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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

기사승인 2018.09.20  21: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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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동반마저 허용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제도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 전 2003년 제13회 아시안컵 축구선수권대회가 치러지고 있던 중에 입국한 네팔 축구국가대표팀 선수 3명이 점적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축구국가대표가 숙소를 이탈해서 이주노동을 선택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태극마크를 단 축구대표 선수의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움과 비장함에 압도를 당하기 마련이다. 그런 축구국가대표가 이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 사진 7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가 스쿠라. ⓒ이영 신부 제공

그리고 얼마 후, 순박하게만 보이는 네팔 청년 한명이 센터를 방문했다. 스쿠라(당시 27세)라고 소개한 이 친구는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 당연히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얼굴에는 긴장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바로 네팔 축구대표 중 한 명이었다.

앞서 그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스쿠라 역시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일뿐이었다. 축구공 대신 그는 연장을 들고 가구공장에서 묵묵히 일을 했다. 간혹 지역 간에 축구시합이 있으면 공을 찼다. 축구공으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그렇게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세월이 지나 스쿠라도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2014년 무렵 스쿠라가 홍콩에 있는 여자 친구를 초청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녀는 스쿠라가 네팔에 있을 때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던 친구의 동생인데 지금은 홍콩에서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홍콩을 잇는 이주노동의 사랑이 싹이 터 열매를 맺고 한국에서 만남을 갖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스쿠라는 이미 미등록 체류 상태에 있었음으로 자유로움을 잃은 상태이기에 사랑하는 그녀를 찾아 국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의 고달픔이 국경을 넘어 가로막고 있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막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2014년 EBS 대기획 9부작 가족쇼크 제3부 마석, 집으로 가는 길에서 소개되었다. 그리고, 2015년 제12회 ‘EBS국제다큐영화제’로도 상영이 되었다.

2018년 8월 25일 스쿠라는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떠났다. 사랑하는 그녀와의 결합을 위해 네팔로 돌아갔다.

스쿠라가 떠나는 환송회에 참석을 했다. 네팔에 돌아가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결혼식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당부했다. 그 역시 네팔에 꼭 놀러오라고 했다. 나름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지인 한분이 수크라에게 축구 유니폼을 선물해 주고 입혀 주었다. 그 유니폼을 입고 수크라는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묻지 않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꿈은 아직도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가지고 마음껏 운동장을 뛰고 싶다는 것을...

스쿠라를 떠나보내며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외국인력 제도의 가족의 동반을 허용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처사이다.

한국의 외국인력 제도는 대만의 고용허가제를 차용하여 최기에 3년 단위의 단기순환으로 설계되었다. 이후 사업주들의 요구로 장기화되면서 최장 9년 8개월까지 일하게 되었지만 원천적으로 가족동반과 정주를 철저하게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외국인력 제도는 노동력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이주노동자를 일회성으로 활용하고 있다.

▲ 한국의 외국인 인력제도 ⓒ이영 신부 제공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가족’이다. 하지만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의 결합권 마저 인정하지 않는 제도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보다 더 비열한 제도가 있을까!

1990년 12월 18일 UN 제69차 총회에서는 ‘모든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에 권한 국제협약’(이하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채택하였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바로 ‘이주노동자’와 ‘가족’이라는 점이다. 그 가족을 권리의 향유 주체인 사회적 실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 보호를 구체화하고 명문화한 첫 번째 협약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다른 인권협약이 시민권이나 체류자격에 근거하여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데 반해,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개인의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권리 보호를 인정한 협약이라는 점에서 다른 인권협약과의 차이와 의의가 있다.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협약의 당사국들에게 이주노동자 가족들의 결합의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이주노동자가 그의 배우자와 미혼의 미성년 자녀와 재결합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UN의 이주노동자협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노동 수용의 초과 유입과 정주화 촉진이 가속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주노동의 송출과 유입을 경험한 국가이다. 지난 100여 년간 이주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그 결과 700만이 넘는 해외 재외동포가 있다. 이를 반추한다면 다른 선진국과 달리 노동력 송출국가의 처지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단숙한 노동력 확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인식을 탈피하고 사회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하는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이는 이주에 있어 국제사회 내에서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아시아의 새로운 공존과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외국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제는 이민사회를 고민하고 수용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정주화를 고집할 수 없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를 역행할 수 없다면 UN의 이주노동자협약을 비준하는 것이 다문화공생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스쿠라 씨의 아내분과 함꼐 ⓒ이영 신부 제공

이영 eotjdekd@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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