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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왜 칼뱅을 왜곡시켰나

기사승인 2019.05.18  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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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인 칼뱅의 경제사상

2008년 가을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위기 직후, <타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지금 세계를 변화시키는 열 가지 사상 중 하나가 신칼뱅주의(New Calvinism)이다.” 20세기 말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도 더 이상 대안이 아니고,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로서, 문제를 가져온 당사자라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 대안, 칼뱅주의?

칼뱅의 경제사상을 ‘사회주의적인 자본주의’로 명명하는 이오갑 KC대학교 교수는 『칼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그의 경제사상과 자본주의』 (한동네, 2019)에서 칼뱅과 칼뱅주의야말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칼뱅은 이윤추구나 재산소유가 적법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제를, 또는 재화들의 생산과 유통, 소비, 분배의 과정이 개인이나 특정 계층의 탐욕에 의해 장악되거나 왜곡되지 않으며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경제를 이상적으로 여겼다. 그런 경제가 자본주의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정의와 안전망이 잘 갖춰진 자본주의, 즉 공동체적인 혹은 사회주의적인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188).”

우리(아니, 한국 개신교회)가 오해하듯, 칼뱅은 자본주의 정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차라리 칼뱅의 공동체 정신에서는 사회주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역사적 칼뱅은 한국 교회에서 통용되는 칼뱅과 다릅니다. 교리와 교권으로 채색된 칼뱅의 본 모습을 되찾을 때 진정한 종교개혁이 이뤄지겠죠?

사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현대지성, 2018)에서 칼뱅의 예정론과 종교개혁의 유산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발현되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베버의 말을 핵심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칼뱅주의는 경제 분야에 있어서, ‘노동에 대한 의무감’과 ‘직업에 대한 소명감’, ‘합리적인 이윤 추구’ 등으로 표출되었고, 이것이 곧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을 불러왔다.”

그러나 칼뱅 전문가인 이오갑 교수에 의하면 칼뱅 신학에 베버식의 자본주의 정신은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사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합니다. 들어볼까요?

“경제에 대해서 이상적이기는 쉽다. 현실적이기도 쉽다. 그러나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이기는 어렵다. 자본주의적이기는 쉽고, 사회주의적이기도 쉽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이면서 사회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면서 자본주의적이기는 어렵다. 칼뱅은 그 둘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경제문제에 접근하고, 성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끝까지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칼뱅은 그보다 훨씬 후대의 스미스나 마르크스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는 스미스나 마르크스로 상징되는 것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571).”

오해된 칼뱅과 칼뱅주의

실재로 나중에 오는 사람이 대안이 아니라, 그 전 사람이 대안이라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역사에는 그런 아이러니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학에 있어서 칸트의 형식미학과 헤겔의 진리미학이죠? 아무튼, 이오갑 교수는 책의 제목처럼 칼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으려고 합니다.

“칼뱅은 경제를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형제애가 넘치는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공동체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고 지원함으로써 존경을 받고, 가난한 자들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평화와 일치가 이뤄지는 사회였다. 그는 그런 사회가 제네바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를 위해 제네바 경제에 참여해서 그것이 보다 인간적이고 형제애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게 했다(574).”

자본주의적 칼뱅과 사회주의적 칼뱅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이 대립과 긴장을 이루며 균형을 갖춰왔다는 통찰은 매우 중요한 인식입니다. 칼뱅은 이러한 과정에서 부자들의 탐욕, 사용자들의 횡포와 임금착취 등에 강한 분노를 표출했을 뿐 아니라, 1559년 제네바의 인쇄 직인조합 쟁의 당시 조정에 나서서,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칼뱅을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노조와 회사가 합의를 보는 자리에서 칼뱅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칼뱅을 정말로 바로 보기 위해서는, 칼뱅이 살았던 제네바의 역사와 사회·경제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칼뱅의 각종 저작과 문서들을 통해 신학뿐만 아니라, 칼뱅의 경제사상도 세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서양학문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긴 논쟁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이 ‘칼뱅과 자본주의 논쟁’이었습니다. 지난 20세기 초부터 21세기 현재까지 100년 이상 이 논쟁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학문의 영역도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신학 등 인문사회학의 여러 분야 학자들이 가담한 논쟁이었으며, 참여 국가도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수많은 나라 학자들이 가담한 논쟁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결실의 노력을 잘 정리해서 들려줍니다. 이오갑 교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칼뱅은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다 똑같아지는 평등을 얘기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들이, 잘한 사람들이나 못한 사람들이 다 같은 재화를 얻고 똑같이 사는 것도 정의는 아니다. 또한 그런 사회가 된다고 평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중략) 칼뱅이 평등을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평등이 아니라, 최대한 자발성에서 우러나오는 평등이고, 또한 완전히 똑같아지는 평등이 아니라, 단지 큰 격차가 메워짐으로서 부자라고 해도 어이없이 큰 부자가 아니고, 가난한 자라고 해도 궁핍하지는 않는 상태였다(199).”

초대 교회 공동체의 현재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왜 우리는 이러한 칼뱅을 몰랐을까요? 그것은 교리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칼뱅을 하늘 위에 있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오갑 교수의 지적은 칼뱅을 오독한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 신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들어볼까요?

“빈부차가 심한 현실 속의 부자들은 대체로 욕심과 술수가 많으며, 손익에 밝고, 자기 이득을 지키는 데 철저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 일에 좋은 점수를 따기란, 예수가 말했듯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칼뱅이 부자들의 욕심과 인색함, 횡포에 대해 강도 높게 성토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205-206).”

누가 칼뱅을 왜곡했을까

오늘 자칭 복음주의라고 말하며, 칼뱅을 따른다는 한국 교회가 ‘성장 지상주의, 물질 지상주의, 건물 지상주의’를 추구하며 칼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모릅니다. 이오갑 교수의 말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벌려는 욕심이 우리 안에 작용하게 되자마자, 우리는 도둑이 되리라는 게 확실합니다. 다르게는 될 수가 없습니다.’ 칼뱅은 그렇게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부자가 되려는 마음 자체를 내려놓으라고 역설했을 뿐더러, 한 걸음 더 나가서, 자기 재산에 대한 집착을 끊고, 가난해질 용기를 가지라고까지 했다(207).”

우리가 몰랐던 칼뱅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사실 칼뱅은 약자들의 나쁜 처지를 이용해서 극단적인 저임금을 강요하는 행태 역시 규탄했었습니다. 칼뱅의 음성으로 들어볼까요?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고용될 곳을 찾지 못할 때, 그들 몫의 절반을 가로채기 위해서 기회를 엿봅니다. 부자는 말할 것입니다: 이 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를 한 조각의 빵만으로도 고용할 수 있다. 그가 원한을 품어도 자신을 내게 내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를 절반의 값으로 고용한다고 해도, 그는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렇게 인색하게 굴 때, 임금을 다 떼먹는 것은 아닐지라도, 너무나 잔인한 일이며, 가난한 사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244).”

또한 칼뱅의 ‘대부업 사상’은 그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이자의 허용과 금지, 이자율의 문제로 요약될 그 사상은 일차적으로 제네바 시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상공인들, 서민과 빈민 대중들을 위한 것이었다. 즉 부유한 사업가들이나 자본가들의 이익을 제한하고, 반면에 서민들의 경제와 소비생활을 보호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309).”

놀랍죠? 신체포기각서까지 받아내는 오늘날의 대부업이 아닙니다. 얼마나 현실의 자본주의는 칼뱅의 가르침과 정 반대로 가고 있는지!

사실 칼뱅이 살았던 16세기는 유럽 사회가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상업,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대였습니다. 루터는 봉건제를 옹호하며 기존 사회질서 체제 내에서 종교개혁과 사회경제 개혁을 이루고자 했었죠? 그러나 칼뱅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시대에 맞는 신학과 경제윤리를 구상했습니다. 물론 토마스 뮌쩌와 재세례파는 농민 중심의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려고 시도했었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을 강조하는 칼뱅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울리히 쾨르트너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맨체스터의 자유주의와 칼뱅주의의 사회교리 사이는 커다란 도랑으로 분리된다. 칼뱅주의는 개인보다 교회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의 사회윤리는 개인의 이기적 행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을 중시한다. 칼뱅주의는 노동에 대한, 직업에 대한, 그리고 돈에 대한 관계, 소유와의 관계 등 그 모든 개념을 이익욕구가 아니라, 이웃사랑의 계명을 가지고 세워나간다. 원래의 칼뱅주의는 일종의 기독교사회주의를 향하고 있다(475).”

오늘 여기서 다시 읽어야 할 칼뱅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칼뱅은 근대 자본주의 형성기에, 제네바에서 일어나던 경제문제들에 대해 성찰하고, 거기에 대해 발언하고 참여함으로써 그 사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칼뱅의 사상과 실천의 중심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성격과 폐해를 방지하고, 보통의 시민들과 서민들, 빈자들을 위한 경제를 촉구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오갑 교수의 책은 칼뱅의 경제사상의 주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설명함으로써 그 사상의 형제애적이고 인도적인,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의 변화를 촉구하는 근본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오갑 교수의 결론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칼뱅은 자본주의적이면서 사회주의적인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칫 공동체를 파괴하기 쉬운 자본주의 경제에 고삐를 잡았던 사람으로서, 현재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말 그럴까요? 칼뱅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새로운 개혁은 이렇게 칼뱅을 교리의 눈만이 아닌, 한 사람의 경제학자, 신학자, 더 나아가 시대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민했던 한 신앙인으로 읽어낼 때 가능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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