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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가 바라 본 그리스도교의 삶과 죽음

기사승인 2018.09.18  2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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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자가 본 삶과 죽음 4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인간론은 유교를 비롯한 동양종교들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미주 14) 그리스도교와 동양종교들은 현재의 이율배반적이고 양가적인 모순과 탐진치의 유혹 속에 끊임없이 시련을 겪고 있는 현재의 나의 실존을 참나 또는 참삶(참생명)으로 받아 드리지 않는다(유교의 기질지성, 인심, 또는 소아).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을 보통 ‘창조된 인간’, ‘죄를 진 인간’,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세 가지의 상태로 나눈다.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원형이 참생명을 가진 참나이다(유교의 본연지성, 도심, 또는 대아).

그러나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짐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이러한 참나를 상실하고, 그 후 인간은 죄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전락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바로 이러한 죽음의 세력 하에 있는 내가 다시 참생명을 가진 참나를 회복하여 참삶을 살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삶이란 바로 양가적 모순 속에 있는 거짓 나(小我)로부터 참나(大我)를 회복해 가는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삶의 실천을 그리스도교에서는 성화(신앙생활), 유교에서는 수신(수양)이라고 한다. 이러한 수행적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탐진치(貪瞋痴)에 얼룩진 소아(小我)적 자기를 버리는 무아(無我)적 실천을 통해 대아(大我)인 참나로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러한 무아적 실천을 자기비움(kenosis)이라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성경』에서 생명은 bios, psyche, 그리고 zoe의 세 가지의 희랍어 단어로 표현된다. Biology(생물학)와 Psychology(심리학)의 어원으로서 앞의 두 단어는 생물학적 나(肉)와 심리학적 나(魂)를 지칭한다. 그러나 zoe는 좀 애매하지만, 영혼육(靈魂肉)의 구분으로는 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zoe는 생명의 근원인 호흡(숨)의 원칙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ruah과 희랍어 pneuma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숨과 깊은 관련을 가진 이 단어들은 몸에게 생명을 주는 숨, 지구의 숨과 같은 바람, 그리고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동시에 함의는 우리의 기(氣) 개념과 딱 맞아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에서도 본래 생명의 근원은 숨이요, 곧 기(氣)라고 믿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는 하느님이 사람을 흙을 소재로 몸을 만들고 그의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였다고 기록한다. ‘기’라는 단어는 한글에서 생명에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류는 이러한 기똥찬 한국인의 ‘끼’와 신명나는 풍류의 한 단면이다.

▲ 생전의 다석 유명모 선생. ⓒ다석연구학회

이러한 한국인의 기와 신명에 대한 전이해와 축적된 DNA적 잠재력이 기와 신명으로 가득찬 유대-그리스도교를 쉽게 받아드리고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 그리스도교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양 그리스도교의 문제점은 이러한 성경에 나오는 본래 그리스도교의 기와 신명을 상실했다는 점이고, 반면에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제점은 반대로 기와 신명이 그 내공의 깊이에 비해 지나치게 넘쳐나고 있다고 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로 bios는 목숨, psyche는 얼숨, zoe는 우숨 또는 말숨으로 번역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영모와 김흥호는 생명의 근원인 숨을 목숨, 말숨, 우숨으로 구분한다.

“목숨은 코로 숨 쉬고 깊이 자는 것이다. 말숨은 천하의 소식을 듣고 고금의 경전을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말하는 것이다. 우숨은 하느님의 거룩한 편지를 받고 세상을 초월하여 법열 속에 사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호흡이다.”(미주 15)

그래서 그들은 주역에 나오는 ‘일음일양위지도(一陰一陽爲之道)’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한다. ‘일음일양’은 들숨과 날숨의 호흡으로, ’도(道)‘는 그리스도로 해석된다.

“숨은 불사르는 것이다. 바람 속의 산소를 집어먹고 살고, 바람 속으로 탄소를 내보내고 죽는다. 호흡은 살았다 죽었다 하면서 더 큰 삶을 살아간다. 나뭇잎이 나고 지면서 나무는 커 간다. 사람도 나고 죽으면서 그리스도는 커 가고 있다.”(미주 16)

여기서 말숨은 말을 숨 쉬는 것으로서 말씀과 연관된다. 그냥 살려고 숨을 쉬는 ‘목숨’의 존재가 아닌 생명의 말씀을 숨쉬는 ’말숨‘의 존재로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또한 ’말숨‘은 글자그대로 ’마지막 숨‘(終命)이다. 그것은 곧 내 목숨은 끊어지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새생명의 숨을 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흥호는 이것을 말씀풀이라 하고 생각의 불꽃이라고 한다.

“생각은 말씀풀이다. 성령의 역사다. 말씀풀이가 하느님 만나는 절보이다. 말씀풀이는 죽음이다. 죽음이란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말씀풀이 불꽃 속에 내가, 내 몸이 타오른다. 심신탈락진(心身脫落盡)이다. 그리고 오직 불꽃만 생각만 훨훨 타고 있다... 말씀뿐이다.”(미주 17)

그러므로 유영모의 한국적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죽음이란 생명의 일부이다. 자연현상에서도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은 날숨과 들숨을 쉬듯,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사실상 숨이 밝혀주는 삶의 실체는 비연속적 연속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참삶은 현세 삶의 죽음(종말)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실로 받아드린다. 이른바 종말론이다. 여기서 말숨(終命)이 설득력은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미 죽어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되 아직 이 세상에서 목숨을 가지고 말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존재이다.

그래서 유영모는 “애벌레, 고치, 나비,” 곧 ‘소아(小我), 무아(無我), 대아(大我)’의 삼단계 인간론을 피력한다. 자연현상에서 보면 사실 이타행위를 함에 있어서도 인간은 벌과 같은 미물보다도 못한 존재이다. 인간은 나비의 꿈을 가지고 나비가 되는 자기완성을 이룩했을 때 그것이 가능해 진다. 그것을 유영모는 참나(眞人)와 참생명(참삶)을 갖게 되는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몸의 부활이라고 이해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애벌레, 고치, 나비의 삼단계의 변화를 거쳐야 한다.

“소아가 무아가 되었다가 대아가 된다. 코로 숨쉬는 코기리, 염통으로 숨쉬는 숨기리, 코(自)와 염통(心)이 합치면 지성불식(至誠不息)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영원한 생명이 된다. 생각이요 말씀이요 웃음이다. 목숨이 말씀이 되고 웃음이 된다. 십자가가 부활이 되고 승천이 된다.”(미주 18)

코(自)길(기리)과 염통(心)길이 합치면 숨(息)길(기리)이 된다. 몸길(道)과 숨길(道)이다. 그러므로 유영모의 신학은 몸과 숨의 영성을 가진 길의 신학, 곧 필자가 주장하는 도(道)의 신학을 지향한다.(미주 19)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몸과 숨의 영성이 마구간의 애벌레를 십자가의 고치(고디)의 단계를 거쳐 나비로 부활하는 참 인생의 모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유영모의 신학적 인간론은 애벌레(小我)를 벗어나 고치(無我)의 단계를 거쳐 나비(大我)가 되는 몸과 숨의 수행 및 수양론, 곧 도의 신학으로 귀결된다. 참 나비는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삶은 참삶(眞我, 大我)이고, 늘삶(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죽음은 참나, 참생명, 참삶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그래서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깊은 것이며, 죽음 공부가 마지막 공부인 동시에 ‘참공부’라고 유영모는 말한다. 죽음을 무서워하면 오히려 죽음의 종이 된다. 죽음은 삶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에 가서 참생명의 참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 참삶을 사는 그것이 곧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미주 20)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모두 혼돈 속에 있는 내가 본래의 내 자리와 참나를 찾고, 제소리를 내며 참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주

(미주 14) 김흡영·금장태, 「존 칼빈과 이퇴계의 인간론에 관한 비교연구」, 『도의 신학』(서울: 다산글방, 2000), 231-291 참조.
(미주 15) 김흥호편, 『다석일지 공부』 (서울: 솔 출판사, 2001), 제1권, 28.
(미주 16) 같은 책, 1:69.
(미주 17) 같은 책, 1:480.
(미주 18) 같은 책, 1:334-5.
(미주 19) 김흡영, 『도의 신학 II』(서울: 동연, 2012) 참조.
(미주 20) 유영모, 다석학회편, 『다석강의』 (서울: 현암사, 2006), 제1강 제목.

김흡영 대표(한국과학생명포럼) heup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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