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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건네 준 이야기, “사회 전체를 전환해야 한다”

기사승인 2019.04.15  19: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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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교회 김은호 목사가 본 희망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희생자들과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을 찾았다.

왜 광화문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안산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며 지역공동체 안에서 세월호 사건이 안겨준 아픔을 보듬으려고 노력하는 목회자가 있었다. 그가 광화문으로 향하지 않았던 세월호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김충섭 목사) 목회자인 김은호 목사(희망교회)였다. 왜 김 목사는 광화문으로 가지 않았을까. 왜 김 목사는 지역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끌어안았을까.

세월호 5주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날 5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인 김 목사를 찾았다.

▲ 목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김은호이구요,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이고 희망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젊은 날 사회에서 확인했던 기독교의 위치

제 살아온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예장 통합 교단에서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라다가 고등학교 시절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 목사를 서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학부에서 학생운동을 접하면서 예수를 새롭게 알게 되었고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서강대(총장 박종구 교수) 종교학과 대학원(대학원장 조현철 교수)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있다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나는 도구고, 그릇이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 지난 4월7일 세월호 5주기 추모예배 가운데 예배 안내를 하고 있는 안산희망교회 김은호 목사 ⓒ416안산시민연대 이재홍 팀장

그래서 다시 목사가 되기로 결정했어요. 그 후에 어느 대학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제가 자란 교단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교수)신학대학원이 아닌 민중교회 목회를 할 수 있는 한신대학교(총장 연규홍 교수) 신학대학원(대학원장 김주한 교수)을 입학했습니다.

그러다 졸업 1년 전부터 생명선교연대 간사를 3년 하다가 그 후에 희망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목회 경험이 별로 없어서 맨땅에 헤딩하며 현재 12년째 목회 중입니다.

▲ 목사님께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5년간 함께 해오셨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소개해 주세요.

저는 솔직히 초기부터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날 세월호 참사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교인들과 논의하는 중에 지역 활동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단원고에서 기도회 인도를 부탁하는 전화였죠.

그래서 단원고에서 무사귀환을 바라는 촛불기도회를 4월16일-19일까지 인도했었습니다. 지역에 시민대책위가 꾸려지면서 촛불기도회를 넘길 때까지요. 그 후엔 동네로 돌아갔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아팠다

교회 근처 와동공원 안에 ‘와리마루’라는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그 곳에서 지역주민들과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세월호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했거든요.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직후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함께 노란리본을 만드는 것이었죠. 그렇게 와리마루에서의 시간은 지역주민들이 받았던 상처와 아픔들이 치유되고 관계를 쌓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촛불을 동네분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마을에서부터 진실규명을 향한 외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동네에서 동네촛불을 하며 공동체를 경험하였고 나누었습니다.

4.16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안산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느끼는 시간이었죠. 그런데 보다보니 지역 주민들도 세월호로 인해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도 2차 피해자들인데 주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416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달라질수 있을까요? 저는 시민사회운동과 마을만들기운동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운동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더라구요.

그러나 이젠 희생과 헌신하는 운동방식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회복적 정의 네트워크와 연결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마을 주민을 위한 “이웃대화모임”을 만든 것인데요,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대표님이 직접 와서 20여명의 주민들을 모아 애도서클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주민들이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거든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네에도 이 프로그램을 추천해서 진행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분들이 우리가 계속해서 올 수 없으니 진행자양성과정을 만들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안산 주민이 직접 안산주민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도록 이요.

▲ 세월호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던 와리마루 ⓒ권이민수

그때 마침 경기도사회복지모금회에서 2천만원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걸로 진행자양성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돌봄과 성장 이웃대화모임을 만들고 반월중학교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3차례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처럼 초창기엔 유가족 보단 지역주민과 함께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육우당추모기도회’에 순서를 맡아서 갔다가 연대 발언을 위해 오신 동혁이 어머님,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동혁이 아버님이 저보고 “목사님이셨냐?”고 물으시더군요. 동혁이 아버님은 제가 안산시청 세월호수습지원단 공무원인줄 알았던 겁니다. 그만큼 전 가족과 친밀하기보단 416관련 마을사업에 더 애를 썼습니다.

와동공원의 와리마루에서 15년도 4.16 1주기에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을 개최했습니다. 그 당시 대략 1000명 동네주민이 참석했었습니다. 이렇게 마을에서 다양하게 4.16을 기억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로 4번째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이 열립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분향소 예배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매월 셋째 주 예배를 희망교회에서 주관했었습니다. 그 후에 이런저런 마을 사업들을 하면서 유가족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을갈등해결을 위한 이웃대화모임 진행자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에 유가족 분들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 분들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한분은 “내가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고, 또 한분은 “416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악마고 괴물인줄 알았는데 강의를 들으며 그 사람들도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또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엔 ‘416가족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식탁’도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와서 음식준비도 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주민을 초대해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나누는 시간입니다.

매월 첫째 주 주일날 5시 ‘생명안전공원부지에서 드리는 416가족과 함께하는 예배’도 희망교회에서 매월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교회에서 매 주기 때마다 ‘416기억마을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이 주민에게 보내는 편지와 소식들을 모아 편집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3번째 신문이 배포될 예정입니다.

아팠던 곳도 안산이었고 치유되어야 할 곳도 안산이다

▲ 세월호와 안산주민들 그리고 희망교회가 함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데 초창기 1년과 지금까지를 돌아봤을때 아쉬운 지점이 있을까요?

많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호 초창기 너무 광화문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안산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관심이 조금 더 배분 되었더라면 좋았을꺼 같습니다. 물론 416은 정부와의 진상규명 싸움이 맞습니다. 그래서야 안 되겠지만 다음에 이런 참사가 나도 광화문 집중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416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이어야 한다고 할 때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단위는 지역공동체입니다. 또 진상규명 이후에 416을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곳은 역시 여기 안산입니다. 초창기 다들 광화문으로만 달려가고 지역이 비어 있다 보니 지역 주민들은 점점 지쳐만 건 것입니다.

좀 더 면밀하고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 문재인 정부가 곧 2년차가 됩니다. 목사님은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번에 생명안전공원부지 확정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세월호 가족 분들은 이전보다 더 어려워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으니깐 다 된거 아니냐!”고들 합니다.

다 할 수도 없지만, 공감하는 마음만은 계속되어 주시길

그러나 된게 없습니다. 부지만 확정되었지 공사도, 예산확정도 아무것도 안 되었어요. 물론 세월호 가족 분들의 많은 요구를 100% 다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 ‘아,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고 느끼고 신뢰감을 얻잖아요. 문 대통령이 이런 신뢰를 가족분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4월7일 세월호 5주기 추모예배 때 희생당한 아이들의 이름 앞에 조화가 놓여졌다. ⓒ416안산시민연대 이재홍 팀장

가족 분들도 당연히 이해해요. 어떻게 대통령이라고 다 할 수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촛불혁명을 일으켰고 그 혁명이 만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니만큼 우리의 아픈 이야기들, 요구들을 수용하고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 수용할 수 없더라도 공감하고 마음을 이해하는 신뢰정도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희망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을 향한 그 여정 가운데 계속해서 희망을 심어주고 그들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문대통령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역시 416이 아니겠습니까?

▲ 세월호 유가족과 앞으로의 무엇을 목표하고 준비하시나요?

416가족분들과 함께, ‘416가족과 함께 하는 416을 기억하는 안산 그리스도인 모임’을 준비할까 합니다. 다만, 모임을 고민하다보니 여타 다른 모임과 똑같은 거 같아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모임이 좀 다른 모임과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대표도 세우고, 집행위 만들고, 회원 조직하는 이런 구조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방식의 모임이나 조직이 되어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416 이전과는 다른 지역사회를 만들고 공동체를 이루는 모임을 되면 좋겠습니다. 또 이 모임의 공간이 따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와서 쉬어가기도 하고 주민과 소통하기도 하는 공간이요. 이에 대한 준비와 고민 중입니다.

그 외에도 안산의 선부 3동과 와동에서 많은 친구들이 희생되었는데 이 희생당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놀러 다닌 곳이 이 앞 와동공원입니다. 그래서 와동공원 안에 있는 와리마루를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거점공간으로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아이들이 보고싶거나 생각나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세월호를 생각할 때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오늘 아침 안산제일교회 권사라고 주장하는 분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명안전공원 부지와 416가족과 함께 하는 예배 때입니다. 어떻게 목사가 그런 일을 하느냐며 뭐라 하시다가 끊으시더군요. 그 외에도 언론에서 무수하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안산 기독교의 입장이 뭐냐?’를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안산기독교연합회 회원도 아니고 안산 기독교의 입장을 모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에게 교회라는 울타리는 별로 없습니다.

제 이야기는 단순히 교회를 향하거나 교회 입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일뿐이죠. 그래서 한국교회에 딱히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저희 교회 교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교회에 오는 사람만이 교인이 아닙니다. 마을의 주민들이 다 교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교인이 많아지고 건물이 커지고 재정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위치한 마을 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이 교회가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두고 했던 말들이 무엇이었던가 기억하시길

저는 그동안 그런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교회에 바라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해야한다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 많은 신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병폐와 적폐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이야기 하며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고 심포지엄도 열고 무수한 책도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뭐라고 하셨었죠?” NCCK에 요청을 했었습니다. 416 주간을 NCCK에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이게 회의 안건으로 올라오자 4.3주간도 없는데 4.16주간은 너무 섣부르다고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저는 이게 이해가 안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희생자 수’나 ‘사고의 규모’ 같은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본적인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세월호 참사 한달 전에 안산에서 ‘탐욕의 제국’이라는 영화공동상영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희생자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며 ‘이 나라 언젠가 무너지겠구나.’, ‘큰 사고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4월 10일날 장애인 한분이 장애등급제로 인해 활동보조 지원을 못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국민연금공단 성동지구 앞에서 시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13일날 이분이 사는 집에 불이 났습니다.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면 살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피할 수가 없어서 큰 화를 당하셨고 17일날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탐욕의 제국, 4월 10일, 4월 16일, 4월 17일 이 모든 게 서로 무관한가요?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인들이 세월호를 자꾸만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와 철학을 잃어가고 있구나 생각해요.

세월호는 사회 전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 돌아오는 4월27일 와동공원 내 와리마루에서 열리는 네 번째 4.16을 기억하는 주민한마당 행사 포스터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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