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하나님 있는 작음과 하나님 없는 거대함

기사승인 2019.02.08  19:31:16

공유
default_news_ad1

-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동굴 밖으로) 나가 산에서 야훼 앞에 서라. 야훼께서 지나가시는데 야훼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지만 바람 가운데 야훼께서 계시지 않았다. …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야훼께서 계시지 않았다. 불 다음에 가는 속삭임 소리가 있었다.(열왕기하 19,11-12*)

엘리야는 저 ‘거대한’ 승리 후 죽음의 위협을 피해 광야를 거쳐 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동굴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급전직하’(急轉直下)라고 할 만큼 너무나 참담한 변화입니다. 왜 이런 일이 라고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물어옵니다. 네가 여기 있다니 무슨 일이냐? 엘리야는  볼멘 소리로 나만 열심이었고 나만 남았는데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이것은 불행을 겪을 때 흔히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동굴에서 끌어내고 위와 같은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무슨 의도일까요?

그후 엘리야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엔 하나님이 동굴 밖에서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똑같이 질문하자 엘리야는 동굴 어구까지 나와 똑같이 대답합니다.

▲ 동굴 속에 있던 엘리야에게 속삭임 소리로 찾아오신 야훼 하나님 ⓒGetty Image

이로 보건대 엘리야는 하나님의 퍼포먼스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엘리야도 놓친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두번째 말씀하실 때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단서가 있을 것입니다.

작음과 거대함, 하나님 있음과 없음이 결합하여 ‘하나님이 있는 작음’과 ‘하나님 없는 거대함’이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작음과 거대함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있음 여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대함에 취해 있어서 하나님이 없을지라도 거대함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나아가 자신을 거대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없이 하는 것은 아닐까요?

엘리야의 한탄 속에는 자신이 거대한 일을 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작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나만이라는 독선이 거대함에 취하게 했고 거대함은 독선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자기 동굴 속에 갇혀버렸고, 하나님은 그를 동굴에서 이끌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아끼셨으며 산 채로 데려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우리 스스로 만든 동굴에서 나오게 하고 밝은 빛을 만끽하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실패에도 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실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앗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금 그 안에서 용기를 얻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