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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큰 통합: 양명의 ‘양지(良知)’

기사승인 2019.06.03  1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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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양명의 良知와 함석헌의 씨알, 생물권정치학(biosphere politics) 시대를 위한 존재사건 (4)

양명의 양지(良知)

앞에서 살펴본 대로 양명은 시대의 행위 없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각자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한 행위력(심즉리)에 주목하고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부란 오직 그 행위 능력을 갈고 닦는 일(지행합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 하지 않는 사람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의 물음이 제기되는데, 즉 그의 심즉리와 지행합일의 언어가 세계의 악의 현실 앞에서 너무 나이브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도 주희의 경우처럼 다시 선과 악, 理와 氣의 이원론에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이자 정치가인 그에게 점점 더 압박해오는 정치적 딜레마와 더불어 특히 여러 변방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하는 민중들의 비참과 고통 앞에서 양명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차별 없이 성인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공부의 두뇌처가 된다고 주창해도 여전히 공부는 소수 엘리트들의 독점과 이론과 화려한 문장과 글쓰기와 과거시험이라는 외부의 견고한 벽에 좌초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한없이 절망했다.(1)

이러한 고통스러운 처지에서 그러나 양명은 다시 한 번 존재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그가 1521년경 50살이 되는 무렵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백 번의 죽음과 천 번의 고난(百死千難)”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우리 마음의 선한 지각력인 ‘양지(良知, the innate knowledge of the good)’에 대한 통찰을 말한다.

양지란 그가 심즉리로서 경험한 우리 마음의 선한 직관력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놓여 있는 천리(天理)로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선험적으로 판단하는 선한 인식력과 판단력이다. 양명은 이미 오래 전에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서 선천적인 선한 능력으로서 ‘양지’와 ‘양능’을 말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즈음에 마치 신의 계시처럼 그 말이 자신의 입술에 새롭게 놓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때까지의 모든 의심과 절망, 낙담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 양지를 인간 존재와 정신의 핵으로 파악하면서 더 이상 인간 가능성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이 정신의 직관력을 키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말하기를,

“마음(心)은 몸의 주재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텅 비어 있으면서도 밝게 깨닫는 것이 본연의 양지이다. 그 텅 비어 있으면서도 밝게 깨달은 양지가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이 뜻(意)이다. 앎(知)이 있은 연후에야 뜻이 있는 것이다. 앎이 없으면 뜻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앎이란 뜻의 본체가 아니겠는가?”(2)

“네가 가지고 있는 양지야말로 너 자신의 준칙이 되는 것이다. 만일 네 뜻에 품고 있는 일이 옳으면, 그것이 옳다고 알고, 그르면 그르다고 앎으로써 조금도 속여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속이려들지 말고, 다만 하나하나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면 선은 곧 보존되고 악은 곧 제거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되면 얼마나 안전 되고 또한 기쁘겠느냐? 이것이 바로 ‘격물’의 참된 묘결이니, ‘앎에 이르는’(致知) 참된 효과인 것이다.”(3)

양명이 이렇게 인간 존재의 핵으로서 인간의 선한 직관력과 판단력에 주목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그것은 자아(心)가 다시 온전히 세계와의 ‘관계성’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그래서 그 이전의 심즉리나 지행합일의 언어가 자칫 빠져들기 쉬웠던 자기 폐쇄적 주관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양지를 세계와 관계하는 인간 인식 능력 중에서도 특히 기초가 되고 출발점이 되는 ‘감각/직관’ 능력으로서 이해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그 이전의 심즉리(心卽理)의 언어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고 범우주적인 방식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Getty Image

여기서 인간 정신의 핵으로서 생명의 힘으로서의 양지는 인간적인 선악의 구분도 넘어서서 마치 항해사에게서의 컴퍼스와 나침반과 같이, 또한 ‘역(易)’ 과 같이 모든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과 “지남침”, 그리고 불가에서의 “심인”(心印)이 되게 하는 일이다. 양명은 이 양지의 참뜻을 깨닫게 되면 다소 나쁜 생각에 빠져든다 하더라도 곧 이를 깨닫고 스스로 깨우치게 되므로, 이것은 마치 “영단 한 알”(靈丹一粒)과 같아서 쇠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4) 그것은 공자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다(箇箇人心有中尼).

양명의 어린이 교육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양명은 1518년에 강서, 복건, 호남, 광동에 접하는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많은 일을 하였으며, 동시에 그곳에 초등학교를 설치한다거나 향약을 만들어서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유백송 등의 선생들에게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지침으로 준 글을 보면 배움에 있어서 양명이 무엇을 중시 여겼는가가 잘 드러난다. 그것은 아이들의 자발성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이고, 도덕적 실천을 중시여기며, 그것을 몸으로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양명은 당시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주로 행해졌던 암기와 암송(記誦), 조작적인 글쓰기(詞章), 또한 지극히 경직되었고 형식화되어 있던 교실분위기를 세차게 비난하면서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공부를 싫어하며, 몸도 튼튼하게 되지 못하는 이유란 바로 그러한 아이들의 자유스러운 본성에 맞지 않는 공부법이라고 보았다.(5) 즉 아이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기초인 몸과 감각과 도덕적인 판단력 신장 교육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렇게 양명은 양지의 발견을 통해서 인간 가능성의 더욱 더 보편적인 근거에 주목했다. 아동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보편적인 인간 신뢰를 표현한 것이고,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교육방식,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배움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6)

세상의 악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을 것인가?

양명이 죽기 몇 년 전에 지은 유명한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에 보면 그는 어떻게 인류 역사상에 타락이 들어왔고, 맨 처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보며 자신의 천성에 맡겨진 일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덕을 행하고 살던 모습에서, 도둑으로 변하고,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며, 기만과 출세, 권력에 급급하게 되고 싸움을 벌이는 타락으로 빠지게 되는가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 모든 이유는 바로 단순하고 간결한 성인지도(聖人之道, how to become a sage)의 가르침을 복잡하고 비싸고 한없이 주지주의적인 가르침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7) 이렇게 성인의 공부가 변해버리자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을 못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 온갖 세력을 가지겠다고 다투고, 많이 아는 것은 자신의 거짓을 감추는데 써먹게 되고, 조금 배운 것을 가지고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기야는 성공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나쁜 버릇이 사람들의 골수에까지 차게 되어 본성처럼 되었다고 한다.(8)

양명에게 있어서 치량지(致良知, 양지를 기르는 법)란 우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성의 근거에 집중하는 것이고, 그 자연스러운 바탕에 집중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렇게 감각과 직관과 도덕력과 판단력이라는 참으로 보편적인 인간성을 진정으로 보편적인 삶의 반경에서부터 키우는 인간교육법인 치량지의 방법은 그래서 당시 도탄에 빠진 사회와 나라를 구하기 위한 ‘발본색원(拔本塞源)’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고 비전이었다. 양명은 이 「발본색원」명문의 마지막 글을 다음과 같이 맺음으로써 자신의 깊은 믿음, 인간에 대한 신뢰, “가장 쉽고, 간단하고,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자신의 공부법에 대한 신뢰를 인상 깊게 드러낸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마음속에는 천리(天理)가 있어서 결코 멸해질 수가 없으며, 양지의 밝음이 있어서 영원히 비추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발본색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중에서는 반드시 안타까워하고 비통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치 멈출 수 없는 강이나 하천처럼 분연히 일어날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는 이 영웅지사들 외에 내가 누구를 더 바랄 것인가?”(9)

이상의 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적 치량지(致良知)의 공부법은 궁극적으로 ‘만물일체(萬物一體)’의 대동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교육법이다. 양명은 죽기 2년 전인 1527년 앞에서 우리가 소개한 「발본색원」의 글과 함께 그의 사상의 정수가 들어 있다고 이야기되는 「대학문(大學問)」을 지었고, 거기서 그는 이러한 정신의 소유자를 ‘대인(大人, the great man)으로 표현했다.

대인이란 그에 의하면 “하늘과 땅과 우주의 만물을 한 몸으로, 이 세상 모두를 한 가족으로, 이 땅 전체를 한 나라로 파악하는 사람”(大人者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이다. 그는 만물일체의 실현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참되게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인(仁)’을 실천하였다고 하여도 남과의 관계에서 아직 그것이 충분치 않다고 보면 자신의 인이 아직 충분히 확충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 또한 자신의 가족은 배부르고 따뜻하지만 옆에서 삶의 필수품과 즐거움을 박탈당한 채 궁핍한 사람들을 본다면 결코 그들에게는 인과 의를 요구할 수 없고, 예의를 지키며 인간관계에서 성실할 것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법과 정부를 세우고, 예와 음악과 교육을 정비하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자신과 남을 온전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그 일들을 통해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10)

이것은 대단히 웅장한 이상이고 비전이다. 양명 자신이 천번의 고통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위해서 싸워온 이상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던지, 어떤 지적 능력과 신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상관없이 이룰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을 향해 자신의 삶을 방향지어야 하는 이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각자 자신의 할 일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남과 서로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을 최상의 일로 알며 한 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회이고, 이러한 이상사회에 대한 꿈은 바로 그가 발견한 인간 누구나의 마음 안에 놓여 있는 신적인 뿌리(良知)의 확충을 통해서 실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그가 임지로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사구교(四句敎)’, 네 구절의 가르침에서 제자 왕기가 말한 단번에 이루는 즉각의 깨달음도 인정했지만 전덕홍이 강조한 만인을 위한 점진적인 교육의 방법을 더 선호한 것 같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들이나 도달할 수 있는 한 번의 각(覺)의 체험보다도 만인을 위한 보편적이고 점진적인 ‘교육’의 길이 자신의 치량지의 본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11)

이런 인간 보편성에 대한 양명의 고백은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자유로움과 확신의 극치가 되고, 사람들의 비난이나 절망어린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의연함으로 나타난다. 그가 1529년 임종에서 마지막 남긴 말은 “내 속에 빛이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하랴!”(此心光明亦復何言)였고, 다음의 인용들은 양명의 본마음과 그의 공부의 참된 의도를 잘 드러내주는 감동 깊은 말들이다.

“나는 이제 양지를 믿게 되었다. 나에게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어서 다시는 약간이라도 덮어 감추려 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솔직하고 과감한 ‘광자(狂者)’와 같은 심경을 지니게 되었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12)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으로 이른바 양지이다. 양지가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은 성인과 어리석은 자의 차이가 없으며, 천하고금이 모두 같다. 세상의 군자들이 오직 이 양지를 확충하는 데에만 힘쓴다면, 스스로 옳고 그른 판단을 공평하게 할 수 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으며, 남을 자기처럼 여기고 나라를 자기 집안처럼 여기어, 천지만물이 한 몸이 될 수 있다.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기를 구할지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13)

 

미주

(미주 1) 쥴리아 칭, 『지혜를 찾아서-왕양명의 길』, 이은선 옮김, 분도출판사, 1998, 00쪽.
(미주 2) 『傳習錄』 中 137조 “心者,身之主也,而心之虛靈明覺,卽所謂本然之良知也。其虛靈明覺之良知, 應感而動者,謂之意。有知而後有意,無知則無意矣。知非意之體乎?”
(미주 3) 『傳習錄』 下 205조, “爾那一點良知,是爾自家底準則。爾意念著扈,他是便知是,非便知非,更瞞地一些不得。爾只不要欺他,實實落落, 依著他做去,善便存,惡便去,他這裡何等穩當快樂? 此便是 『格物』 的眞訣,『致知』的實功。”
(미주 4) 『傳習錄』 下 9조, 先生曰, 人若知這良心訣竅,隨他多少邪思枉念,這裏一覺,都自消融, 眞箇是靈丹一粒,點鐵成金。
(미주 5) 『傳習錄』 中 44조, 古之敎者,敎以人倫, 後世記誦詞章之習起,而先王之敎亡。今敎童子,惟當以孝弟忠信禮義廉恥爲專務, 其栽培涵養之方,則宜誘之歌詩以發其志意,導之習禮以肅其威儀,諷之讀書以開其知覺。今人往往以歌詩習禮爲不切時務,此皆末俗庸鄙之見,烏足以知古人立敎之意哉!
(미주 6) 이은선, 「종교성과 생태적 감수성 : 생명교육의 한 예시」, 한명희 외, 『종교성, 미래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학지사, 2007, 126쪽 이하.
(미주 7) 『傳習錄』中 12조, 聖學旣遠,霸術之慱積已深,雖在賢知,皆不免於習染,其所以講明修飾,以求宣暘光復於世者,僅是以增霸者之藩癱,而聖學之門穡,遂不復可靚, 於是乎有訓詀之學,而慱之以爲名,有記誦之學,而言之以爲博,有詞章之學,而侈之以爲麗, 若是者,紛紛籍籍,堊超角立於天下,又不知其幾家,萬徑千蹊,莫知所適。... 蓋至於今,功利之毒淪浹於人之心髓,而習以成性也,幾千年矣。相矜以知,相軋以勢,相爭以利,相高以技能,相取以聲譽, 其出而仕也,理錢穀者則欲兼夫兵刑,典禮樂者又欲與於銓軸,處郡縣則思藩臬之高,居臺諫則望宰執之要。故不能其事則不得以兼其官,不通其說則不可以要其譽, 記諵之廣,適以長其放他, 知識之多,適以行其惡也, 聞見之博,適以肆其辨也, 辭章之富,適以飾其爲也。
(미주 8) 같은 글, 蓋至於今,功利之毒淪浹於人之心髓,而習以成性也,幾千年矣。
(미주 9) 『傳習錄』 中 12조, 所幸天理之在人心,終有所不可泯,而良知之明,萬占一日,則其聞吾拔本塞源之論,必有惻然而悲,戚然而痛,憤然而起,沛然若決匚河,而有岓不可禦者矣。非夫豪傑之士,無所待而興起者,吾誰與望乎?
(미주 10) 「大學問」, 김흥호 전집, 『양명학 공부』 (2), 솔 1999, 313쪽 이하.
(미주 11) 이은선, 「유교와 그리스도교-그 만남의 필요성과 의미」,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 분도출판사, 1997, 44쪽.
(미주 12) 『傳習錄』下 312조 “我今信得這良知, 眞是眞非, 信手行去, 更不著些覆藏。我今繞做得箇狂者的胸次。使天下之人, 都說我行不掩言也罷.”
(미주 13) 『傳習錄』中 179조, “是非之心,不慮而知,不學而能,所謂「良知」也. 良知之在人心,無間於聖愚,天下古今之所同也,世之君子, 惟務其良知,則自能公是非,同好惡,視人猶己,視國猶家,而以天地萬物爲一體,求天下無冶,,不可得矣。”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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