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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기사승인 2019.01.26  19: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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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2)

40일 여정의 세 번째 까미노 순례길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넉달이 되었다. 몸은 서울에 와 있지만, 내 영혼은 아직도 스페인 북부의 어느 작은 농장 마을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육신은 곤한데 영혼은 오히려 날개를 단 듯 더 생생해지고 있다.

난 다시 묻는다. 왜 걸었을까? 왜 매년 삼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힘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순례길을 걷는 것일까? 천 년 전 유럽 기독교인들이 걷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산티아고는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은 기독교 성지라고 부르기 때문일까?

모슬렘 신앙인들은 한 번의 메카 순례를 위해 평생을 걸려 준비한다. 계명을 실천하기 위한 종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쉽고 편한 교통편을 외면하고 낙타와 함께 굳이 걸어서 가는 순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 순례길을 걸으며 여러 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마을. ⓒ조헌정

나는 20년 전부터 유럽 내의 여러 기독교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홀로 여행길에서 순례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후 네팔 트레킹과 산티아고 까미노를 통해 순례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내가 페북에 까미노에 대한 매일 연재를 시작하자 페친 한 사람이 왜 고국의 길을 놔두고 스페인까지 가서 걷습니까? 하는 약간 불만조의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내가 거기에 굳이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난 이렇게 반문하고 싶었다.

어디 남한에 한 달 이상 계속 걸으면서 하루 만원에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요? 중간 중간 천년 혹은 이천년의 인류 문명과 종교가 담겨 있는 유물과 도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는지요? 그리고 그 길에서 짧지만 내면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지요?(물론 이는 외국인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질문이긴 하다.)

그리고 남한 산천의 수려함은 분명 있지만, 광대한 스페인 땅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풍경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부엌을 이용할 수 있을뿐더러 스페인의 식료품값은 남한에 비해 절반 이하이다. 그러니까 비용으로 따져 최대한 절약한다면 하루 이만 원 이상이 들지 않는다. 난 이번 순례 길에서 대략 일곱 번 정도 부엌을 이용하여 쌀로 밥을 해먹었다.

아브라함 이야기의 재해석

개각(開覺, 거듭남)은 신앙의 길을 추구하는 자들의 공통된 목표이다. 성서가 제시하는 삶의 길은 진정 무엇인가? 필자가 중학생 시절부터 목사가 되기로 서원한 이후 지금까지 50년 이상 추구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과 같이 어쩌면 답은 내 안에 이미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3년간 혼자 스페인 이란 터키 쿠바 볼리비아를 여행하였는데, 성서에 비추어 순례의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자원 은퇴 이후 교회 현장을 떠나니 더 분명히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창세기 1-11장의 원역사(pre-history)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역사 이야기이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여기서 말하는 복은 과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은 후손의 축복을 얻는다고 했는데, 이 후손은 유대교 신자들을 말할까? 아니면 기독교신자들을 포함하는 것일까? 그런데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누어 오랜 기간 종교전쟁을 한바 있고, 기독교는 반유대교 정서가 강하니 둘 다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가 얻은 아들은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그런데 지금 이스마엘의 후손 이슬람국가와 이삭의 후손 유대교 이스라엘이 서로 다투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세시대에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오늘날 중동 전쟁의 뿌리 깊은 원인이 되어 버렸으니 아브라함은 결코 축복의 근원이 될 수는 없다. 저주의 근원이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실체는 무엇일까? 요즘 남한 기독교는 대체로 세상 성공과 부자 그리고 건강과 장수로 이해하고 있다. 이건 굳이 아브라함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세상 사람 누구나가 추구하는 것이고, 꼭 교회에 나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믿어야만 얻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애굽 땅으로 피난을 간다. 먹을 것이 부족한 땅을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면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는 비축복(저주)의 땅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는 저주의 땅에 살아가고 있다.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나뉘어 골육전쟁을 하고 이후 70년 가까이 북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남은 북을 주적(主敵)으로 여기며 살아왔고, 그러한 결과로 기독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남한은 세계 제1의 자살국가로 부동의 자리매김을 했고, 예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어지던 평양의 북조선은 미국의 봉쇄정책과 자연재해로 인해 수십만 명이 아사를 당하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은바 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축복을 받았다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여기서 필자는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한 전폭적으로 다른 해석을 내어 놓는다.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필자 40년간의 신학과 목회,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며 특히 2년 전 터키와 이란의 역사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내린 학문적 결론이다. 내가 그간 배운 서구 신학과 이에 기초한 기독교 역사는 유럽 중심의 역사 이해이다.

우선 아브라함은 누구인가? 꿈에 나타난 신의 부름을 따라 나선 한 인물로 말하고 있지만, 이는 후대 성서편집자의 해석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던 제2의 아브람을 부르는 일은 왜 안 되고 굳이 갈대아지방 우르 출신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는 필자가 묻는 질문의 출발점이다.

이란의 여러 박물관을 돌아보면 서양 기독교역사가 대충 다루고 있는 페르시아 제국과 바빌로니아 제국과 우르 제국들에 대한 명확한 역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갈대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말하고 우르는 우르왕국(혹은 제국)을 뜻한다. 여기에 기초하여 아브라함의 성서 이야기를 재해석하여 본다. 아니 재해석이 아니라 모세5경의 틀 안으로 해석되기 이전의 원래 이야기(Ur-story)을 되찾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우르 왕국 유적지 ⓒGetty Image

우선 그는 아버지 데라와 함께 고향 땅을 떠난다. 이는 우르 왕국 패망으로 인해 후일을 도모하며 피신을 하는 이야기이다. 데라는 우르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다. 어쩌면 창세기 11장 10절 이하에 실려 있는 데라와 아브람으로 이어지는 셈의 족보는 우르 왕국의 족보일 것이다. 기원 전 이천년 전 우르는 그냥 지명이 아니라 수메르 제국의 제3왕조인 또 다른 제국의 이름이었다. 우르제국이 고대 바벨로니아제국의 침략을 받아 패망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죽는다. 데라의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아브라함은 추격을 피해 땅 끝 가나안까지 피신을 간다. 그리고 우리가 성서에서 보는 대로 기근이 들어 애굽 땅(제국)으로 피신을 간다. 난 여기서 먹을 것이 없어 피신을 갔다고 보기 보다는 왕국 탈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굽 제국의 힘을 빌리러 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 과정에서 애굽왕은 아내 사라의 동침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당시의 풍습으로 본다면 그 정도는 대가로 제공하는 선물일수도 있다. 여기에 하느님이 개입함으로 교섭은 깨어지고 만다. 이후 가나안 땅에 돌아온 이후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갈라선다. 그냥 갈라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유가 많아 함께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진정한 이유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서로 떨어져 살면 되지 갈라설 필요까지는 없다.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갈라섬’의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롯은 우르 왕국의 회복을 위한 어려운 길을 포기하고 그 땅에 정착하는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롯이 취한 땅에 대해 13장 10절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아브라함 일행이 기근을 피해 애굽 땅에 내려갔다는 앞의 얘기와 모순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가나안 땅의 여러 작은 왕국들이 서로 전쟁하는 얘기가 나오고 소돔성에 거주하던 롯이 붙잡혀간다. 이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고 훈련된 자 삼백 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네 왕국의 군사를 물리치고) 롯의 가족과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아온다.”(14장 14-16절) 이때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영접한다.(17절) 이미 아브라함은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작은 왕국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집에서 기르고 훈련된 자” 곧 군사들은 왜 필요로 했던 것일까? 당연히 우르 왕국의 회복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얘기는 아들 이삭 번제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서구 신학은 인간 희생 번제의 잔재로 해석한다.

필자는 여기서 전연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 늙어 우르 왕국 회복의 꿈을 이삭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던 바, 아브라함은 그것이 하늘의 뜻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 후대 편집자들이 이삭 번제라는 종교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들 이삭 번제 이는 곧 우르제국 회복의 꿈을 접는 것을 말한다.

정착(제국)의 길과 유목(평등공동체)의 길

그렇다면 여기서 아브라함이 깨달은 하늘의 길은 무엇이었나? 그건 농경정착 문화에 기초한 갈대아와 애굽 제국의 가치에 저항하는 가나안 지역의 유목(Nomad)의 삶이다. 아브라함은 12장에서 땅의 축복을 받지만 계속 옮겨가는 삶을 산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9절) 정착하지 않고 옮겨 다니는 삶. 이것이 바로 야훼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이다.

땅의 소산을 드린 가인의 제사는 거부를 당하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여진 이유를 기록된 성서 구절만으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론 목사들은 ‘첫’에 그 강조점을 두지만, 땅의 ‘첫’ 소산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난 농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나무의 열매의 첫 열매가 어느 것임을 알 수 있을까?

잘 익은 열매를 추려내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농부가 아무거나 마구 드릴까? 이 얘기의 핵심은 가인은 정착 도시 문명(제국)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4장 17절에서 “가인은 성을 쌓는다.” 반면 아벨은 유목문명(가족공동체)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정착 도시 인류 문명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어떠한가? 온난화로 인한 지구생태계가 극도로 위협받고 있고, 모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총포 미사일은 물론 지구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기회만 되면 이웃 나라들의 땅을 힘으로 빼앗거나(미국의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탈취, 푸에토리코, 괌 식민지화, 중국의 티베트,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 점령) 경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갖고 있다. 곧 제국들이다. 인류 역사는 땅 빼앗기 전쟁의 역사이다. 땅은 본래 어떤 한 집단이나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착 문화가 생겨나면서 땅 소유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성(도시)을 쌓으면서 제국이 되어갔다.

여기에 대해 이미 약자로서의 설움을 톡톡히 경험하였던 애굽 제국의 노예 출신 히브리인들은 그러한 제국으로서의 삶의 길을 포기하고 땅은 야훼 하느님의 것임을 선언하고 모두가 함께 공유하며 연대하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다. 출애굽 광야 40년의 삶은 바로 그러한 유목의 삶을 훈련한다는 상징 언어이고 이곳에서 받은 시내산 율법의 핵심은 과부와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외국인 나그네, 떠돌이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이 선포된 것이다. 

유목의 삶은 자기 땅을 경계 지을 수 없고, 양떼와 함께 풀을 좇아 매일매일 이동을 해야 한다. 소유하는 물건이 많아지면 이동이 불편해진다. 집조차 접었다 폈다할 수 있는 천막 형태여야 한다. 집단이 커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작고 단순한 삶! 바로 이것이 유목의 삶이다. 물론 이는 이상향의 삶이다.

결국 히브리에서 출발한 유대인들은 야훼의 뜻에 맞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뭉쳐 왕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다윗왕국의 번영기를 맞이하는 것도 잠깐 솔로몬 왕 이후 남과 북 두 왕국으로 나누이고 이어 제국들에 의해 각각 멸망을 당한다. 그리고 이천년이 지나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로 다시금 태어났다.

그러나 이는 본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와 히브리인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유목의 삶의 가치에 이반되는 삶이 되고 말았다. 현재 이스라엘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의 (전쟁과 분열) 정치를 이끌고 있는데, 이는 미국내 유대인들이 미국의 경제와 언론계를 손에 쥐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적으로는 백인과 흑인들로부터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스페인과 남한의 차이

난 스페인의 까미노 길을 걸으면서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스페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우리보다 더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토록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오후 2시가 되면 모든 가게는 낮잠을 즐기기 위해 문을 닫는다. 4시 반 어떤 경우는 6시가 되어야 다시 문을 연다. 그리고는 9시가 되면 식당을 제외하곤 모두가 문을 닫는다.

1년 전 이태리 순례자와 함께 산티아고의 유명한 햄버거 식당을 찾아갔다. 저녁 8시에 갔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9시 반이 돼서야 문을 연다. 그리곤 식구들은 자정까지 포도주와 함께 대화를 즐긴다. 난 세 번의 까미노 기간을 모두 합치면 스페인에 100일을 머문 셈이 되는데, 이 기간동안 단 한 사람도 술에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처럼 술이 사람을 먹는 경우는 없다.

저들은 맥주 한잔을 놓고 두 세 시간씩 담소를 한다. 우리처럼 아파트 한 평을 넓히기 위해 아웅다웅 살아가지 않는다.(이는 약간 과장된 표현이지만, 저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여유 있는 행동의 차이는 분명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스페인은 우리같이 최신식 전쟁무기를 계속해서 사들일 필요도 없고 군대를 그렇게 많이 운용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우리만큼 그렇게 크지 않다.

그렇게 속속들이 걸어 다녔지만, 군부대 시설 구경 한번 한 적 없다. 그리고 경제 또한 미국 자본에 의해 우리만큼 잠식당하지 않았다. 남한의 노동자는 재주만 넘고 돈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래서 노동쟁의가 끊이질 않고 100미터 굴뚝에 올라간 두 노동자가 일 년을 넘어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해도 뽀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결탁한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분명히 가진 것을 내어 놓고 함께 나누는 사랑과 연대의 나눔 공동체였다. 로마의 국가권력과 결탁하면서 복음의 타락은 시작되었고, 오늘날에 있어서는 거의 돌이킬 수 없는 막바지 지점에까지 다다랐다.

굳이 따지자면 예수 공동체는 사회주의에 가깝지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와는 결코 가깝지 않다. 오늘날 남한 대부분의 교회는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부의 축척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선언하는 반예수, 반복음의 말씀을 순복음으로 오해하고 있다.

광야와 40

성서에는 40이란 숫자가 여러 번 등장한다. 이는 인간 역사에 관여하시는 야훼의 손길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광야와 직계되어 있다. 히브리 노예들이 훈련받는 광야 40년이 그러하고 변화산상에 등장하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가 야훼의 말씀으로 백성에게 역사 창조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해 광야에서 기도하는 기간이 40일이다. 노아의 재창조 기간이 40일이며 마태복음 1장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의 아버지이자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까지의 족보 또한 40대이다.

성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상징으로서 광야의 삶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므드바르’이다. 므는 장소를 뜻하는 접두어이고 드바르는 창세기 1장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하느님의 말씀(‘다바르’)과 같은 어근이다. 곧 ‘므드바르’는 인간 세계 안에 하늘의 새 역사를 창조해내는 말씀의 힘이 임하는 장소이다. 성서에서 광야는 단지 허허벌판의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일관하는 인간 역사에 반하는 새 창조의 힘이 임하는 카이로스의 시공(時空)을 뜻한다.

서울의 어느 성공한 회사 사장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휴양을 갔다. 호텔에 며칠 머물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한 어부가 아침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두세 시간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오후 내내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고기 잡는 일을 끝내는 것이요?”
“내 가족이 하루 먹을 것을 잡았으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하라는 말이요?”
“많이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을 벌지 않겠소?”
“그래서요?”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생선통조림 공장을 차리고 종업원을 고용해서 사장이 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 이렇게 나같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휴가를 즐기지 않겠소?”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요?”

걷기와 복음의 상관성

지난 글에서 난 ‘걷기는 저항이다.’라는 『걷기의 인문학(A History of Walking)』의 저자 레베카 솔닛의 말을 인용한바 있다. 이십여 일 쯤 걸었을 때, 성당에서 운영하는 어느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에서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발적이긴 하였지만, 약 두 시간에 걸쳐 순례자들끼리 자기 소개와 길을 걷게 된 연유를 나누도록 하고 비틀즈의 ‘Let it be!’를 비롯한 노래 몇 곡을 수녀님들의 인도와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후, 저녁 미사에 참여하고 이어 순례자들만을 위한 축복기도를 신부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여 주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나누었는데, 수녀들은 스프와 빵을 준비하고 나머지 과일 치즈 케이크 등은 순례자들이 한 가지씩 준비하였다. 난 그리 값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포도주 2병을 준비해갔다.(중간 값은 약 오천원정도) 난 까미노를 걷는 이유에 대해 개신교 목사로서 이천년 유럽 기독교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고 말하였다. 후에 나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복음’(기쁜 소식,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저자 마가의 창작이 아니다. 이는 로마 시대에 자주 쓰이던 정치군사적 용어로서 전쟁의 승리를 뜻하였다. 전쟁 승리의 소식과 더불어 로마 시민들에게 분배될 노획물과 노예들을 뜻하였다. 저자 마가는 이러한 군사적 힘에 기초한 로마제국의 강자 지배 논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갈릴리의 민중과 함께 하다 끝내 로마제국의 십자가형에 처해진 청년 예수의 말과 삶을 참다운 ‘복음’이라고 바꿔치기 한 것이다.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곧 ‘반(反)제국’으로서의 저항의 언어이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하신다. 길은 앉아서 명상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걷기 위해 존재한다. 쉽게 걸으려면 지닌 것이 적어야 한다. 난 배낭 무게 때문에 매번 고생을 했다. 끝내 써보지 못한 물건 몇 개를 지니고 다녔다. “여행용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얻는 것은 마땅하다.” 단순한 삶, 이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향해 길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명령이었다. 지금도 어떤 순례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머물 집을 두들기며 걷는 친구들도 있다.

예수는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민중(‘오흘로스’) 속으로 들어가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 민중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이셨다. 오천 명, 사천 명 급식 기적이야기의 사회적 배경이다. 진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손에 붙잡히는 순간 이미 진리는 아니다. 놔야 한다. 진리 또한 길과 함께 움직인다. 생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구 기독교가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띤 청지기의 섬김 마음으로 ’돌보라‘는 단어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제국의 언어로 해석한 이래 인간은 이성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 지구를 마구 파헤쳤다. 결과적으로 인간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 파국적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길을 걷다 보면 풀 한포기 돌 하나에 생명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길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풍성하게 만들어간다.

십자가 목걸이 이야기

난 3년 전 첫 까미노 프렌치길을 걸을 때에 평화를 상징하는 테제의 비둘기모양의 십자가 하나를 목에 걸고 시작했다. 걷는 도중 성 프란시스의 수도원에서 구입한 무소유를 상징하는 그의 테우 십자가가 더해졌고, 작년 포르투갈 길에서는 성지 파티마에서 구입한 거룩한 훈련을 상징하는 성 프란체스코의 십자가가 더해졌다. 그리고 올해에는 4일이나 머물며 발바닥 물집을 치료했던 쩨나루짜 수도원에서 구입한 작은 조개껍질 십자가를 치유의 상징으로 목에 걸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십자가 외에 또 하나의 목걸이를 걸고 다녔는데, 그건 작년 두 번째 까미노길을 출발하는 리스본 길가에서 구입한 체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쿠바 동전이었다.

▲ 순례길에서 만난 그리스도 상 ⓒ조헌정

이번 순례길의 마지막 날 알베르게 식당에서 뜻밖에도 사회개혁적인 뜻을 갖고 있는 스페인 의사를 만났다. 그와 얘기하는 가운데 내가 개신교 목사임을 말하면서 체 게바라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스페인 말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였다. “A DIOS ROCANDO Y CON EL TIAZO DANDO” “신에게 기도할 때에는 망치를 들고 하라.”(Pray with a hammer.) 그날 밤 그와 나는 침대를 마주하고 잠을 잤다.

장자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자아)를 싫어했다. 한번은 그가 그림자를 떼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만하면 떨어졌겠지 생각했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결국 그는 뛰다가 지쳐 죽었다. 장자는 말한다. “그대는 왜 큰 나무 아래에 가서 한가롭게 쉬지 못하는가? 나무 아래로 가면 그림자가 없어질 것 아닌가?”

현대인들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뒤쳐질까봐 무조건 질주를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먼저 잡기 위해. 그래 주위에 어떤 모습이 펼쳐져 있는지 깨닫지를 못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이 진리는 길 위에서의 자유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대학생 시절 <씨ᄋᆞᆯ의 소리>에서 읽었던 글귀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어느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道가 무엇입니까?” “문밖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다.” “아니, 그런 길 말고 大道 말입니다.” “그건 장안(長安, 서울)으로 가는 길이다.” 도(道)는 책상머리 앞에서는 깨달을 수 없다는 말이다. 道는 머리가 뱀 위에 놓여 있는 형상이다.

부록: 내가 경험한 기적들

1. 새벽에 작은 도시를 떠나 개울가 숲속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는데, 길이 둘로 나누어졌다. 확인을 위해 가이드북을 폈는데, 아직 날이 채 밝지가 않아 달빛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그렇게 서 있는 시간이 한 2분쯤 되었으리라. 그런데 내 발밑에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보여 고개를 들어보니 산돼지 세 마리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아마도 아빠 엄마 그리고 딸 아니면 아들 분명 세 번째는 크기가 반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아악!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이들이 획! 돌아서더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가슴이 뛰었다.

2. 아무리 표시가 잘되어 있다 하더라도 길을 헤매는 경험은 모두 두세 번씩은 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참새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한번은 숲속 길을 나왔는데, 대로를 건너 다음 숲속 길로 들어가는 길과 대로변을 따라 걷는 두 신호판이 나타났다. 그때 나도 모르게 대로변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하며 몸을 그쪽으로 돌렸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한 싸이클리스트가 나에게 그리 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날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비가 세차게 오는 가운데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숲속으로 꺾어 들어가는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찻길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지나가다 창문을 열고 나에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말을 해준다. 그곳은 동네도 가까이 있지 않는 외딴 곳이었다. 아마 계속 갔더라면 그날 밤은 숲속에서 헤매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차가 그곳을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비오는 가운데 차가 서서 문을 열고 얘기를 한다는 것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 이전 두 번의 순례 길과는 달리 이번에는 둘째 날부터 발바닥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만 이를 무시하고 삼일을 계속 걸었더니 완전히 악화가 되었다.(이후 발톱 두 개가 빠졌고, 발바닥은 세 겹 피부 밑의 속살이 드러났다.) 그런데 수도원 숙소에 함께 머문 순례자 가운데 독일간호사 두 여성이 있었다. 가지고 다닌 약품으로 내 발을 치료를 해주었다. 난 당시 필수품인 밴드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천사를 만난 셈이었다.

조헌정(향린교회은퇴목사,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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