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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타성이 불편해할 겨자씨와 누룩

기사승인 2019.04.08  18: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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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풍경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얼굴

1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그것을 무엇에다가 비길까? 19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다가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의 다음 경와 같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말 속에 섞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새번역)

안식일에 그것도 회당에서 등이 굽은 여인을 주님 고쳐주셨습니다.(눅13:10~17) 당장 죽을 만큼 위급한 병이 아니면 안식일에는 치유를 금했었고, 회당 모임은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고치고 여인이 주목을 받게 하십니다. 한 번에 두 가지 언짢은 일을 보란 듯이 벌이셨습니다. 회당장이 분 낼만 합니다.(눅13:14)

마가복음(4:30~32)과 달리 겨자씨를 정원에 심고 가꿉니다. 들판이 아니고 정원입니다. 저 밖이 아니라 안입니다. 치유의 열매도 회당 밖, 안식일 밖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뤄지는 공간과 시간을 뜰 안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새는 유대교에서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이 사건에서 새 즉, 소외된 존재는 여인이자 병자였습니다. 거룩하다는 안식일 규정이 소외시킨 존재, 그 새들이 깃들어 쉼을 누립니다. 하나님 나라인줄 알았던 안식일 모임의 위선을 발가벗기십니다. 그 한 가운데 심은 겨자씨가 보여줄 하나님 나라를 주님께서 행위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 Octavio Ocampon, 「Jesus Christ」 ⓒWikiArt

정원에서 일어나는 남성의 일로 비유를 들었다면, 주방에서 이뤄질 여성의 일로 다시 비유를 드십니다. 이 역시 저 밖의 들판이 아니라 집 안입니다. 온통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 그 역시 불편해할 비유입니다. 유대인들은 축제 때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누룩은 크게 만들지만 변질시키는 부정적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김근수 저 『가난한 예수』 363 참고). 안식일, 회당에서 주님께서는 당대의 종교규율을 변질시키셨습니다. 그들 보기에는 변질이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새로운 생명입니다. 어떤 규정에도 갇히지 않는 사랑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생명력. 그것이 주님 보여주시고 비유로 풀어주신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계시이셨습니다. 주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주님을 본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보았다는 점입니다. 공생애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사셨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비유’이시자 ‘하나님 나라의 비유’이셨습니다. 안식일에 벌인 사건도 이어지는 비유 속에서 결국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사건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이고, 주님의 사역과 존재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예배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전제입니다. 예배 속에 굳어진 종교적 타성이 불편해할 겨자씨와 누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예배와 일상이 사랑의 누룩으로 변질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소외시킨 이들이 깃들어 쉴 겨자나무를 키워야 합니다. 그때 드디어 예배도, 일상도 하나님 나라로 드러납니다.

신앙인을, 교회를, 목사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합니다. 다 죄인이니까 하나님만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리스도인 역시 비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Octavio Ocampo의 작품은 사건의 풍경으로 주님의 얼굴을 표현합니다. 멀리서 보면 주님의 얼굴이 됩니다. 우리의 교회 역시 그의 작품처럼 분명 주님의 얼굴을, 표정을, 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보여주는 주님의 얼굴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혹시 또다시 주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모습은 아닙니까?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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