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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이란 것에 담긴 죽음과 생이 교차하는 모순

기사승인 2018.09.22  21: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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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관 옥상 고공단식농성을 마치고

“투쟁 속에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동아리방에서 기타 치며 생목으로 부르던 <철의 노동자>의 가사 중의 한 줄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일에 치인 저녁, 다같이 동아리 방에서 술로 붉어진 얼굴로 ‘쨍가’를 부를 때서야 살아 있음을 느꼈던 지난날을 생각합니다. 비록 음정과 박자는 틀려도 넘치는 열정으로 열창했던 그때 그 노래를 지금 다시 부르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단식투쟁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단식이란 것에 담긴 죽음과 생이 교차하는 모순적 성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늘에 있지만 땅을 위해 올라갔으며, 죽고자 했지만 대학의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했던 지독한 삶에 대한 미련이 절 쉽게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 18일 동안의 단식투쟁에서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 번뇌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저버릴 각오를 한 것이 당당했습니다. 부끄러워야 할 것은 총장이었지 제가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높은 현실의 벽을 넘고자 했던 우리들의 용기를 말하고 싶습니다. 부정한 현실에 당당한 인간이고자 했던 우리들을 살아 있게끔 했던 것이 바로 용기가 아니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쟁 속에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18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총장은 올해 10월에서 내년 5월 말로 제 생명을 연기했을지는 몰라도, 진정으론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거짓된 삶은 살아도 산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말하듯, “제 자신을 속이고서” 그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총장은 4자협의회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라, 거짓과 부정의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었습니다. 그의 시작은 끝을 더욱 명징하게 할 뿐입니다. 안타깝지만, 오늘을 계기로 총장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리곤 “아아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투쟁으로 이룬 사랑”, 이렇게 노래가 이어집니다. 지난 18일 동안 보여준 우리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단 하루를 살아도 억압과 부정을 이겨내는 인간이고 싶다는 선언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닳고 닳은 오래된 사랑이었을까요?

18일 간의 투쟁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험은 한 사람의 영웅담이 될 수도 없고, 색이 바랜 추억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힘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는 기억일 것입니다. 거리에서, 현장에서, 한신에서, 불의에 맞설 때마다 지난 18일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다짐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상하게 4자 협의회가 끝나고 안도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시 새로운 투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총장은 제 자리에 있고, 한신이 민주대학으로 가는 여정은 멀고 먼 것입니다. 이제 첫발을 떼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총장의 거취를 학내구성원이 결정할 수 있다는 이 확실한 결정을 내린 것에 보람찬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말씀드린 것처럼 18일 동안의 살아있는 기억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민주대학이 가을처럼 올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론 개인적인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투쟁에서 제게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이 오로지 저만을 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혼자서만 독차지 하려 들지 않겠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베풀 수 있도록 고민하겠습니다.

다만 그것이 절 위한 것이었든, 한신 민주를 위한 것이었든 저는 그로인해 아주 많은 힘을 받았고, 18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어려움 없이 잘 버틸 수 있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 덕분에 지독한 18일이 아니라 행복한 18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생에 갚지 못한 은혜를 벌써 지게 되어 부담스럽지만, 이것도 행복한 부담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힘써준 동지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이곳에 내려와 고향 순천의 넓은 들판을 벗 삼아 자유를 누립니다. 걸음걸음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보겠죠. 우리 이제는 꽃길만 걸읍시다. 투쟁!

▲ 단식을 마치고 이렇게 살아남아 고향에서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건수

김건수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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