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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과 말을 되찾는 운동에 앞장 섰다 - 다석 류영모 (5)

기사승인 2019.05.25  17: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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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교회의 뿌리를 찾아서(8)

다석은 일제강점기를 살며 독립자금을 전달한 적도 있었지만, 총을 들고 직접 싸우기보다는 바른 신앙과 민족의 얼과 말을 되찾는 사상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꾀한 분이다. 다석의 독창성은 순우리말로 생각을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오래된 뿌리를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오듯이 다석의 글도 곱씹어볼수록 깊은 뜻이 드러난다.

다석이 우리말로 옮겨 놓은 주기도문과 다석의 제자로서 이화여대 교목/교수로 봉직하시면서 선생의 뜻을 펼쳤던 김흥호 목사의 해설이다.

다석의 주기도

하늘 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 길 참 말씀이니이다.
이에 숨쉬는 우리 박는 속알에 더욱 나라 찾음이여지이다.
우리의 삶이 힘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옵고 진 짐에 짓눌림은 되지 말아지이다.
사람이 서로 바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게 하옵시며 고루 사랑을 널리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님께서 하나가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삶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뜻이 위에서 되신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해설) 영원무한하신 생명의 근원에 도달함만이 거룩한 길이요, 참 말씀이다. 아침에 해가 떠올라 온 세상을 밝히듯이, 생각하는 사람의 속알이 깨어나 밝아지는 대로 우리의 나라 찾음은 더욱 확실해진다. 사람이란 자기 속에 자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힘씀으로써 무한히 발전할수 있다.
사람은 서로 바꿔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하느님 앞에서 평등함을 느껴야 한다. 하느님과 주님이 하나가 되어 참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사랑 속에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땅을 하늘로 끌어올리는 나무처럼 하늘을 땅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산 사람이다. 아멘. (제소리 김흥호)

다석의 민중씨알론

그런데 당시 지식인들은 그가 학력이 없는 것을 갖고 얘기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가 실력이 없거나 집안의 재정이 없어 일본 유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마치 원효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깨닫고 중국 유학을 포기하였듯이 다석 또한 깨달음 속에서 일본 유학을 포기했던 것이다.

▲ 다석 유영모 선생 ⓒ다석학회

대학 대학 하면서 대학에 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생각하는데, 대학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대학 때문에 사회악이 조장되지 않아요? 고등교육 받은 사람의 범죄가 더 심해지고, 그런 사회악이 더 눈에 띄지 않아요? 모르기는 해도 오늘날 교육하는 사람 가운데 공부 잘해야 잘먹고 잘살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옛날에도 좋은 음식, 좋은 집, 출세 같은 것이 권학(勸學)의 조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박사논문은 빌어먹을 짓입니다. 나는 대학을 반대합니다. 출세하여 대학교수 된다고 하는 것은 일하기 싫어서 하는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개인의 편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라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지식을 취하러 대학에 가는 것은 편해보자, 대우받자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이것은 양반사상,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입니다.(『다석 유영모』, 박영호, 두레 39쪽)

저도 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만, 오늘날 대학입학 박사학위 위주의 교육현실을 감안할 때, 여전히 살아있는 말씀이다.

일제 패망 직후 주위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잠시 은평면의 자치위원장직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때를 돌아보며 “나라 장관 자리만 맡으려 할 것이 아니라, 동네일을 볼 마을 이장 통장감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됩니다. 온 나라 이장들이 다 훌륭하면 나라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자꾸 나라 대들보감만 되라고 하는데 서까래도 있어야 합니다. 대들보감만 기르다가 서까래감이 없으면 무엇으로 지붕을 덮습니까? 대들보를 쪼개 쓰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대들보가 되는 것만을 성공으로 보는 오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민중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으로 깨어나기를 원했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왔다.’(마태 20장 28절)는 말씀을 실천하였다.

다석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성서 말씀을 따라 지금은 서울 시내에 속하지만 당시는 사대문 밖이었던 구기동 일대 임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오늘의 세상에서 지각 있는 사람은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살지를 않습니다. 농민, 노동자, 이들은 모두 우리를 대신해서 짐을 지는 예수들입니다. 그들의 찔림은 우리 허물로 인함이요, 그들이 상함은 우리 죄악이라고 이사야 53장 5절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대중의 고통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고생합니까? 우리 대신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예수의 중심 생각이고 민중신학이 강조하는 바이다.

현존-하루살이, 오늘살이

류영모 선생은 자신의 산 날을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날수로 계산하였다. 영원한 시간에 비기면 사람의 일생이란 번갯불이 번쩍 빛나는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짧은 삶의 시간을 알뜰하게 살기 위하여 다석은 오늘살이 하루살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루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하루살이의 삶이다. 아니 어쩌면 하루로 만족하는 삶이다. 어찌 하루에 만족하지 않고 백일 천일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루살이, 그건 그날 하루가 자신의 최후의 날인 줄 알아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그 이룬 자리가 어떠하든지 만족할 줄 아는 인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

다석은 말한다.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마중을 나가 기다리는 동안 차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부스러기 시간에도 자기의 사상을 영글게 하는데 써야 합니다. 하루를 무심히 지내면 백 년, 천 년을 살아도 시간을 다 잃어버립니다. 이 겨레가 5천 년 동안을 긴장해서 살아왔다면 지금 이 모양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조나 우리나 모두 하루를 무심코 편안히 지냈기에 지금 요 모양입니다. 하루하루를 지성껏 살면 무상한 인생도 비상한 생명이 됩니다. 하루하루를 덧없이 내버리면 인생은 허무밖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쉬면서도 쉬지 않는 숨처럼 언제나 깨어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일과를 꼭꼭하면 괴로우면서도 기쁩니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데서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느님이 시키신 사명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제나는 죽고 얼나로 사는 삶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허송세월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지나간 것은 찌꺼기라 돌볼 것이 못됩니다. 내일을 찾으면 안됩니다. 내일은 아직 도착되지 않은 손님입니다. 언제나 오늘오늘 오늘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오늘 오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 6장 34절)는 예수님의 말씀 또한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순간순간에 집중하면 기뻐집니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래 류영모선생은 강의를 하다가 둥실둥실 춤을 추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얼쑤, 얼이 쑤-욱- 올라갔다 내려오는’ 얼춤을 춘 것이지요. 선생은 말하기를 “목숨은 기쁨입니다. 사는 것은 기쁜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기쁜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좇아 하느님께 올라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391쪽)

얼나 그리스도

다석은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을 새롭게 해석한다. “우리에게 구원이 있다면 어머니 아버지에 의해 생겨난 짐승의 제나를 버리고 하느님이 보내시는 성령의 얼나로 거듭나 하느님의 딸과 아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신앙의 깊은 뜻이다. 사람이 삼독(탐貪, 진瞋, 치痴, 욕심과 성냄과 향락)의 죄악에서 구속되어 자유할 수 있는 것도 얼나로 솟나는 길뿐이다. 그러기 위해 내 속에 온 하느님의 씨가 독생자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몸으로는 죽어도 독생자인 얼로는 멸망치 않습니다. 얼로 거듭나는 것이 영생입니다. 얼이 참나인 것을 깨닫는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 이전에서부터 이어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는 단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이 사실을 크게 깨달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417쪽) 예수를 믿는 신앙이 아닌 예수의 신앙을 따라가는 것이 참 구원의 길이다. 그래 예수님은 당신이 매어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부탁하셨다. 곧 대속이 아닌 자속의 길에 참 구원의 길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다석은 매우 독특한 그리스도론을 얘기한다. 民의 그리스도론, 씨알의 그리스도론을 말한다. 메시아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이고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한다. 제1 성서에서는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왕들이 다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그들은 모두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불리었다. 심지어는 유대인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마저 메시아라고 칭한다.

다석은 이 사상을 이어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이 곧 그리스도이기에 이 성령에 의해 거듭난 모든 사람이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류영모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껍질(몸)을 쓰기 전, 또 벗어 버린 뒤에 어찌 될 줄은 모릅니다. 이것을 안다면 나도 거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예수에게 나타났던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도 나타났으니 영원한 생명이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하 206쪽)

다석은 일요일이면 세 개의 교회를 함께 다녔던 두 살 터울의 동생 영묵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그간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고 성공을 한다고 하는 교회의 주장에 회의를 갖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떠난다. 후에 그는 깨달음을 통해 죽음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다. “종교의 핵심은 죽음입니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없이 하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죽음의 연습은 영원한 얼생명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에요. 산다는 것은 육체를 먹고 정신이 사는 것입니다. 몸으로 죽은 연습은 얼생명으로 사는 연습입니다.”(박영호 다석 류영모 37쪽) 그래 외치기를 “죽음이란 참으로 없다. 하늘에도 땅에도 죽음이 없는 것인데 사람은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다. 죽음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죽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박영호, <다석 유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237쪽)

죽음이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외쳐야 할 마지막 신앙고백이다. 다석 선생은 다시 한번 당부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밖에 개인적인 행복이니 성공이란 다 부질없는 생각이요, 허황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집행유예의 처지에 놓인 사형수가 무슨 행복을 찾고 무슨 성공을 한단 말입니까? 개인적인 행복이나 성공이란 잠꼬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행복이 있고 성공이 있다면 하느님의 존재를 뚜렷이 하는 일밖에 없습니다.”(하, 207쪽)

땅에 속한 제나를 버리고 하늘에 속한 얼나를 통해 언제나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참고서적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다석 유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박영호, 두레, 2000.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 박영호, 두레, 2000.
『다석 유영모』, 박영호, 두레, 2009.
『다석 유영모』, 박재순, 현암사, 2008.
『씨ᄋᆞᆯ 함석헌, 다석 유영모, 무위당 장일순, 오방 최흥종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다』, 김경재·이정배·이현주·김한중 공저, 광주 YMCA 오방기념사업회 편찬, 2009.

조헌정 소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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