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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시간에 몸을 맡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사승인 2018.09.18  21: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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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대 만우관 옥상 고공단식 농성 열여섯째날

지리산에 2번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번, 고등학교 2학년 때 한번, 모두 학교 행사였습니다. 일정이 정상까지 등반하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정상을 목표로 3박 4일을 꼬박 산을 올랐습니다. 그땐 3박 4일이 참 길었습니다. 첫날부터 언제 집으로 돌아가나, 하며 어서 집으로 돌아가길 손에 꼽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지막 날이 되어 정상에 오르는 기분은 최고입니다. 아, 결국엔 왔구나.

어쩌다보니 단식이 16일차에 접어 들었습니다. 단식을 결심할 때만 해도 까마득한 시간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긴 합니다. 하루, 이틀 굶을 때만 해도 16일차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시간에 몸을 맡기며 여기까지 온 감회가 색다릅니다. 제가 16일을 굶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2주 간의 시간 동안 저는 지리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단식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3박 4일이라는 일정이라도 정해져 있는 것처럼, 오르다 보면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담담하게 하루를 넘고 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의지가 대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자연스레 산 아래가 낮아 보이듯, 단식 일차가 쌓일수록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 덕분에 저는 힘든 몸을 이끌고 정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의 변화입니다.

아래에서 함께 투쟁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학교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말하는 게 달라졌다고, 총학생회를 바라보는 표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전엔 외면하거나 망설이거나 싫어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던 학생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목숨을 건 호소가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요? 건성이던 박수소리에 마음이 담기고, 분명한 지지와 응원을 직접 귀로 듣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 저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 투쟁은 이미 이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곳을 향하던 학생들의 마음을 우리에게 돌렸으니,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총장직선제도, 신임평가도, 민주대학 건설도 결국은 우리 학내 구성원의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학내 구성원의 변화 없는 학교의 변화는 말 그대로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해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도 기쁩니다.

물론 투쟁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정말 민주대학을 만들 수 있겠다고 확신합니다. 학생들의 변화에 학교 당국이 어서 그 뒤를 쫓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학교 당국은 넘어야 할 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침묵과 기만으로 일관하는 학교 당국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건강을 묻는 인사치레가 아니면 절 만나러 올 생각도 못하는 그들, 비겁합니다.

오늘로 단식 16일차, 4자 협의회까지 2일 남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넘고 이곳까지 왔는가. 그래서 앞으로 넘어야 것은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가듯, 우리도 앞으로 가야만 합니다.

▲ 옥상에서 멀리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우리들의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가지 못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건수

김건수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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