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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슐리얼리즘 신학자

기사승인 2019.05.28  19: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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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李信)의 『환상과 저항의 신학』에 대하여

이 책 『환상과 저항의 신학-이신과 초현실주의 연구』는 신학자 고 이신(1927-1981)에 대해 여러 사람이 쓴 연구 논문집이다. 여럿이 썼으나 일관된 흐름을 갖고 있기에 단행본 책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이신의 신학 사상이 ‘환상과 저항’을 모티브로 했기에 우리 시대에 주는 의미가 적지 않다.

필자는 종교개혁 원리인 믿음과 은총을 환상과 저항이라 바꿔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본래 이 책은 2016년 겨울, 촛불 혁명을 꿈꾸던 때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시대를 앞선 신학자 이신 박사께서 54세의 이른 나이로 소천한지 35주년이 되는 때 12월 겨울이었던 까닭이다.

그의 사상이 참혹한 현실을 묵시적 환상으로 초극하려는 몸부림의 열매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2016년 겨울, 광장의 촛불, 그들의 열망 속에 초(超)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더해지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하지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루터 종교개혁 500년을 앞둔 상황에서 출판되었기에 그래도 다행스럽다.

본 책의 의미가 종교개혁의 본뜻을 잇는 차원에서 더욱 중요해진 탓이다. 정치 이상으로 이 땅 종교들의 타락, 특히 적폐대상 첫 순위가 된 기독교(교회)이기에 말이다. 숫자 500이 주는 막중한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이 땅 교회는 의식의 둔화와 타락으로 그 존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다.

이런 정황에서 이신은 고독과 저항 그리고 상(환)상이란 화두를 갖고 인습화된 기독교를 전복시키고자 했다. 1970년대 후반 이미 한국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에게로 환원할 것을 힘껏 역설한 것이 바로 그였다. 화석화된 기독론을 재해석한 초현실주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의 재(再)주체화를 시도한 것이다.

본 책을 통해서 우리는 한 세대(世代) 이전의 신학자 이신의 신학사상이 종교개혁 500년을 막 지난 시점에서 새롭게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 1 >

말했듯이 본 책은 이신 박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라 할 것이다. 글쓴이들 여럿이 말했듯이 천재적인 신학자의 단명 탓에 유고(遺稿)가 적어 그간 연구에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살아생전 이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은 몇 권의 설교집과 미국 내 저명한 밴더빌트 신학부에 제출한 박사논문이 고작이었다.

실상 이신은 살아생전 ‘슐리얼리즘의 신학’을 주제로 단행본 책을 쓰고 싶어 했다. 두 차례 자필로 이에 대한 긴 서문을 남겨놓기까지 했었다. 여건이 허락지 않아 계획을 이루지 못했으나 그 글들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책, 『환상과 저항의 신학』을 위한 소중한 단초들을 충분히 얻었다.

집필자들 모두가 주 텍스트로 삼았던 앞선 책 『이신의 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 속에 이 두 편의 서문과 박사논문 번역본 그리고 몇 개의 논문이 실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첫 책을 근거로 연구한 결과물 『환상과 저항의 신학』을 통해 이신의 창조성과 함께 시의 적절성이 밝혀졌으니 고마운 일이다.

우선 30년도 훨씬 앞서 쓰여진 이신의 글들이 목하 회자되는 벤야민, 들뢰즈, 아감벤의 생각들과 중첩되어 연구된 것이 경이롭다. 그가 시대를 앞선 창조적 사상가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신학자로서 화가의 삶을 살았던 이신의 6-70년대 그림에서 동서양 대가들과 견줄만한 창조성, 종교성이 밝혀졌고 유고 시(詩)들 역시 시대와 소통하는 영적 감수성의 보고(寶庫)라 평가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아마도 한국 신학계 안에서 화가로 살며 신학자의 길을 걸었던 이는 이신 외에 찾기 어려울 듯싶다. 신학과 예술의 접점이 요청되는 시점에서 전위 예술가(화가)이기도 했던 이신의 작업은 주목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 신학에 근거, 그리스도교 환원운동을 시작했고 한국교회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으니 종교개혁 500년을 맞는 시점에서 교회사적 의미 역시 중할 수박에 없다.

루터로 돌아가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 않고 한국인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이신의 ‘한국 그리스도교회 선언(1974년)’을 주목하여 우리들 당면과제로 여겼으면 좋겠다.

< 2 >

주지하듯 본 책은 『환상과 저항의 신학』이란 제목 하에 ‘이신의 슈리얼리즘 연구라는 부제’를 달았다. 저자들 글에서 상세히 밝혀지겠으나 한국 신학계에 생소한 초현실주의(Surrealism) 내지 그에 기초한 신학이 함의하는 바를 먼저 간략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초/중엽 생기한 문학과 예술의 한 장르로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획일적 현실에 맞서는 에토스를 지녔다.

그렇기에 초현실주의는 역사적 퇴행을 걱정할 만큼 진보를 거부했고 시대를 거역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인습화된 형식을 파괴했고 현실을 부정했으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현실(초현실)을 염원하였다. 체제 안에서 체제 밖을 사유(상상)하여 체제 자체를 전복시키고자 힘쓴 것이다.

이런 초현실주의 사조에 묵시문학 연구결과를 접목시켜 초현실주의 신학이라 불렀고 이를 영(靈)의 신학이라 달리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초현실주의 신학은 현실부정을 통한 긍정의 신학으로서 약자를 위한 신학이었고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창조적 상상력이었다. 배고픔의 문제만큼이나 의식의 둔화와 타락을 걱정했던 결과였다.

러시아 사상가 베르다이에프를 깊게 읽으면서 상전(富者)과 종(貧者), 가진 자와 가난한 자들 모두의 의식 속에 노예적 본성이 자리했음을 보았던 것이다. 예수와 우리들 관계 역시도 주인과 종으로서가 아니라 그를 창조적으로 따를 것을 주문했다. 바로 이것이 환원운동의 골자이자 초현실주의 신학의 핵심이었으며 시종일관 한국적 주체성을 강조한 이유였을 것이다.

< 3 >

말하였듯 본 책은 각기 다른 아홉 분 저자들의 글로 구성되었다. 처음 두 글은 이신 박사의 직계 가족들이 썼다. 특히 첫 글은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 졸업 후 신학을 공부한 이은선 교수의 글로서 아버지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자신의 본 이름 ‘만수’(萬修)를 믿을 ‘신(’信)으로 개명했고 그 실현을 위해 고독과 저항의 삶을 살면서 항시 체제 밖을 상상하던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신학적 해석학인 셈이다. 미시사적인 삶의 해석학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저자는 이신에게 있어 믿음(信)이 고독이었고, 저항이었으며 환상(상상)이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이글의 정수는 이은선 박사가 평생을 거쳐 씨름한 3개의 성 개념, 즉 聖. 性. 誠에 터해 이신의 믿음, 곧 고독, 저항 그리고 상상을 풀어낸 데 있다. 이들 세 개의 ‘성’으로 종교개혁신학의 3개의 ‘오직’(sola)교리와 탈/향의 관계를 맺고자 했으니 그에게서 종교개혁자의 면모를 본 결과였다. 그렇기에 이글은 이신 신학이 동시대를 사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필연적 이유이자 근거란 사실을 충족히 풀어냈다.

이어진 글에서 이정배는 이신의 핵심 개념인 ‘상상’(력)을 인식론적으로 고찰하였다. 상상력이 종교개혁 ‘以後’신학으로서의 예술 및 저항신학을 위한 신학방법론인 것을 적시한 것이다. 글 말미에 실린 이신 박사의 시와 그림 몇 편과 이를 초현실주의 신학의 빛에서 설명한 것에 주목하면 좋겠다.

조현의 책 『울림』에서 말하듯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이신의 삶이 그림과 시속에 담겼던 까닭이다. 살아생전 짧게 만났으나 무거운 가르침을 받은 탓에 그의 삶은 내게 멍에이기도 했다. 늦은 시기 필자의 삶에 전회-‘거리의 신학’-가 생겼던 것도 이신의 삶을 닮고자 한 노력의 열매일 것이다.

< 4 >

이어진 두 편의 논문은 각기 시인과 미학자에 의해 쓰여 진 저술이다. 시인의 예리한 감수성과 미학을 전공한 해박한 지식으로 이신의 시와 그림을 분석하여 멋지게 의미화했다. 유고 시집과 그림 속에 담겨진 초현실주의적 예술성이 이들의 수고로 재조명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알게 된 김성리 선생은 본래 난해하기로 유명한 김수영의 시를 연구한 문학평론가이다. 이신 박사의 시가 자신의 논문작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감사를 공공연히 말한 바 있다. 본 글에서 저자는 시인의 눈으로 이신의 초현실주의를 본질적으로 꿰뚫었다.

아주 핵심적인 시를 취사선택하여 ‘병든 시간성을 살면서도 사랑으로 영원에 이르려는’ 이신의 詩세계를 간파한 탓이다. 시간성 안에서 새로운 삶(사랑)을 사는 것이 부활이자 영생인 것을 적실히 설명했다. 이신의 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신의 시에서 상실의 슬픔과 그리움은 있으나 고통에 대한 부정성을 찾기 어렵다.”

이어 이신 박사의 그림을 분석, 연구한 심은록 박사는 미학적 시각에서 철학과 신학을 연구한 독특한 이력의 학자이다. 그는 이신 박사의 그림을 동시대를 살았던 동서양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함으로 화가로서의 위상을 옳게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소재삼은 장욱진 화백과의 연결고리가 흥미로웠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는 자유의 길을 어린이의 재현을 통해 설명코자 한 탓이다. 이신의 묵시문학적 초현실주의 그림이 어린아이의 천진스러움과 나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이신 박사의 그림에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게 탐색했다. ‘어린아이의 얼토당토 않은 소리’, 이것이 초인의 소리이고, 돌의 외침이며 예언자의 전언인 바, 이를 시각화 한 것이 이신 박사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노예화된 의식을 깨우쳐 상상력을 복원시키는 것이 신학자이자 화가인 이신의 존재 이유였다.

< 5 >

▲ 이신 목사 ⓒ에큐메니안

이하 모아진 글들은 이신 박사의 초현실주의 신학을 이 시대 담론형성에 영향력이 큰  여러 학자들과 비교하여 의미화했다. 유대주의 사상가인 발터 벤아민의 메시아담론,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예술론, 아감벤의 정치신학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 함석헌의 자속론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특별히 벤야민의 경우 이신처럼 초현실주의 사조에 심취했었기에 양자 간의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적 입장을 견지한 탓에 이들의 결론이 상이하나 공통점 역시 없지 않았다. 따라서 라캉, 지젝 등의 저서에 마음을 쏟고 있는 정혁현 목사는 자기 글에서 벤야민과 이신의 공통점으로 자본주의 흐름에 대한 부정(否定)을 들었다. 영적 양극성을 말하는 묵시문학의 빛에서 이신 박사가 기독교의 전위성을 말했다면 벤야민은 유대-메시아주의 담론을 통해 실패한 과거를 구원코자 했던 까닭이다.

여기서 이신에게 중요한 것은 ‘환상’이었고 벤야민의 핵심은 현실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메시아적 시간’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이신과 벤야민에 대한 상호 교차적 이해를 부각시켰다. 역사주의적 사건을 정지시키는 메시아적 시간과 제국의 질서를 무화(부정)하는 묵시적 의식간의 유사성을 강조한 것이다.

들뢰즈의 예술론을 이신의 초현실주의와 비교한 박일준은 자신의 글에서 초월성의 유/무, 유물론(생물학)/환상(의식) 등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저항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엮어냈다. 인습화된 기존의 반복에 저항하는 의식의 수행 차원에서 이 두 사상가를 함께 엮어낸 것이다. 생물학(유기체)적 질서가 위계적으로 억압될 경우 생명체 안에서 돌발표시가 발생하듯 현실에 대한 절대부정에서 절대긍정의 징표, 영적 양극성으로서의 창조적 환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상호 생기(生起)의 정황은 다르나 이들은 자본주의적 도착을 극복하는 힘이란 점에서 공통적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신익상 박사는 이신의 초현실주의 신학의 빈 공간을 찾는데 주목했다. 이신 박사의 말대로 하늘이 땅(사람)되고 땅(사람)이 다시 하늘 되는 초현실주의 신학의 혁명성을 옳다고 여겼으나 이 과정에서 정작 좌절을 겪었던 사람들, 민중들의 역할이 명시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럴수록 두 차례 중첩된 초월 간의 매개 고리에 대한 설명과 이 과정에서 희생된 민중의 구속사적 역할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함석헌의 대/자(代/自)불이적 구원론과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개념을 내놓았다. 세상은 항시 민중들의 희생으로 항상성을 유지했고 그 희생은 항시 대/자불이적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 6 >

마지막 글에서는 이신의 초현실주의 신학을 교회론적으로 적용시킨 내용을 담았다. 이경 목사의 글과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원영 박사의 글이 모아졌다. 주지하듯 1970년 대 중반, 이신 박사 스스로 ‘그리스도 환원운동’이란 기치 하에 ‘한국 그리스도교회 선언’을 발표한 바 있었다. 본 글에서 이들은 모두 종교개혁 500년을 앞둔 이 땅의 개신교가 ‘한국 그리스도교회 선언’으로부터 동이 서에서 멀 듯 멀어진 현실을 아프게 지적했다.

먼저 이경은 ‘한국 그리스도교회 선언’의 첫 의미로 교리적, 문화적인 서구 종속성으로부터의 탈피를 들었다. 이는 한국인의 주체적인 신앙적 자각의 다른 말로서 초현실주의 신학이 역설한 창조적 상상력을 적시한다. 이신이 주창했던 ‘환원운동’이 성서 절대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환원운동의 본질은 자본화된 개체교회 중심주의를 넘어선 전교회의 유기체(통일)성이었다. 따라서 이경 목사는 환원운동에 기초한 ‘선언’을 목하 진행 중인 ‘작은교회’ 운동과 한국적 ‘작은교회’론 집필에 있어 이론적 근거로 제시했다.

손원영 박사는 그리스도교단에서 이신 박사의 유지(有志)를 실현시키려 애쓴 학자이다. 평소 그는 이신의 훤원운동을 우리 시대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이라 여겼고 그의 예술을 신학(목회)과 연결시키는 일에 전력을 쏟았다. 이신의 초현실주의 신학을 묵시문학적 해방신학과 예술적 소통의 신학이라 달리 풀어엇고 이를 예술적 교회를 위한 이론적 근거로 삼은 것이다. 전위 예술을 신학(이론)화 하는 것 이상으로 신학자체를 전위 예술화하는 실천적 작업에 관심을 둔 탓이다.

< 7 >

앞서 말했듯 2016년 12월, 이신 박사 서거 35주년을 추모하여 세상에 나왔어야 할 이 책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야 출판되었다. 집필자들 사정으로 글이 제 때에 마무리되지 못한 것도 이유이지만 촛불 혁명과 이어지는 대선정국 탓도 컸다. 이렇듯 늦어지는 과정에서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김성림 선생님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쁨이 크다.

무엇보다 서거 10주기 추모를 위해 앞서 출판된 『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을 우연히 접해 읽고 후기(後記)를 써 보내준 고 황현산 선생을 기억한다. 이 책 『환상과 저항의 신학』을 위해서도 추천사를 써 주시기로 했으나 지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천하셨다. ‘말(글)로서 세상을 흔들지 못하면 세상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 분의 말씀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책이라도 책마다 뜻이 담겼으니 그 뜻을 찾아 읽고 사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자 동시에 무겁고 엄중함이리라.

이정배(顯藏 아카데미)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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