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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기사승인 2019.05.23  19: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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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종(始終) 불이(不二)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끝이 어떻게 임할 것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시작을 찾았기에 이제 끝을 찾는 것입니까?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시작에 서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끝을 알고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입니다.”(제18절)

제자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아버지의 나라는 언제 어떻게 올 것인가 하는 등 종말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지적한 대로 여기서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그들도,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세상 끝이 곧 올 것이라는 것, 초자연적인 메시아의 나라의 도래가 임박하다 것 등을 전제로 하는 이른바 ‘철저적 종말론(thorough-going eschatology)’의 입장에 서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렇게 미래에 올 종말이나 하느님의 나라를 염두에 두고 한 제자들의 이런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시작도 모르면서 끝을 알려고 하느냐?’ 하는 식의 나무람이었다. 이어서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으니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다. 시작을 알면 저절로 끝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죽음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거의 모든 세계 신비주의 전통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시작과 끝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시작이 없는 끝도 있을 수 없고 끝을 전제로 하지 않은 시작도 있을 수 없다. 시작과 끝은 상호 불가분·불가결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출발이 없는 도착도 있을 수 없지만 도착이 없는 출발도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상호 의존, 상호 침투의 관계를 두고 화엄불교에서는 상즉(相卽)·상입(相入)의 관계라고 한다. 깨치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장자』에 나오는 ‘조삼모사’ 이야기의 원숭이들처럼 시작이나 끝을 따로 분리해서 어느 한 쪽만을 보려고 한다. 제자들의 태도가 바로 이랬기에 예수님은 꾸짖으신 것이다. 시작에서 끝을 보라고. 알파와 오메가를 동시에 보라고.

▲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끝없이 앞을 향한 전진일까. ⓒGetty Image

여기서 ‘시작에 서 있으라’는 말은 사물의 분화가 있기 이전, 창세기에 나오는 그 창조의 첫날 이전, 그 태고(太古)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읽을 수도 있다. 만물의 근원인 그 본래의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목표의 완성이요,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로 보아도 좋다. 신유학(新儒學)에서는 만물이 분화한 ‘이발(已發)’의 상태와 그 이전 아직 아무 것도 분화하지 않은 원초적 ‘미발(未發)’의 상태를 분간하는데, 이 절에서 말하는 ‘시작’이라는 것이 미발의 상태를 두고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도덕경』에서도 “세상만사에는 시작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고, 그러고도 그 어머니를 받들면, 몸이 다하는 날까지 위태로울 것이 없습니다.”(52장)고 했다. 만물의 어머니이며 시작인 도(道)를 알면 현상 세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 다시 근원인 도(道)로 돌아가 도와 하나 된 삶을 살면, 『도마복음』식 표현대로,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종파들 중 상당수는, 여기 나오는 제자들처럼, 세상의 ‘종말’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 왔고, 아직도 기울이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정확하게 몇 년 며칠에 세상 끝이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거나 주장하기도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은 대부분 ‘카이로스(kairos)’로서 달력으로 따지는 연대기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상관이 없다. 카이로스를 구태여 옮긴다면 timing이라는 말에 가깝다. ‘호기(好期)’ ‘적기(適期)’와 비슷하다. 아무튼 이 절이 가르쳐주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원(始原)’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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