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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묻다

기사승인 2018.05.11  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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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서 분단을 다시보다』(신학대학교 탈(脫)분단 경계문화 연구원 편)

신문을 통해 새 책 발간 소식을 접하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쌓인 책들 탓에 책 구입을 미루려 하나 여전히 책상위엔 최근의 책들로 가득하다. 현실이 요구하는 시의적절한 연구물들이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까닭이다.

남북 정상들이 분단선을 넘나들었고 종전 후 경계가 된 판문점의 선언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힌 상황이었기에 『경계에서 분단을 다시 보다』는 현실을 읽는 길잡이 책이 되었다. 어느 곳에 위치한 대학인지 모르겠으나 신한대학교내 탈(脫)분단 경계문화 연구원에서 국내외 여러 학자들의 글을 묶어 출판했다. 여러 논문으로 구성되었기에 평소처럼 후기(後記)를 적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경계’의 중요성을 통해 분단을 재론하는 시각에 초점을 맞춰 서술할 생각으로 본 책을 택했다. 남북의 경계인 판문점이 평화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작금의 현실이 본 책의 취지와 중요성을 잘 드러낸다.

1.

본 책은 국내외 저자들의 논문 10편으로 구성되었다. 외국의 경우 분단의 경험을 지녔던 독일과 폴란드가 주제로 다뤄졌고 한국의 경우 비무장지대(DMZ), 서해5도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이 연구되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한국의 경우를 정리할 것이나 ‘경계연구’를 21세기 새로운 학문 추세로 본 데이비드 뉴먼이란 외국 저자의 첫 글을 중히 소개할 것이다.

책을 엮어 낸 연구소 원장 최완규도 10편의 논문에 앞서 펴내는 말을 길게 적었다. 근대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물로 생겨난 배타적 영토주권으로서의 경계(국경)를 넘어서려는 제시도의 의미성을 많이 강조했다. 경계지역의 양쪽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접촉문화가 형성되는 바 그로 인해 견고했던 분단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남북 정상이 만났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게 될 판문점, 본래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곳에서 새로운 기운이 생기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이해 될 일이다.

본 책 처음에 실린 시(詩) 일부를 소개한다. “담장을 싫어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담장 아래쪽의 땅을 얼어 부풀게 하고 위쪽의 돌 맹이들을 햇빛 속에 무너뜨려서 두 사람이 지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여기서 틈은 경계지역에서 생성 중인 문화라 말해도 좋겠다.

2.

첫 글은 ‘21세기 경계연구의 새로운 과제’로서 본 책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대들보 역할을 한다. 저자 에이비드 뉴먼은 경계란 존재하는 차이를 제도화한 것이지만 때론 접촉을 통해 열려지기도 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지금까지는 전자의 입장에서만 보았으나 이제는 후자의 시각에서 혼종성의 발생 장(場)으로 여기라 권면하였다.

주지하듯 모든 영역에서 경계(구획)란 사회적 질서를 위해 필요하겠으나 언제든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절대적 구획이 항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탓이다. 국경 역시 어느 국가든지 오랜 시간을 거쳐 변화되어 왔다. 사회적 정치적 구성물로서 권력관계에 의거하여 관리되어 왔던 것이다. 이점에서 권력을 지닌 자가 경계를 만든다는 말이 적대적으로 옳다. 종교들 역시도 뭇 경계를 만들어 왔었다. 이렇듯 경계는 배제와 포섭의 논리를 갖고 자신을 유지, 존속시켰다. 경계주변에서의 갈등은 그래서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 재(再)사유한다. 경계란 한 범주가 끝나고 새로운 범주가 시작되는 선(線)을 일컫는다고 본 까닭이다. 자연적으로 문화적 접경지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말했듯이 경계란 양쪽 문화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혼종성의 공간이라 했다. 갈등을 넘어 초경계적 협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점에서 저자는 분단을 상징했던 경계를 탈(脫)경계를 향한 이행지대라고 고쳐 불렀다. 역사적으로 경계를 넘는 움직임은 늘 있어 왔고 기독교 신학은 이를 성령의 역사라 했다.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영(靈)이 인간의 장벽을 허문다는 성서말씀에 따라서다. 목하 세계는 탈(脫)영토화, 탈(脫)경계화가 대세가 되었다. 경계가 열리는 시대에 접어들은 것이다. EU 공동체에서 보듯 지구화 담론, 곧 자본과 정보의 흐름이 경계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9.11 테러가 다시금 흐름을 차단시켜 경계를 닫히게 만들었다.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인위적인 장벽이 거듭 생기중이다. 멕시코와 미국의 불화, 시리아 난민의 유럽 이주 어려움이 구체적 사례일 것이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양쪽 집단을 상호 유익하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권력자들의 통치수단으로의 전락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경계를 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고 서로를 유익하게 만들기에 저자는 경계에 대한 학제 간 연구를 21세기 최대 과제라 여겼다.

3.

두 번째는 통일에 대한 접근법을 묻는 박배균의 글을 택했다. 제목은 ‘동아시아 접경지역 경제특구와 영토화와 탈영토화의 공간정치’이다. 지금껏 우리는 통일을 분단 이전의 하나 된 민족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라 배워왔었다. 하지만 동시에 당위적 통일에 회의 하는 시각도 점차 증가 추세다. 세계화 과정에서 민족개념이 의문시 된 탓이다. 그래서 통일보다는 평화적 공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탈(脫)분단이 곧 통일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영토에 대한 관계론적, 상대론적 시각을 주장한다. 즉 영토적 주권 개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통로로서 국경을 보라는 것이다. 실례로 휴전선(DMZ)만을 국경이라 여기는 우리에게 한/중/러 접경지역은 전혀 다른 경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토는 안보적 시각에서 고정불변한 영속적 속성이긴 하나 동시에 이동과 연결성이라는 탈(脫)영토화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일 수도 있다. 이동과 흐름을 방해하는 힘과 함께 경계를 뛰어 넘으려는 공간이란 말이다.

따라서 저자는 경계(국경)을 이동성과 영토성이 만나지는 ‘예외적 공간’이라 칭했고 중국 본토에 근접한 대만의 금문도와 남북한의 경계인 서해 5도를 실례로 들었다. 서해5도를 둘러 싼 영토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금번 남북대화를 통해 이곳이 항차 탈(脫)영토화될 것으로 믿곤 있으나 1, 2차 연평 해전이 이곳서 발발한 만큼 안보논리에 목멘 보수정치인들의 반발 또한 크게 예상된다.

주지하듯 백령도의 경우 대만의 금문도의 경우처럼 북한 지역과 근접해 있다. 북한 해주 지역과의 이동과 흐름이 본래 자유로운 곳이었다. 주지하듯 해류 흐름과 물고기의 이동은 인간이 만든 경계와 영토를 초월해 있다. 어족자원이 남북 경계(NLL)에 구애받지 않는 탓에 남북 간 충돌이 거듭 발생되었다. 하여 이곳을 탈(脫)경계화 시켜 남북어로 공동지역으로 제안한 적도 있었다.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남북 분단을 작은 규모나마 해결코자 한 것이다.

그러나 NLL이란 영토의 논리를 쉽게 벗을 수 없었던 탓에 무산되었다. 금문도의 경우처럼 대만과 중국이 성공했던 탈(脫)경계화를 우리 서해 5도의 경우 거듭 실패했다. 물론 단순 비교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말이다.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 역시 중단되었다. 안보논리를 내세워 역사를 후퇴시킨 보수정권 10년 과오를 역사가 혹독하게 평가할 것이다.

남북, 북미 간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영토화의 논리보다 탈영토화의 논리가 대세를 이루기를 소망할 일이다. 어족과 하늘 새처럼 사람들도 오가는 새로운 이동성 체제 하에서만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 먼 훗날 통일로 이어지면 더 좋은 일이겠다. 통일 자체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4.

세 번째로 발레리 줄레조란 서양 학자의 글 ‘한국학의 자기분열 - 공간적 경계에서 한국학의 분단적 사고’가 주목을 끌었다. 저자는 한반도를 나누는 경계를 문화, 인식론적으로 살폈다. 분단된 양쪽 상황을 과거로부터 존재했던 이 땅의 문화로 이해가능 할지를 물은 것이다. 분열의 한국학으로서 한국적 정체성을 말할 목적에서이다.

저자는 남북한 모두가 전쟁과 분단의 기억을 우선시하는 현실을 주목한다. 판문점은 바로 이런 ‘기억을 품은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경계가 지각되는 방식은 분단을 현실정치화 하는 것이겠으나 동시에 가상적 평화의 영역 곧 통일된 미래의 모습으로 구체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조선과 한국, 이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한다. 한국의 복수성이 현실인 한에서 ‘메타 경계’ 혹은 ‘메타 국가’란 말이 중요하다. 자기 분열적 경계를 넘어서야 할 책무가 있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분단 문제는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반(反) 혹은 탈(脫) 경계화의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인에게 주는 애정 어린 충고가 고맙다.

5.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은 도진순의 ‘남북한의 경계 허물기 - 강, 바다 그리고 죽은 자’였다. 평소 생태학적 관심 때문이기도 했으나 죽은 자에 대한 통찰에 가슴이 열리고 동(動)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전협정>에서 접경지대를 육지, 강 그리고 바다 세 종류로 언급한 것에 주목했다. 우선 한강하구는 육지의 비무장지대와 달리 군사분계선이 없고 민용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이에 대한 진보/보수 측 시각차가 여전하다.

하지만 <휴전협정>에 따라 노무현 정권은 당시 이곳을 해방구로 만들려 시도했었다. 앞서 말한 서해 5도 역시 남북 간에 합의된 경계선은 없고 UN서 정한 북방한계선(NLL)만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NLL로부터 이남 9해리까지가 늘 분쟁지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대통령 노무현이 이곳을 남북공동평화수역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이 평화지역이 되면 북쪽에서 폐기를 주장하는 NLL도 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스스로 NLL 포기를 선언했다는 보수 측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쌍방의 경계선 포기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강과 서해바다, 두 곳이 분단을 흔들 수 있는 입지라는 확고한 사실이다. 주지하듯 DMZ 역시도 세계 생태 평화 공원의 입지로서 회자 되었다.

2000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을 공유하는 평화 생태공원은 가슴 뛰게 하는 일이었다. 인간과 인간간의 평화를 넘어 인간과 자연간의 평화 개념이 제시된 까닭이다. 물론 전자 없는 후자는 존재할 수 없다. 전쟁 비극의 상처를 평화를 위한 보물로 재창조 수 있는 방책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첫 삽을 뜰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곳서 죽은 자들을 위한 추모공원 만드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산자들에 의해 죽은 자들을 각기 열사, 영웅으로 숭배하기보다 참혹한 전쟁의 전사자로서 합당한 기억장치를 통해 상호 대립을 허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육지, 강, 바다에서부터 남북 경계를 허물 수 있기를 바랐다. 한반도 위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기에 더욱 희망적이다. 전사자들을 영웅이 아니라 희생양으로 기억하는 장치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죽은 자들이 각자의 진영논리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말 할 수 있게 한다면 그 출발을 눈앞에 둘 수 있을 것이다.

6.

마지막으로 택한 글은 프랑크 비애가 쓴 ‘샴쌍둥이 국가 - 경계 상 분리와 합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한 몸 위에 두 개의 머리를 갖고 태어난 생명체에 비유하여 분단과 통일을 사고하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저자는 남북한 국경지역인 DMZ를 양 극단이 지배하는 괴물로 비유했다. 평화의 공간이나 가장 많은 지뢰가 묻혀 있고, 과잉의 경계(절연) 탓에 생태계 보고(寶庫)가 되었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 DMZ의 경계가 남북 양쪽을 통약불가능한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화해 불가능한 정치체제로 운영되나 역사적 운명체이기에 분리될 수 없는 곳이 한반도 내의 남북 실상이다. 서로에게 극단적 타자이면서도 분리될 수 없는 샴쌍둥이와 비견될 수 있는 이유이다. 둘은 동일하나 전혀 다르다. 이런 n 쌍둥이 모델을 갖고서 저자는 국경을 정교하게 이론화 시켰다.

국경선이란 경계에서 나타나는 자/타 간의 긴장, 즉 중간지대인 국경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엮어지는 모방의 이중과정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남/북은 통과 불가능한 DMZ의 경계처럼 상호 대립했으며 오염을 피하듯이 긴 세월 접촉을 삼갔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불리 울 만큼 그렇게 말이다. 이렇듯 자신을 분리시켰음에도 한반도 양측은 완전한 분리를 이룰 수 없었다. 상대는 외부적 타자가 아니라 자신의 비체적(abjective) 일부였던 탓이다. 비체란 주체와 인접하여 가깝게 존재하나 동화될 수 없는 존재를 일컫는다. 보기 싫은 비천한 자신의 다른 모습이라 말해도 좋겠다.

그러나 일시적 비체화로서 언젠가는 이 둘은 하나의 실체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정체성을 뒤흔들고 안정을 위협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남과 북은 봉쇄와 유출(흐름)사이의 기로에 있다. 남/북, 민주/전체, 자본/공산, 자유/억압, 이들의 관계는 대립과 상보 중 하나이다. 자율적이나 타자와 대립했기에 이들은 특이성과 쌍생성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주요 장기를 공유한(한 몸) n 쌍둥이처럼 타자/자아는 분리될 수 없다. 샴쌍둥이에게 개인성은 수용 불가능하다. 별개의 인간이지만 항시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신들 몸의 절반만 완벽하게 통제한다. 심장, 위 척추는 각자가 지녔으나 방강, 대장, 간 생식기관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하면서 협력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물론 각자가 선호하는 취향이 있으나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북 간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조율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양자 간 분리는 죽음으로 귀결될 뿐이기에 말이다. 화해와 재통합을 위해 자신들 독립(개체)성은 감소되어야 옳다. 남쪽은 민주주의, 근대 그리고 경제적 성취(물신화)를 북쪽은 권위주의, 근대성의 결여, 경제적 실패 등을 대변하나 양측은 상대방의 그 존재성을 통해서 구조화 될 수 있었다. 상호간 차이를 자신을 정의해 왔던 까닭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변화는 다른 쪽의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주체는 자신이 배제한 타자에 의해서만 새롭게 재주체화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자성은 향후 자아동일성을 결코 보장받을 수 없다. 저자는 샴 쌍둥이성(性)이 가장 극명하게 들어나는 곳을 DMZ라 여겼다. 분리(절연)에 대한 지배적 충동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상호 보완을 위한 복합적인 공간구역인 까닭이다. 거듭 말하지만 저자는 분단의 상징인 DMZ를 비체화된 괴물이라 일컬었다. 남과 북은 서로에게 상실된 사지(四肢)와 같은 것으로서 환상 통(痛)을 일으키는 주체로 재정의 했다. 그 아픔을 느낄 때 DMZ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미개척지의 위상을 지닐 수 있다고 저자는 믿었다.

7.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시점에서 본 책 『경계에서 분단을 다시보다』가 출간되었다. 글을 쓰고 엮은이들이 우리보다 이 땅에 드리워진 좋은 기운을 먼저 예감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분단, 경계를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우리에게 그것이 오히려 절연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인 것을 알려주었다. 이는 물론 종래와 같은 민족주의 차원의 통일을 포기할 때 생각될 수 있는 방책일 것이다. 통일보다는 평화가 우선이라는 시대 적합한 가치를 잘 밝혀 주었다.

끝으로 본 책 마지막 글에서 인용문을 하나 소개함으로 본고를 마감코자 한다.

“경계에 서서 경계의 양 측에서 공명하는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주하는 감각인 동시에 내 주체성의 조건이다...”(제인 진 카이젠).

이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제3국은 물론 평양도 좋겠으나 DMZ 지역 속의 판문점이야 말로 대화의 진정성을 담보할 최적의 공간일 것이다. 본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 한중일 정상들이 비핵화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를 위해 탈(脫)경계를 선언하였다. 경계를 공유한 남북의 변화가 동북아 주변은 물론 세계를 변화 시킬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감한다. 세계 평화는 남북 평화로부터 시작된다.(안타깝게도 본 글을 발송하기 직전 북미 정상회의 개최지로 싱가포르가 정해졌다).

이정배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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