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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수준의 운동은 지속될 수 없다

기사승인 2018.05.18  22: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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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일상의 시대1

페이스북에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활동가의 고민을 나누는 마당이다. 각자의 운동단체에서 벌어지는 사연을 짧게 쓴 글이 주를 이룬다.

대체로 청년활동가인 듯싶다. 별별 하소연과 불만이 올라온다. 직접 대화하거나 목격한 일이 아니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소 과장되거나 감정 섞인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관되게 흐르는 맥락이 있다. 많은 청년활동가가 지금의 사회운동 풍토에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의 조아신은 대숲에 실린 266개 글을 분류했다.

▲ 조아신, ‘플랜B부터 대숲까지, 계속 말해왔던 이야기들’에서 인용. 주제의 순서를 재구성함 ⓒ조아신

글 몇 개 소개한다. 대숲의 #229번째, 글이다. “1. 수직적인 조직관계 2. 밤낮없이 오는 연락 3. 끝없는 업무 4. 조직역량을 넘어선 사업규모 5. 인격모독 6. 주말이 없는 삶 7. 저녁이 없는 삶 8. 기타 등등.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적고 싶은 사직서에 ‘일신상의 사유’만을 적어 내어 놓는 것은 그냥 이 조직에 아니 이 판에 정나미가 떨어졌음 입니다.”

#254번째, 글이다. “선배님들. 본인의 신념은 본인이나 잘 지키세요. 후배들이 안 따라준다고 요즘 젊은 것들은 열정도 없고 돈만 밝힌다고 떠들어대지 말구요. 내가 돈 밝히면 여기서 일을 왜합니까. 윗사람들끼리 지쳐 보인다고 챙기면서 젊은 활동가들은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그 마인드가 정말 꼴 보기 싫습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에는 혼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척, 일의 행복이 넘치는 척 좀 하지 마세요.... 진짜로 그 모든 일을 한 건 본인이 아니잖아요.”

#276번째, 글이다. “운동권 꼰대들... 정말 지긋지긋해요... 그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민사회판... 망할 거예요... 이미 운동판의 하나의 기득권 세력... 어린 간사들을 키워주고 자리 만들어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사회적 보상 나누어 먹고 정치권 넘어가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기회는 넘겨주지 않고. 다들 입에 풀칠하기 바쁜 거 알겠는데... 진짜 운동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후세대를 양성하는 데 힘 쏟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과거 8090 운동권 향수에 심취해서 젊은 사람들 소외시키지 말구요... 술자리에서도 그렇고 정말 신입활동가들은 꼰대들이 못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만져주며 실무 노가다만 오지게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이게 이 바닥 현실입니다. 미래가 없어요.”

글쓴이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른바 80세대로서 꼰대인 내가 볼 때도, 저러면 안 되는데 싶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물론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무의식중에, 또는 운동 대의라는 명분 아래 나보다 나이 적은 활동가와 청년활동가를 힘들게 할 것이다.

한때의 나는 스스로를 인력파견소장이라 너스레 떨었다. 마당발이라 그런지 많은 곳에서 활동가 추천 요청을 받았다. 주로 노동운동인데, 어림잡아 100명 안팎 추천한 것 같다. 요즘도 추천 요청이 심심찮게 들어온다. 그런데 심각한 상황이다. 예전엔 요모조모 보며 추천했는데, 지금은 하늘의 별따기다. 나이 들며 젊은 활동가 인맥이 줄어든 측면도 있겠으나, 활동가 층이 엷어진 요인이 더 크다. 두세 단계 걸쳐 줄을 놓아도 활동가를 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운동에 의미는 있지만, 여전히 힘들고 박한데다가 사회의 인식마저 별로인 상태라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나의 세대 운동가의 자녀 중에 대를 이어 운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긴 일상의 시대다. 짧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어느 단위도 혁명을 준비하거나 실천하지 않는다. 운동의 한구석에 말과 글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혁명의 시대라면 운동은 모든 것을 투여하고, 운동가는 가족 생계조차 뒷전으로 삼는다. 지금 그렇게 하는 단위나 운동가는 없다. 여전히 혁명을 외치는 이들조차 그렇게 살지 않는다. 혁명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긴 일상을 살아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의 답이 있다. 운동가들도 긴 일상을 살아가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청년운동가들마저 내 세대처럼 나이 들어 비루해지지 않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혁명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대의·당위만으로 헌신·열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긴 일상의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내 세대 운동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다음 세대 운동도 그렇게 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운동, 최저임금 수준의 운동, 더는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것을 청년운동가들이 감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운동을 줄여서라도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자식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힘들게 운동한다고 생각해 보라. (다음에 이어서)

한석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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