장한 서 교수와 좌익 기독교 청년 지성인이었던 박 교수와의 만남은 이질적이었지만 박 교수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특히 좌우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을 흠모하던 박 교수를 떠올렸다. 공산주의 밖에 없다는 박 교수의 사상을 들려주었다.

이러한 박 교수의 사상적 배경을 중심으로 서 교수는 박순경 교수의 통일 방안과 “88선언”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서 교수는 박순경 교수의 “통일신학”은 1991년 북조선의 주체사상 전문가 박승덕 박사와의 만난과 대화를 통해 정리되고 강화 되었다고 한다. 특히 박 교수는 1991년 7월 동경에서의 주체사상 강연에서 ‘주체사상의 신봉자이며 선동자’로 고발된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재판장에서 자신의 “통일신학”을 천명하는 “통일신학 강의”를 통해 자신의 “통일신학”을 밝혔다고 한다. 이 재판장에서의 강의는 “88선언”의 내용 일부, 특히 통일 정책 제안에 찬동하는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일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3년 구형에)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되었다. 출감 이후 박 교수는 1995년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의 일환인 “민족대토론회”에서 발표한 “통일운동의 원칙과 방도”를 통해 “88선언”이 제시한 통일의 5대 원칙의 준거인 1972년 7.4 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3대 원칙에 “민주”를 더해 4대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이에 더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편에서도 역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개방의 가능성을 포함한 “개혁 개방”을 시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0년대 중반, 중국의 덩샤오핑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내세운 개혁 개방의 길을 시도해야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2018년 작년 봄부터 불어 닥친 평화의 바람에 삶의 보람을 느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남북정상의 합의문과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지켜보면서 “88선언”과 박순경 교수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하고 환영하고 환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 교수는 동시에 분단 당사국들의 분단에 기생해 온 기득권 세력의 반동과 반역, 반민족, 반평화, 반통일 세력들이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마지막으로 1991년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위반한 정치범으로 죄수복을 입고 감옥살이에서 저술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에서 밝힌 그 날을 박순경 교수의 100순 잔치 이전에 보실 수 있으리라 희망하고 믿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박순경, 한국적 신학을 통일신학으로 정립했던 사람

서광선 교수에 이어 박순경 교수의 제자로 박 교수의 통일신학과 통일운동을 계승하고 있는 한신대 김애영 명예교수가 “원초 박순경의 통일신학”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표를 진행했다. 먼저, 김애경 교수는 한 인간의 살아온 삶과 신학이 어떤 연관성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전기 신학’(biographical theology)을 소개하며 시작했다. 즉 박순경 교수의 통일신학을 삶의 자취와 더불어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 왼쪽부터 한국여성신학회 하계 학술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은 최순양 회장과 발표를 맡은 서광선 교수, 이은선 교수, 김애영 교수. ⓒ김유미

또한 지금까지 발표된 박순경 교수의 저술이나 대담록을 소개했다. 특히 김 교수는 박순경 교수의 “통일신학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박 교수가 어떻게 통일신학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계기들에 대하여 요약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밝혔다. 신학계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전권을 다 읽은 학자는 박순경 교수 밖에 없다.”는 말처럼 서구신학에서 한국통일신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에 관해 언급하며 한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우리의 현실과 전통에서 학문적 방법론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른바 ‘우리 학문’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어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시도조차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실에서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 개최를 기회로 삼아 한국기독교학회는 한국교회와 신학을 세계교회에 소개하는 영문책자 발간을 목표로 2011년 한국기독교학회 제40차 정기학술대회에서 “글로벌 시대의 한국 신학”이라는 공통 주제를 다룬 경험을 언급했다. 약 50여명의 한국 신학자들이 발표하고 논찬한 논문들 중 “글로벌 시대의 한국 신학”이라는 주제에 맞는 논문은 몇 편되지 않았음을 밝히며 이것이 한국신학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현실이지 않느냐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통일신학이야말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신학임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박순경 교수의 통일 신학이 주목받지 못하는 까닭이 한국신학계의 남성우월주의, 지배의식, 성차별주의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계속해서 김 교수는 박순경 교수가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밝히기를 ‘한민족의 신학’이니 ‘민족신학’이니 ‘민족교회’이니 하는 표현들을 매우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한민족 혹은 조선민족의 신학적 규정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박 교수는 민족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은 개념적으로 몇 마디 말로 해답될 수 없다고 한다.

민족은 지연, 혈연, 언어, 종교, 문화, 사회경제적 삶의 집단 혹은 공동체로서의 역사적 산물이므로 그때 그때의 역사적 상황에 다라 민족 개념이 규정될 수 있으며 그때 그때에 규정되는 민족의 특수성이 총체적인 운명과 명맥을 지닌다는 것이다. 민족의 주체성은 공동체적 주체성으로서 사회, 경제적 평등 없이  성립될 수없고 또 왜곡되어버리며 또 민족의 주체성은 그래서 민족내적으로 또한 대외적으로 반민족적 세력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질서를 창출하는 역사적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박순경 교수가 한국신학으로서의 통일신학과 서양신학전통과의 관계를 논하면서 서양신학 전통을 일괄적으로 처리, 비판하고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시도들을 경계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제3세계에서 특히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론이 서양의 형이상학적 산물로 간주되고 난해한 것으로 여겨져 도외시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박 교수는 그러한 교의들의 유위미성을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주지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일을 갈구하는 한민족의 신학적 주제는 서양 기독교와 신학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건이므로 통일신학의 명제는 서구신학 전통을 선별적으로 흡수해 가지되 이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제임을 역설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박순경 교수는 여성신학이 통일신학을 비롯한 한민족의 신학으로부터 민족사적 통일신학의 전망을, 그리고 통일신학을 비롯한 한국신학은 여성신학으로부터 성차별주의적 남성지배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 전망을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애영 명예교수는 우리 민족의 최대의 암초 분단이라는 민족모순과 이를 극복하고자하는 추구력에 있어 박순경은 둘째가라면 몹시 서운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의 발표를 마쳤다.

박순경, 무거운 신학적 과제를 후학들에게 남긴 신학자

이날 세미나 마지막 발표는 세종대 이은선 명예교수가 “한국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 신학의 세계 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이었다. 이은선 교수는 여성 신학자로서 여성 신학자, 박순경 교수를 바라보겠다 밝히며 그의 발표를 시작했다. 특히 지금까지 박순경 통일신학과의 대화와 그 연구는 주로 정치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면서 하지만 자신은 박순경 통일신학을 토착화 신학의 한 과업으로 여기면서 수행해 왔다는 것을 밝힐 것임을 언급했다.

특히 이 교수는 토착화 신학을 통해 박순경의 통일신학을 이야기하면서 박순경의 통일신학에서도 마지막으로 넘지 못하는 예수 부활의 독점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설명했다.

▲ 이날 여성신학회는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에서 감사패를 박순경 교수에게 수여했다. 박순경 교수를 대신해 제자 김애영 교수가 받았다. ⓒ김유미

이 교수는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오늘날 불의한 현실에 대한 일침이고 항거라 지적했다. 그 일침은 2019년 오늘까지도 여전히 지속되는 갈등과 분열, 식민과 불의한 현실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건국의 길을 찾는 고통의 행군이라 말하며 박순경의 이 행군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반세기 이상의 긴 길이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박 교수의 제1화두는 민족, 한민족이었음을 주목했다. 어떻게 근현대 서구적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민족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사적 메시지로서 세계적 의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박 교수의 화두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박 교수에게 가장 시급하고 긴급한 일은 한반도의 ‘통일’이었음을 말하며 이에 박 교수가 자신이 믿고 공부하게 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하나님과 구원과 성령의 역사가 자기 민족의 현실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 사람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박 교수의 통일신학은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온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 나라 의식이 그의 신학 토대이자 지향점이 되므로 그 민족신학은 결국 세계신학으로 향하고, 그렇게 전 세계를 향한 의미로 한국신학이 확장될 때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창립 39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에서 ‘3.1운동 백주년과 허스토리’이라는 주제 아래 그 삶과 행적을 재현해 내고자 한 ‘(서대문 감옥소) 8호실 언니들’의 한 사람인 권애라(1887-1973) 여사와 같은 뛰어난 여성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를 우리 현실이 오랫동안 주목하지 못했음을 말하며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한국여성신학에게 이런 여성들과 함께 하라고 촉구하고, 우리에게 너무도 큰 축복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민족화해와 통일이라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그 임무를 이제 우리가 함께 나누어지면서 이 역할을 앞서 행한 여성선배들을 더욱 찾아내어서 한반도의 삶뿐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의미로 풀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신앙이 민족과 민주으 여성과 세계의 관점으로부터 어떻게 개조되어야 할지를 깊이 숙고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모든 세미나를 마치며 김정숙 회장은 통일을 이론 뿐만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며 참석자들을 독려했다.

김유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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