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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교회의 탄생과 심판의 날 (욜 2:23-32; 행 2:1-13; 눅 11:5-13)

기사승인 2019.06.06  21: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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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주일(6월9일)

1. 서론

은행 대출팀이 대출을 원하는 회사를 방문하여 면접 실사를 하게 되면 직원식당을 꼭 들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당에 그 회사 유니폼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곳은 외부 파견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이 많다는 증거라 대출을 꺼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도나 화장실이 더러운 회사는 구성원들이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증거로 이 역시 은행에서는 대출을 꺼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감이 옵니다. 온누리 교회의 고(故) 하용조 목사님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10가지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1)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 (행 2:1~4)
2)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 (행 2:42~47)
3)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 (행 3:1~10)
4) 고난 속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 (행 4:1~4)
5) 소유를 나누어 쓰는 교회 (행 4:32~37)
6) 순결과 거룩을 꿈꾸는 교회 (행 5:1~11)
7)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교회 (행 6:1~7)
8) 이방인을 가슴에 품는 교회 (행 10:17~23)
9)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 (행 13:1~3)
10)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 (행 28:30~31)

오늘은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강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는 성령강림을, 혹은 성령 충만을 방언이나, 신기한 체험으로만 생각하는데, 성령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교회의 생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라는 말씀이며, 마침내 성령이 오시면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어, 이제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령이 오시는 날을 ‘심판의 날’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을 통해 성령강림의 참의미를 깨달아, 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또한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누가복음 11장은 ‘기도장’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기도의 원리와 자세에 관해 교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하며 간구하는 기도자의 자세를 성령을 주시는 것과 연결해서 본문은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 볼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 11:5-8)

기도에 있어서, 끈질긴 간구의 중요성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찮더라도, 끈질기게 간구하면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 요구대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요 11:9-13)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은 오순절 날, 제자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불같이 임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언어들로

이때는 오순절(Pentecost)이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교 절기로는 원래 첫 수확한 밀을 바치는 감사절이었지만,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히브리인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신 사건과 연결 지었습니다. 즉, 히브리인들이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지 50일째 되는 날(유월절이 지난 지 50일째 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공동체로 이스라엘을 시작했는데, 이것을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2』 (나남, 2008)에 따르면, 이 당시 약 270만 명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볼까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1-8)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셨죠?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은 부활절로부터 50일째에 오는 주일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구원의 절기인 유월절의 속죄양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그리고 유월절 후, 50일,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을 시작하는 절기가 바로 오순절이자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

아무튼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에서는 ‘방언’이라고 불리는, ‘다른 언어들(ἑτέραις γλώσσαις)’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헤테라이스 글로스사이스’는 말 그대로 다른 언어입니다. 9-11절에 그 다른 언어를 나열해 주고 있죠?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행 2:9-11a).” 이것은 지중해 연안 일대(팔레스틴, 그리스, 로마, 북아프리카)와 저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 지역을 말합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각자 그들이 흩어져 살고 있던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모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행 2:12-13)

두 가지 반응입니다. 하나는 ‘놀라고 당황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조롱’입니다. 새술(Γλεύκους)에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반응이었을까요? 먼저 이들이 다른 언어들로 이야기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용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2장 16절에 사도 베드로는 이것이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구약 말씀 요엘서로 넘어가 볼까요?

4. 크고 두려운 날: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요엘에 관해서, ‘브두엘의 아들(욜 1:1)’이라는 언급 외에는 직접적인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엘이 성전과 제사에 관한 지식(욜 1:13-14)이 있었음과 예루살렘에 대한 많은 인용으로 미루어 보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제사장들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했던 것으로 보아, 제사장은 아니었고,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요엘서는 크게 전반부(욜 1:1-2:17)와 후반부(욜 2:18-3:21)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을 다루고, 후반부는 ‘여호와의 날’ 관해 언급합니다. 이 메뚜기 재앙은 실제 메뚜기 떼의 출현이기도 하지만, 이방인들의 침략에 대한 풍유(諷諭)적인 표현입니다. 곧, 어떤 개념이나 사실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묵시적인 설명 등으로도 읽혀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 이후에 도래할 여호와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축복과 구원의 날이지만, 준비되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무서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전반부는 구원의 회복과 축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함께 교독해 보겠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 2:23-27)

이렇게 회복된 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성령께서 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28-32)

성령께서 임하시는 야훼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축복과 구원의 날이지만, 준비되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곧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과 무서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순절날 임한 성령 사건에 관해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한 것’이며, 이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게 되면 새술에 취다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녀들이 말하는 ‘장래 일’, 늙은이가 꾸는 ‘꿈’, 젊은이가 보는 ‘이상’은 무엇일까요? 성령이 임한 새로운 공동체가 바라보는 꿈과 이상이라는 장래의 일이 아닐까요?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어, 이제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된다는 말씀인데,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결코 제한되지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한계들도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공동체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 오포세대(취업과 내 집 마련도 포기), ​칠포세대(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 N포 세대(다 포기)처럼 그리스에는 ‘500유로 세대가 있습니다. 그리스 대졸 취업자가 받는 첫 월 급여의 평균이 500유로라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용어입니다. 500유로는 우리 돈 67만원 정도가 됩니다. 기본생활도 힘든 월 500유로 정도를 벌기도 힘든 그리스의 20-30대를 말합니다. 노르웨이에는 ‘시리어스 세대’가 있습니다. 쾌락적 성향을 보였던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를 지켜보며 자란 세대로, 정신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인종 차별 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자랐기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N포 세대>

중국에는 습노족이 있습니다. ‘노인을 핥아 먹는 자녀들’이라는 섬뜩한 뜻이 있는데, 높은 물가와 주거비용으로 인해 부모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중국의 젊은 세대를 말합니다. 청년실업과 만혼증가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궤를 같이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가 있습니다. ‘깨닫다, 득도하다’라는 뜻의 사토루(さとる)에서 나온 말로, 일본의 오랜 경제 불황 속에서 성장하여 돈과 출세에 관심이 없는 일본의 20-30대를 뜻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성령이 임하시면 이상을 본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녀들이 장래의 일을 말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늙은이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요? 사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9%를 상회하고 있어서, ‘고령화 사회’에 해당이 됩니다(노인인구 비율이 7%~14% 미만인 경우를 고령화 사회라 부르며,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에는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인인구의 증가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 가치관의 변화 등과 맞물려 노인단독세대의 증가를 낳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인의 의존평균수명이 평균 10년 정도가 됩니다. 쉽게 말해, 10년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인 간호 문제, 경제적 부양 문제 등,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말년에 노인들은 10년 동안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며 수발자인 자녀 혹은 간병인과의 갈등, 미안함, 비용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게다가 일상생활비, 의료비, 수발비, 여가생활비는 큰 부담요소가 됩니다.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이 많아, 늙어도 꿈을 꾸고 살아가는 세상, 적어도 사람다운 삶을 우리의 인생 말년에 누릴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젊은이가 이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는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기독교한국신문』의 유달상 기자는 ‘교회성장론, 교인쟁탈전과 이웃교회 빼앗기 운동으로 이어져’라는 기사에서, 현재 잘못된 교회 성장에 관해 제대로 된, 기독교 선교 비전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개신교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서 활동했던 당시를 기억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선교계획을 세워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성과 연대성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 오늘의 체제에서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신학에서 탈피하고, 이데올로기의 신격화를 배제’해야 한다.
넷째, 성서 및 그리스도의 전통에 서서 ‘세계 고등종교와 협력’을 이루고,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서 ‘중재자와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상이 없는 젊은이들과, 꿈이 없는 늙은이들, 물질의 노예가 된 남종과 권력과 탐욕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여종들, 그리고 고난 받는 사람의 ‘한(恨)의 소리’를 듣고, 이들을 위해서 교회의 본분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아집과 고집, 교파주의, 개별교회주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선교정신에 따라 건강한 시민운동단체들과 연대해, 건강한 사회발전에 기여해야하고, 게토화된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의롭고 평화로운 자연을 보전하는 삶을 구현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게토화 되어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온 세상에 성령께서 임하셔도 한국 개신교, 교회 안에는 성령께서 오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성령이 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변해야 합니다.

5. 잘되는 교회와 안 되는 교회

잘되는 교회와 안 되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먼저 잘되는 교회는 이렇습니다.

1) 교회가 밝고 환하며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2) 목회자의 성품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너그럽다.
3) 말이 부드럽고 긍정적이며 무슨 일이든 한번 해보자고 한다.
4)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골고루 교회 일을 나누어 한다.
5) 한 달, 일 년 계획이 미리 세워져 있어 허둥대지 않는다.
6) 일의 결과에 대한 상과 벌이 확실하며 틀림없다.
7) 재미있고 희망적인 설교, 천국설교를 많이 한다.
8) 성도들과 목회자가 서로 허물이 없이 잘 알고 있다.
9) 목회자가 교인을, 교인이 목회자를 칭찬을 잘한다.
10) 헌금을 강조하지 않아도 헌금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안 되는 교회의 특징으로는 이렇습니다.

1) 교회가 어둡고 침침하며 조용하다.
2) 목회자의 감정기복이 매우 심하며 융통성이 없다.
3) 말이 쎄고, 거칠며 무슨 일이든 안 될 것부터 걱정한다.
4) 몇몇 사람이 교회 일을 독차지하고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5) 미리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갑작스럽게 일을 한다.
6) 일을 시작은 했으나, 끝은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7) 죄를 지적하고 겁을 주며 지옥설교를 많이 한다.
8) 목회자가 신비주의를 고수하여 성도들은 목회자를 잘 모른다.
9) 목회자는 교인을 책망하고, 교인은 목회자를 비난한다.
10) 헌금을 강조해도 헌금을 많이 하지 않는다.

너무 도식적이긴 하지만, 저는 여기에 앞서 언급했던 유달상 기자의 말을 조금 수정하여 참된 교회의 모습으로 첨가하고자 합니다.

11)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서 활동한다.
12)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3) 오직 말씀으로 모든 거짓된 이데올로기 신학을 거부한다.
14) 성서와 교회 전통에 서서, ‘세계 고등종교와 협력’을 이룬다.
15) 분열과 갈등 속으로 들어가, 중재자와 화해자가 된다.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한국교회가 잘되는 교회가 되고, 제대로 된 교회가 되어 심판을 면하고, 세상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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