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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신에 대한 이야기

기사승인 2019.03.17  18: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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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 시대 신(神)의 자리-베른하르트 벨테의 종교경험에 대하여(1)

베른하르트 벨테(Bernhard Welte, 1906-1983)는 칼 라너(Karl Rahner), 구스타브 지베르트(Gustav Siewerth), 요하네스 로츠(Johannes Baptist Lotz), 막스 뮐러(Max Müller), 요셉 묄러(Joseph Möller)와 함께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가톨릭 종교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이른바 가톨릭 하이데거 학파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06년 3월 31일 독일의 서남쪽 지방 바덴-뷔르텐베르크(Baden-Württenberg) 주에 있는 작은 도시 메스키르히(Meßkirch)에서 태어났다. 이 작은 도시 메스키르히는 20세기 철학의 거대한 봉우리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고향이기도 하다. 벨테는 바로 이 하이데거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 편집자 주

 

▲ 베른하르트 벨터 교수 ⓒWikipedia

철두철미 세속화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신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의미 있는가?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과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덜 문명화된 인간들의 어리석음의 표지 아닌가? 모든 것이 과학에 의해 투명하게 설명되고 유지되고 있는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 과연 신이 설 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신에 대한 이야기는 계몽의 추세가 현대에서 마지막으로 쓸어내야 할 어두운 구시대의 마지막 찌꺼기 아닌가? 신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심약한 사람들의 도피처 아닌가?

어떻게 신은 인간세계에서 추방되었는가

베른하르트 벨테(Bernhard Welt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저하게 세속화된 세계에서 신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는가? 철두철미 세속화된 현대의 실증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의식에게 신은 불필요한 가설처럼 보일 뿐이다. 완벽한 합리적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의 관료화된 세계의 대관료체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신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근대의 계몽은 지나간 종교의 역사를 극복된 선사(先史) 정도로 치부하여 뒤켠으로 치워버렸다. 신존재증명에 대한 칸트 식의 비판은 오래 전부터 교양인의 일반적 교양물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전체 현대 세계가 신에 이르는 길과 같은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하며 또한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1)

근대화의 추세는 종교개혁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계몽운동과 그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 거의 공통된 견해이다. 종교적 내지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인간의 생활세계를 고루 통제하여 모든 영역을 통합하고 있었다. 이러한 통일적인 세계관이 종교개혁 이후 무너지기 시작하며 세계가 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제일원인이자 창조주로서 보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이제 그 자리를 이성적 세계관에 내주어야 했다. 신은 이성에 의해서 세계가 다스려지도록 창조했고 인간에게 이성적 능력을 부여해줌으로써 인간이 세계를 관장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것이다. 신은 역사의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고 이제부터는 인간이 이성으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고 다스리고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의 세속화는 시작되었고 신은 점차 인간들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계몽운동이 모든 분야에로 확산되어 가면 갈수록 신 내지는 신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신 내지 신적인 것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윤리도덕의 영역에서도 더 이상 도덕규범의 근거로서 기능하지 않게 되었고, 심미학이 주도권을 잡아가는 예술의 영역에서도 설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개인적 내지는 사적인 믿음의 영역에서만이 영향력을 펼 수 있었던 신이지만, 종교 자체를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설명해 버리려는 계몽의 추세에 밀려 신은 안방에서마저도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계몽화의 과정을 꿰뚫어 본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종말을 앞서 예견했던 것이다.

추방당한 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렇게 서구의 근대화운동의 고속도로를 깔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신 내지는 신적인 것을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서서히 몰아내야 했다. 신에 대한 요청을 감안한다 해도 그것을 극도로 제한하여 인간의 개인적인 사적 차원에 국한시켰으며 그래서 현실을 설명하고 통제하는 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모든 존재영역을 관장하던 신적인 것이 이제는 종교적 영역이라는 극히 제한된 현실영역을 일부 필요로 하는 심약한 사람들을 위해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 영국 작가 Banksy의 작품

이미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지 않았던가.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신이 죽은 이래 이 지상에서 이제는 인간을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과 척도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야말로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이렇게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이성중심주의적인 추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인간적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감행한 신적인 것의 퇴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죽어버린’ 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이냐? ‘떠나버린’ 신을 어떻게 다시 모셔올 것이냐? 어떻게 새로운 신의 도래(2)를 준비할 것이냐? 하이데거는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3)

칠흑 같은 이 어둠 속에서 구원해줄 신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 인간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스러움’의 영역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충고한다. 신은 오직 성스러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미주 4) 세속화이래 인간의 욕망의 불빛이 모든 곳을 두루 비추고 통제하고 있는 한 우리는 어디에서건 신을 대할 수 없다. 정말로 우리는 세속화된 세계에서 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는가?

다음 글에서는 ‘세속화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주

(미주 1) Bernhard Welte, “Versuch eines Weges zu Gott in einer säkularisierten Welt(세속화된 세계에서 신에 이르는 길 모색)”, 『Gottesbilder heute(오늘날의 신에 대한 그림들)』, S. Moser/E. Pilick 펴냄 (Königstein, 1979), 1.
(미주 2) “도래하는 신”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Heinrich Rombach, 『Der kommende Gott. Hermetik - eine neue Weltsicht(도래하는 신. 은닉 사건학 - 하나의 새로운 세계시야)』, Freiburg 1991. Manfred Frank, 『Der kommende Gott. Vorlesungen über die Neue Mythologie(도래하는 신. 새로운 신화학에 대한 강의)』, Frankfurt a.M. 1982.
(미주 3) 이 말은 독일 슈피겔 잡지와의 대담 제목이기도 하다. 참조 M. Heidegger, “Spiegel-Gespräch(슈피겔 대담)”, “Antwort. Martin Heidegger im Gespräch(대답. 하이데거와의 대담)”, Pfullingen 1988, 99-100.
(미주 4)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존재의 진리에서부터 비로소 성스러움의 본질이 사유될 수 있다. 그리고 성스러움의 본질에서부터 비로소 신성(神性)의 본질이 사유될 수 있다. 그리고 신성의 본질의 빛 안에서 비로소 ‘신(神)’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지칭해야 하는가가 사유되고 말해질 수 있다.” M. Heidegger, “Brief über den Humanismus(인문주의에 대한 서한)”, 『Wegmarken(사유의 이정표)』, 전집 제9권, Frankfurt a.M. 1976, 351.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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