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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좌절을 느낄 때

기사승인 2019.01.18  18: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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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의 때문에 (주어졌다).(로마서 4,13)

바울이 구약을 인용하는 방식은 오해를 낳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믿음을 구별하려는 그의 신학적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이 구절은 창 17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동행은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의 ‘믿음’ 때문에 의롭다고 여기시기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그때엔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가 믿었다고 한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더 이상 의미없는 것으로 판단되던 때입니다. 유일한 혈육인 롯과 헤어져야 했고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하나님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좌절’했던 때입니다. 믿음의 좌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이를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 믿음은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이 믿음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믿음’입니다.

그후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명령을 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게/온전하게/흠없이 살아라!” 어떻게 사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인지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배제한 ‘언약’ 이해는 부적절할 것입니다. 명령과 언약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명령은 은 의미의 ‘(율)법’입니다. 그것이 언제 구체화되든 그것은 조건이나 목적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쪽이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믿음 없는 율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내세우는 유대인들로부터 소위 이방인들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약속 앞에 동등한 자들임을 입증하는데 있습니다. 믿음이 이 역할을 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기쁨 가득한 오늘이기를. 온전한 삶을 희망하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는 이날이기를.

ⓒGetty Image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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