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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운동의 전거로서의 민중교회운동

기사승인 2018.05.23  23: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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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교회’를 찾아서 ②

작은교회운동이 2010년 <생명과 평화를 여는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으로 촉발되었다고 말했지만 대안적 교회를 추구하는 흐름은 한국교회사 속에 면면히 흘러오고 있다. 사실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한국 개신교회는 어떤 의미로는 전체적으로 대안적 공동체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과 복지 문화의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망목회’라는 최근의 에큐메니칼 목회론과 작은교회론을 말하는 견지에서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병리현상은 도리어 고속성장(또는 과속성장)시대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작은교회운동의 전조를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대의 집단적 대안적 교회운동은 바로 ‘민중교회운동’이다. 민중교회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걸쳐 공단지역이나 빈민지역에서 민중과 함께하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려 했던 교회운동이다.

필자도 인천지역에서 1989년부터 10년에 걸쳐 이 운동에 참여했는데, 이러한 민중교회들은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노동자 빈민의 문제를 선교적으로 대응한 도시농어촌 선교(Urban Rural Mission)의 산업선교와 도시빈민선교의 전통을 이어가는 교회들이다. 한데 산업선교와 도시빈민선교가 지닌 기구적 운동과 수도권 중심을 탈피하여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민중선교를 수행코자 한 것이다.

민중교회들은 1970년대에 빈민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이 시초를 이루었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수도권의 공단 및 빈민지역 그리고 지방의 공단지역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민중교회운동의 특징은 교단 민교(기장, 예장 통합, 감리교 등 3개 민교, 기타 교단은 지역에서 결합)과 지역 민교(구로, 시흥관악, 서울동부, 북인천, 동인천, 부천, 성남, 안양수원, 안산, 대전충남, 청주충북, 호남, 대구경북, 부산경남, 강원(준) 등 16개 지회)라는 이원적 구조로 이루어졌다.

교단 민교를 통해 민중교회운동에 참여할 목회자들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재생산구조와 기존 교회와의 네트워크를 이루었다고 하면, 지역 민교를 통해서는 지역운동과의 결합이나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했다. 그리고 이러한 교단 민교와 지역 민교를 통합하는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한민연)이 조직되어 있었다. 한민연은 매년 총회와 복음성가제를 개최하여 민중교회운동의 활성화를 주도했다. 90년대 중반 민중교회운동이 가장 활성화 되었을 때는 전국에 110여교회가 참여했다.

민중교회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뚜렷한 신학적 기반과 민중복음성가로 대표되는 민중교회의 신앙적 전통이었다. 민중교회는 민중신학을 기반으로 했다. 민중신학이 말하는 고난 받는 민중의 현장에서 해방과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교회라는 사건교회론 또는 현장교회론은 민중교회론의 주된 관심과 실천을 대변했다.

▲ 1987년 9월 23명의 민중교회 목회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매도 중지를 요청하기 위해 전경련을 방문했다. 경찰은 이들을 강제 연행한 뒤 감리교 조화순 목사 등 5명을 구속했다. ⓒ생명선교연대

실제로 많은 민중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참여하며 사건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신앙을 공유했다. 민중교회에서는 물론 기존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지만 주로 민중복음성가집(1집과 2집이 계속해서 출판되었다)에 수록되어 있는 당시의 운동가요와 사회적 복음성가(대표적인 작곡가들로는 백창우, 주현신, 류형선, 고승하 등)를 주로 불렀다. 이러한 민중복음성가는 민중교회의 신앙적 전통을 잘 표현해 주었고, 매년 한민연 주최로 민중복음성가 대동제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활성화 되던 민중교회운동도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인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등장이라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변화를 겪게 된다. 민중교회 목회자들은 민중신학의 사건교회론이 ‘교회의 살림살이’나 지역사회와의 결합에는 한계가 있다는 자성론이 일어났다. 또한 민중목회의 경험을 통해 계급으로서의 민중이 아닌 개별 인간으로서 민중경험을 통해 민중의 죄성에 대한 인식과 민중의 영적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영성운동과 생명선교로 교회의 선교적 관심을 넓혀나가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 도시빈민이 민중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여성, 장애인, 외국인(이주)노동자, 소수자 등으로 민중의 개념이 다변화되었고, 97년 한국경제위기로 인한 IMF사태 이후에는 실직자 노숙인 선교와 저소득층 청소년 선교로 선교적 다변화를 이루기도 했다.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생태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며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농촌과의 직거래운동이 활성화되고 아예 귀농하여 농사를 짓거나 교회를 이전하여 생명선교와 환경운동에 진력하는 교회들로 변화하기도 했다. 바로 여기에서 작은교회운동과 의 연결고리가 나타나는데 말하자면 작은교회운동은 산업화시대의 패러다임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통하여 나타난 교회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민중교회운동 만큼 한국교회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교회운동이 드문 것 같다. 민중교회운동에는 교단과 지역에서 문제의식이 있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의식적으로 참여하여 당시의 사회(복지)선교와 지역운동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지만 이러한 것이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은교회운동이 일어나는 데도 민중교회운동과의 직접적 관련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교회이긴 하지만 민중교회운동과 연결되어 작은교회운동을 전개하는 교회들이 있고, 내용적으로도 집단적 대안교회운동으로서 면면히 이어지는 신학적 전통이나 신앙적 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작은교회운동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 민중교회운동은 큰 자산이 되고 타산지석은 틀림없다 하겠다.

김영철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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