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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다는 것” - 是謂玄同

기사승인 2019.01.28  20: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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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56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구멍을 막고, 문을 닫고, 예리한 것을 꺾고, 나뉜 것을 녹이고, 빛나는 것을 조화롭게 하고, 티끌과 함께 하니, 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친해지려 해도 친할 수 없고, 아무리 멀리하려 해도 멀리할 수 없고, 아무리 이롭게 하려해도 이로울 수 없고, 아무리 해롭게 하려도 해할 수 없고, 아무리 귀하게 하려해도 귀할 수 없고, 아무리 천하게 하려해도 천할 수 없으니, 천하에 귀함이 된다.”
- 노자, 『도덕경』, 56장
知(智之)者不(弗)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玄同(현동)은 시비이해의 판단이 없이 사물과 함께 하는 태도이고,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이다. 이는 구멍을 닫고 문을 닫을 때에 가능하다. 즉 밖으로부터의 지식을 구하는 욕망이 없을 때에 가능하다.

이를 정신을 안으로 지키는 精神內守(정신내수) 또는 담담하게 시비를 떠나 있는 恬淡虛無(염담허무)라고 한다. 이해 귀천 친소는 모두 예법에 따른 규범적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과 명리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현동의 사람이다.

노자가 이상적 인간으로 표현한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玄德(현덕)을 지닌 사람이다. 이 티끌 세상의 인간들과 신비스럽게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람(玄同)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낮은 사람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별다른 사람으로서 휘황한 빛을 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보통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도와 같다. 도에는 차별이 없다. 친해지고 멀어지고, 이익을 얻고 손해를 보는 것은 차별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도는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선입관을 가지고 다른 것들을 보지 않는다. 자신의 세력을 쌓기 위해서 친한 사람들을 만들지 않는다. 도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은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래에 귀하게 되는 것이다.

ⓒGetty Image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 류시화, “나무의 시”

사람이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든지 함께 한다는 것처럼 소중한 일은 없다. 함께 하는 일은 약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저만치 앞서간다 싶으면 한숨 돌리며 기다리고, 조금 늦었다 싶으면 서둘러 따라간다. 서로의 역할에 대해 인정하고 힘을 실어 준다. 이런 사람은 이미 도를 닦는 사람이다.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민중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당하는 억압을 풀어주고, 애환을 어루만지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은 “함께 함”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러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면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향한 예수님의 일갈은 통쾌하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은 세금을 “바치는”[δίδωμι] 것이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물었는데, 예수님은 “되돌려주라”[ἀποδίδωμι]는 말로 응수한다. 즉 로마 황제가 그 땅과 백성, 그리고 거기에서 생산되는 산물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로마 제국의 이념에 따르는 한, 황제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것을 요구하는 때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로마 황제의 지배권을 인정한 너희들은, 이미 제국의 종이 되어 민족을 배반하고 동족을 착취하는 너희들은 그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되돌려 주라는 말씀이다. 가이사에게 속했다고 인정되는 모든 것은 그의 권한을 받아들이는 한 그에게 되돌려질 따름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특정한 조세 문제를 떠나서 보다 광범한 주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모든 주권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을 뿐이라는 신앙(출애 20:31)을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대답은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문자들의 삶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돌아설 것을 강하게 요구함과 동시에,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와 하느님의 대립을 통하여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거나 그 둘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로마 황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추구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 이외의 여하한 주권이나 그에 대한 충성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무력적 혁명 이념을 고무 찬양하거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로마 제국의 착취적 정책과 타협하여 권력과 특권을 누리고 있던 지배층의 안보이념을 승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이든 유대 지배세력이든 하느님의 뜻과 다르다면 하느님의 통치와 병치시키지 않고,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많은 일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상황들, 우리가 간절히 원하지만 많은 장애로 인하여 접근하기도 힘들 사건들, 그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도 본질만 바로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당당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받았으니 되돌려주어라 -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 중에서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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