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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0일을 굶을 작정을 했습니다

기사승인 2018.09.20  21: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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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대 만우관 옥상 고공단식 농성 열여덟째날

단식 18일 차에 접어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배가 주립니다. 밥을 굶었으니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단식 18일차에 접어든 사람은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허기를 느끼는 때는 초기일 뿐이고 그 뒤부터는 기력이 줄어드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식이 아주 오래된 다음부터 허기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아주 고역입니다.

배가 고프다는 원초적 공허함이 절 매우 힘들게 합니다. 그것은 제 몸과 마음이 서로의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죽어가는 마음과 더욱 살아내고 싶은 몸의 충돌, 그것이 배고픔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살고 싶은 것일까요. 18일차가 되어서야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가 원망스럽습니다.

또 하나 고백을 하자면, 고공농성이 워낙 불편한 투쟁이다 보니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용변을 이곳에서 본지도 18일이 되었지만 적응되기는커녕, 생리현상이 찾아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날마저 추워져서 그만 꼼짝없이 이불 속에만 있어야 하는 처지는 고립감을 더합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고, 밥을 먹고 싶고, 편안한 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곳에서 다시 밥을 굶겠노라며 100일 단식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절 배반하는 결정입니다. 전 이만 내려가고 싶은데, 다시 이곳에서 100일을 더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생활할 적에 비민주적인 한신대학교를 바꾸고자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투쟁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만을 위해 앞만 보고 살다보니, 저라는 사람이 회색빛으로 변하더군요. 욕심도, 욕망도 없이 그저 하루를 보내는 무색무취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옥상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끝내 살고자 하는 제 모습이 반갑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제 모습이 오히려 그전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이고, 더 인간답습니다. 이곳에서 살아있음을 더욱 느낍니다. 허기짐으로 느낄 수 있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합니다.

꼭 살아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일상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대한 벽을 마주하듯, 비민주와 불통의 벽에 메아리 울리는 지난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민주적인 대학에서,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한신대학교에서 이 생명을 누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전까지 저는 이곳에서 배를 주리겠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밝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 친구가 러시아에서 사다 준 모자를 쓰고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요즘 계속 글이 무거워져서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요. ⓒ김건수

김건수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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