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도를 닦으면 날로 덜어지는데” - 爲道日損

기사승인 2018.12.03  19:22:08

공유
default_news_ad1

- 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48

“학문을 닦으면 날로 더해지고, 도를 닦으면 날로 덜해지는데, 덜고 또 덜면 無爲에 이른다. 무위면 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천하를 취하려면 늘 일하지 않음(無事)으로 해야 한다. 또한 일 함(有事)은 천하를 취하기에 부족하다.”
- 노자, 『도덕경』, 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학문을 연구하면 할수록 지식이 많아지고, 그 지식으로 출세하여 성공하려면 때로 요사스런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여기에서 노자가 비판하는 지식은 당대 정치이념인 유가와 법가의 학문을 뜻한다. 그 유가의 정치이념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하여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그 지식은 무한경쟁사회에서 편법과 농단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권력에 굴복하고 법 지식을 승진과 성공의 수단으로 삼아서 농단한 모습이다. 노자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우리 사회의 단편이다.

ⓒGetty Image

그러나 자연의 천도를 수행하면 사리사욕을 날마다 덜게 된다. 노자는 禮儀의 형식적이고 외재적인 장식문화를 거절하고 있다. 노자는 정치가 일 없는(無事) 길을 걸을 때 천하가 그 도덕을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무사는 인위적인 지식을 쓰지 않는 정치이다. 노자는 이어지는 장에서 일 없는 정치를 당대의 현실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도를 깨치면 깨칠수록 남을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지식은 점점 내려놓게 된다.

도보로 큰길을 갈 때는 반드시 가장자리로 가라.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거마(車馬)를 이리저리 피하지 말고
빨리 걷지도 말며
너무 천천히 걷지도 마라.
팔뚝을 흔들지도 말고
소매를 드리우지도 말며
등을 구부리지도 말고
가슴을 툭 튀어나오게 하지도 마라.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엇을 가리키지도 말고
좌우로 힐끗힐끗 보지도 말며
느리게 신을 끌어 뒤축을 흔들지도 말고
발걸음을 무질서하게 높거나 낮게 하지도 마라.
머리를 위아래로 까불지도 마라.
해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보아서 걸음의 완급을 정하라.
- 이덕무, 『창장관전서』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인생에서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한 큰 관문은 수학능력시험이다. 그 시험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그 시험을 위해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그 길을 의심하면서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 때에 협동과 환대와 배려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더 맑고 밝게 바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 걸었던 길은 많은 오해를 받았고, 이 때문에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장 예수님을 가까이 한다는 사람들이 그 길을 더 많이 오해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무지와 오해와 배척, 이 세 가지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보인 계속되는 반응이었다.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다녔지만,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뜻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지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오해하였다. 제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듯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예수님이 원하는 해방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하였다.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에는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함으로써 예수님과 자기의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고 자기들도 직접 예수님을 따라했건만, 때때로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증언하는 여자들과 다른 제자들의 말도 믿지 못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앎은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라면 ‘무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는 출발점입니다. 먼저 내가 모른다고 하면 겸손해지고 알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깨달음의 시작인 앎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해는 타인의 입장과 생각보다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고, 이해는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易地思之)입니다. 알지 못하면 믿음도 없습니다. 오해하면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반복되는 무지-오해-배척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가르쳤고, 그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놓았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님과 복음을 증언하고, 예수님의 꿈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여전히 무지-오해-배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잠간동안의 방심에도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잠시 한눈을 팔아도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우고 깨닫고 이해하고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무지, 오해, 배척”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