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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구상

기사승인 2019.04.20  18: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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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규태 교수의 『한반도의 그리스도교 평화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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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로 설정되고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손규태 선생의 『한반도의 그리스도교 평화윤리』(서울: 동연, 2019)라는 새로운 저서가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손 선생은 현실의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기독교 사회윤리학자로서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사회윤리가 현실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신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기 위한 대안적 콘셉트를 제시하고, 문제 해결의 방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면, 이러한 기독교 사회윤리의 과제를 빛나게 수행한 좋은 사례가 바로 손 선생의 책에 담겨 있는 분석들과 성찰들과 제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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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손 선생이 1980년대 말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쓴 논문들과 에세이들과 강연 원고들을 묶은 문집이다. 그 글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신학 저널들과 잡지들을 통해 발표되었지만, “김재준의 사상에 나타난 동북아시아의 평화”나 “미국의 패권정책과 한반도의 평화” 등 최소한 여섯 편의 강연 원고들은 이 문집을 통해 처음으로 활자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손 선생의 책은 분명히 독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거듭해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손 선생이 오늘의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난날에 썼던 글들을 수정하고 가필하고 보완하여 새로운 원고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새로운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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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생이 과거에 썼던 글들을 모아서 문집을 꾸렸다는 것은 그 글들이 오늘의 상황에서도 시의성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손 선생 자신이 확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분의 새 책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 같은 문제에 관련해서 말한다면, 국내 정권의 교체나 한반도에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는 강대국들의 대내외적 여건 변화에도 불구하고, 손 선생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일관성 있게 견지하여야 할 관점과 원칙이 있다는 것을 주창하고, 그 관점과 원칙을 갖고서 오늘의 문제 상황에 접근하여 해법을 찾자고 제안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손 선생이 보여주고 있는 관점과 원칙을 드러내고, 그분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제안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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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생은 역사적 안목을 갖고서 사회윤리학자로서 생각하고 발언하는 분이다. 그분은 어떤 문제를 다루든지 그 문제가 발생하여 발전되어 온 맥락을 꼼꼼하게 살피고 문제 상황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손 선생은 한반도 분단구조를 해체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남과 북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를 구축하여 마침내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손 선생은 두 가지 방해요인들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 하나는 유럽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도 미국과 일본이 동북아시아 패권전략 차원에서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불인정과 적대 정책이라고 보았다. 또 다른 하나는 남북한 정권의 안보논리와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법제들, 그리고 안보체제에 둥지를 틀고 그 체제를 강화하는 기득권 세력이다.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정치적으로 개입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동맹에 묶어두고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하고, 미국의 적인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천문학적으로 보장하려고 한반도 분단구조를 고착화시키는데, 남북한이 안보논리를 내세워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분단구조의 고착화와 안보논리의 체제화로 인해 남한의 민중과 북한의 인민이 겪는 고통이 끝없는 목록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분석을 하고난 뒤에 손 선생은 한반도 핵 문제의 실체를 드러낸다. 한국전쟁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는 정전체제에서 미국은 강력한 대북 봉쇄 정책과 적대시 정책을 취했고, 북한은 미국의 가공할 만한 재래식 군사력과 핵무기 등의 대량파괴 무기에 맞서서 북한 체제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군사국가화를 추구하고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거니와, 바로 이러한 사태 발전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또 다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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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구조와 정전체제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에 손 선생은 정전체제의 배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적 콘셉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정전체제의 배후 이데올로기는 한 마디로 안보논리이고, 그 핵심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와 수탈을 영속화하는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손 선생은 이러한 안보 논리에 바탕을 둔 전쟁의 중지나 평정은 참된 평화가 아니기에 마땅히 타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보 논리에 바탕을 둔 평화의 고전적인 예는 점령지를 군사적으로 평정하여 제국의 황제에게 충성과 공납을 강제하였던 로마의 평화(Pax Romana)이고, 그 현대적인 예는 세계 경찰을 자임하면서 지구적 차원에서 군사·정치적 패권을 관철하고 있는 아메리카의 평화(Pax Americana)이다.

이러한 가짜 평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손 선생이 신학적 관점에서 가다듬는 대안적 콘셉트는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이다. 그 평화는 ‘이방인의 통치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폭력과 지배에 맞서서 스스로 낮아져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의 평화이고,(마가 10:42-43) 사람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강화시키는 법조문들을 버리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화해하게 하는 평화이다.(에베 4:14-16)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화해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후 5:17-20)

손 선생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나 세력들의 관계를 유기체적 조화의 관계로 보지 않고 갈등 관계로 보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을 때, 화해는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선의를 베풀고 관용을 보이는 데서 싹튼다는 것을 강조한다.(239; 277-278) 한 마디로,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정신으로 추진하는 호혜적 일방주의가 화해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보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로서는 전혀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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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로 여러 가지 원칙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손 선생은 한반도 분단체제를 전쟁 수단에 의해 해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과정으로서의 평화의 원칙을 당연히 전제하지만, 분단체제를 넘어서서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천명한 바와 같이, 남한과 북한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 분단이 냉전체제의 성격을 띠었기에 사상과 제도의 차이가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결과를 빚어내곤 하였지만, 이제는 민족이 하나 되어 사상과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성공회대학교 손규태 명예교수 ⓒGetty Image

이와 관련하여 손 선생은 ‘민족’ 개념을 소홀히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민족(nation)을 역사의 ‘실체’로 보지 않고 근대에 ‘상상된’ 개념으로 보는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이 논제는 많은 토론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남한의 민중과 북한의 인민이 사상과 체제의 차이로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남북한 평화공동체를 아우르는 ‘우리’의 이름은 무엇일까?

손 선생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고려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자주의 원칙이다. 한반도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제되고 급기야 냉전 상태의 외세들을 대리한 남북한 전쟁이 벌어졌으니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넘어서서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외세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남한의 민중과 북한의 인민이 자주적으로 결단하여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손 선생은 대외적 자주를 강조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인민 주권 혹은 국민 주권의 확립이 자주의 내적 요건임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대외적 자주와 대내적 국민 (인민) 주권 확립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손 선생의 빛나는 통찰이다.(198)

손 선생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다른 또 하나의 원칙은 민중 우선의 원칙이다. 이제까지 지배적인 담론에서 소외되고 단지 대상화되기만 했던 민중의 우선적 참여가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09) 손 선생에게서 평화, 자주, 민족대단결은 서로 긴밀하게 결합하고 내적으로 서로 관통하여 삼위일체를 이루는 원칙들인데, 이 삼위일체의 경륜이 제대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민중의 우선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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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생은 안보논리에 고착되어 있는 분단체제에서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원칙들을 갖고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련된 방략을 살피고, 그 다음에 한반도 비핵화에 관련된 방략을 검토하기로 한다.

7.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련해서 손 선생이 제시하는 방략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관철되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을 제약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동북아시아에서 다자간 공동안보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55f.; 76ff.) 이에 관련해서 손 선생은 1970년대에 유럽에서 구축된 헬싱키 협정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초에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학자들의 모임에서 논의된 적이 있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대표들의 6자회담이 진행된 바 있음을 감안한다면, 손 선생의 제안은 매우 강한 호소력이 있다.

둘째로,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봉쇄하고 적대시하는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을 인정하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맺고 있었던 소련 및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 등을 하고 있듯이 북한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남한이 앞장 서야 한다는 것이다.(220)

셋째로 남한과 북한의 분단구조에 기생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손 선생은 한국 기독교 교회와 교인의 대부분이 친미 반공주의를 신조처럼 내면화하여 분단 고착화 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고 개탄하는데, 한국 교회는 이 뼈아픈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불관용과 적대의 길로부터 화해와 평화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203)

넷째로, 민중(인민)이 주인이 되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의에 입각한 사회적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사회적 평화 없이 한반도 평화 없고, 한반도 평화 없이 사회적 평화는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167)

다섯째로, 냉전체제를 공고화하는 법률들과 제도들을 폐지하여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북한의 사회안전법이 대표적인 예이다.(53f.)

여섯째로, 군사·정치적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군비경쟁을 중지하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군비를 축소하여 평화와 복지를 증진시키는 기회를 확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71f.)

일곱째로,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고 남북한 공영경제를 촉진시키는 인프라 구축과 투자를 확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73) 남한이 북한보다 압도적인 경제력을 갖고 있는 이상, 교류와 협력과 투자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를 것이 아니라, 호혜적 일방주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251)

7.2. 한반도 비핵화에 관련하여 손 선생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평화에 입각하여 핵무기 사용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상호 확증 파괴가 가능한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군사적 수단에 호소하여 현상의 변경을 추구할 수 없고,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정당한 전쟁론도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핵무기를 최후의 군사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일 수 없다.(147)

이처럼 핵무기 사용 금지의 원칙을 앞세운 뒤에 손 선생은 북핵 문제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 경제 능력이 약한 북한이 핵무기를 위시한 미국과 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대항하여 북한 체제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자위 수단으로 개발하였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49f.)

이 점을 인식한다면, 미국이 B-52 전폭기, 스텔스 전폭기, 항공모함, 핵 잠수함 등을 통해 가공할 만한 핵전력을 전개하여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압박하는 상황이 먼저 해소되지 않고서는 북핵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미국의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능화되는 것을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틀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고 북한의 체제 보장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136 참조)

손 선생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대담한 구상을 하고 있는데, 필자는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회담이나 전문가 토론에서 손 선생의 구상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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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생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가다듬어 온 생각은 오늘의 상황에서도 전혀 빛을 바래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주제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해당 주제를 다룰 때 손 선생의 책을 정독하고 그 책에서 전개된 한반도 평화윤리의 원칙과 실천적 방략을 더 가다듬기를 기대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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