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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말속에 하늘의 마루를 읽는다

기사승인 2019.01.27  19: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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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지식인들의 어리석음[얼이 썩음]과 씨알의 말

한민족이 5천년의 고난의 역사를 통해 아로새겨진 생명의 뜻을 읽고 씨알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며 하늘과 직통하는 존재임을 깨닫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장애요인을 함석헌은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에게서 본다. 생명과 정신의 근본원리가 ‘스스로 함’이고 ‘제 까닭’인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생각과 힘에 눌려 살게 하여 씨알의 정신을 파괴하고 쇠퇴하게 한 원인이 이들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질타한다.

“우리가 이 꼴밖에 못 된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도 맘 있고 뜻 있고 얼이 있습니다. 우리로 우리 것을 못하게 하고 남의 장단에 춤을 추라고 억지질을 한 저 다스린다는 축들 때문에 이렇듯 병신 꼴이 됐습니다. 안다는 사람, 공부했다는 사람, 원하지도 않는데 제멋대로 이끌어준다, 다스려준다 하는 사람들, 그들은 다 남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머리가 돌았고, 그 밸이 바뀌었고, 그 대가리가 비었습니다.”(함석헌, “우리 민족의 이상”,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전집 1, 347)

씨알을 눌러 온 지식인들

우리가 한국역사의 뜻을 잃게 된 까닭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함석헌은 말한다. 하나는 눈앞의 현실에 잡혀 버린 것이고, 하나는 남의 생각에 끌려간 것이 그 까닭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남의 생각을 빌어다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제 생각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함석헌 선생님은 지식인들의 그릇된 생각으로 짓눌려온 씨알의 세상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Getty Image

함석헌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하나는 될수록 말썽 없이 살아보자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생각해 가며 새로 길을 찾아보자는 정신이다. 그런데 생각하기는 사실 힘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웬만하면 생각하는 것은 남에게 맡기고 쉽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정치 잘하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상 가진 국민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될 수록 백성을 눌러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네도 중국 생활, 일본 생활, 미국 생활을 빌어다가 손쉽게 해 먹으려고만 하였다.

함석헌은 지식인들도 지식으로 겨레를 팔아먹었다고 질타한다. 지식인들은 겨레와 지식을 맞바꾸어 겨레를 버리고 스스로 겨레에서 빠져나왔다. 같은 핏줄에서 났다고 ‘한겨레’인 것이 아니다. 겨레는 피가 아니다. 얼이 얽힌 것이 겨레다. 얼이 썩은 어리석은 지식인들은 겨레를 말할 자격이 없다.

씨알의 말 속에 하늘의 마루

이제라도 우리는 남의 생각에 중독이 되어 정신을 잃고 있는 우리 속의 얼을 깨워 일으켜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슬기가 솟고 힘이 터져 나올 것이다. 씨ㅇ·ㄹ의 입에서 ‘얼씨구 절씨구’, ‘얼럴럴 상사디야’가 터져 나와야 한다. 우리는 바로 그 얼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씨알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그 속에서 말건네오는 하늘의 마루[뜻]을 읽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배웠다는 학자들은 한문이네, 영어네, 그리스어네, 라틴어네, 독일어네, 프랑스어네 하며 남의 말로 된 학술용어를 쓰면서 그것이 대단한 권위며 특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낡아빠진, 씨알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때에 사람을 업신여기던 봉건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민족은 씨알이 스스로 제 생각을 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니 씨알의 말로 해야 한다.

영어나 한문 즐겨 쓰는 지식인들의 머리는 아직 끼리끼리 살자던 귀족주의를 못 벗어난 상태이다.

“2천년이나 써 내려오는 한문 두고 모자라서 한글 지었습니까? 남의 고기 먹고 편히 사는 다스린다는 놈들에게야 모자랄 것 없겠지만, 씨알에게는 그게 모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한문 가지고는 도무지 시원히 알뜰히 그려낼 수 없는 제 것이 제 속에 있었습니다. 2천년을 벙어리 냉가슴으로 내려왔지만 그냥 더 있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줄을 안 것이 어진 세종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알기 어려운 남의 말 혹은 옛날 말로 해서 젊은이들을 맴돌이질을 시켜 놓고 지식을 비싸게 팔아먹고 권력을 자기들끼리 몽땅 쥐고 씨알을 다스리려는 생각에서 어려운 말을 일부러 한다. 그렇지 않은 담에야 우리 말로인들 못할 것이 어디 있는가? 없다. 함석헌은 단호히 말한다.

“반드시 우리말로 해야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말로 옮기려 애쓰는 데서 남의 것을 참으로 알고 속에서 내 것이 자라고 밝아집니다. 제 나라 이름조차도 제 글로 못 쓰는 이런 겨레가 어디 있어요? 이것이 겨레야요? 겨레 없으니 나라 없고, 글월[문화(文化)]이 없고, 살림이 보잘것없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생각하는 얼이 부족하지 않게

함석헌은 생각을 해도 우리가 해야 하고 힘을 내도 우리가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말로는 할 수 없는 종교·철학·예술·학문이 있다면 아무리 훌륭해도 그만 두시오. 그까짓 것 아니고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글월이 돋아나오지, 공작의 깃 같은 남의 글월 가져다 아무리 붙였다기로 그것이 우리 것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말로 이런 말이 있다.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이, 일만 더욱 복잡해지고 머리만 혼란스러워질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즉흥적으로 즉각적으로 순간적인 빤짝 아이디어에 따라 ‘빨리 빨리’ 처리해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의 순발력과 추진력은 높이 치면서 늙은이의 경험에 바탕한 신중함과 통찰력은 낮추본다. 그러다 보니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아주 편안한 삶의 형태로 굳어져버렸다.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이런 단점을 고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치면서 각성할 것을 외쳤다. 우리 민족이 사람은 좋은데 생각하는 얼이 모자란다고 한탄하였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들이파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無常)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雜多) 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캄캄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은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 시(詩)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하늘로 다다르는 생각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는 생각의 중요함을 이렇게 힘주어 말하였다.

“생각은 우리의 바탈[性]이다. 생각을 통해서 깨달음이라는 하늘에 다다른다. 생각처럼 감사한 것은 없다.”(류영모,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박영호 편, 홍익재, 1993, 124)
“좋은 사상은 내 생명을 약동케 한다. 남의 말을 들어도 시원하다. 생각처럼 귀한 것은 없다. 생각해서 밑지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생각 가운데도 거룩한 생각, 그것이 향기다. 바람만 통해도 시원한데 거룩한 향기가 뿜어나오는 바람이 불어오면 얼마나 시원한가. 시원한 생각, 시원한 말씀이 불어가게 하라.”(류영모, 『다석 류영모 강의록. 제소리』, 김흥호 편, 솔, 2001, 154.)

함석헌은 우리가 생각을 통해 전 우주의 역사, 전 우주의 생명과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내가 있고 내 머리에 생각이 솟는 것은 전에 억만 생명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요, 억만 마음이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몸은 무한의 바다의 한 물결이다. 내가 일어선 것은 내가 일어선 것이 아니요, 이 바다가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나 스스로 하는 것이 있어 그 운동에 한 가닥 더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잠깐 일어났다 꺼질 것이나, 내가 전하고 일으키는 이 운동은 저 바다를 끊고 건너갈 것이다.”(함석헌, “살림살이”, 『인간혁명의 철학』, 함석헌 전집 2, 304)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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