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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개신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8.03.15  03: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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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CC와 기장 제주노회, 제주4.3평화기행

3월14일,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남재영 목사)와 제주NCC(회장 이상구 목사[기감], 총무 김인주 목사[예장 통합])가 공동주최 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노회장 손범준 목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정훈 목사)의 주관으로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평화기행’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기행 첫날 교계인사 7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주 4.3평화공원 등 4.3유적지를 찾았다.

▲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평화기행’ 첫날 교계인사 70여 명이 4.3평화공원을 참배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정훈 목사, 양조훈 이사장, 박철수 사관, 최형묵 목사, 김기리 사제. ⓒ윤병희

올해로 ‘제주4.3’이 70주년이 되었지만, NCCK가 4.3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는 해마다 4.3평화공원을 공식참배를 해 온 바 있다.

아직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개신교

NCCK 관계자는 “그동안 개신교는 4.3을 주제로 다룰 수 없었다.”며 그동안 개신교가 4.3을 다룰 수 없었던 정황을 설명한다.

“이번에 개신교의 평화기행은 첫걸음을 떼서 지금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지 화해가 가능이나 할까? 아직도 피해 당사자들에게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라는 이 한마디 못하는데 무슨 화해를 할 수 있겠나?”며 개신교와 4.3의 불편한 관계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평화기행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부와 당사자는 화해를 해 나가려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아무것도 안 하고서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우리 화해합시다.’ 하는 꼴이다. 그것은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해를 했으면 피해자에게 잘못했다고 해야지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고 용서받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조차도 꺼낼 수 없는 이 4.3이라고 하는 이 예민한 문제를 풀기 위해 이제 시작을 하자는 것이다. 화해를 향해 가는 시작을 하자는 것이고 또한 정의로운 화해의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 이번 4.3평화기행의 의도다.”

참가자들은 4.3제단에 참배, 헌화하고 분향한 후 위패봉안소 등 평화공원 곳곳을 두루 탕방했다. 이들은 제주4.3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의 강연을 들은 후,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아 4.3 생존자의 증언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나서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제주4.3에 서북청년회와 영락교회 등 교회와 목회자의 책임을 자세히 연구한 최태육 목사의 세미나에 참석했다.(이 세미나의 발표문은 곧 입수되는대로 에큐메니안에 게재할 예정이다.)

개신교의 죄책고백은 언제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최형묵 목사는 에큐메니안에 소감을 밝혔다. NCCK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인 최형묵 목사가 이번 평화기행에 NCCK의 실질적인 대표격으로 참여했다.

“직접 와서 체험자의 증언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4.3에 대해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생생히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4.3 생존자의 증언을 듣고 실상을 실감했다. 새삼스럽지만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이 4.3에 대해 자유롭지 않은데 어떤 형태로든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즉 화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노력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카톨릭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불교는 사찰 등 피해받은 게 많은 입장이니까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데, 개신교는 피해자도 있지만 상당수가 가해자 역할을 했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치유와 화해를 위해서는 개신교가 이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제일 좋은 것은 개신교가 가해자로 역할했던 것을 죄책고백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려운 문제다.”

▲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위패봉안실에서 기장 제주노회 송영섭 목사가 “4.3사건의 희생자는 약 3만명으로 추청되지만, 여기 위패봉안실에는 14,231명안이 모셔져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윤병희

흔히 제주 4.3사건이라고 통칭되지만 공식적인 명칭은 없다. 그저 4.3으로 불릴 뿐이다. 이 사건은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을 일컫는다. 일본제국의 패망 이후 남북한의 분단이 발단이 되어 봉기한 남조선로동당 무장대와 미군정과 국군, 경찰간의 충돌 과정과, 이승만 정권 이후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벌어진 초토화 작전 및 무장대의 학살로 많은 제주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4월3일 그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에서 단독으로 무장대 조직, 기습에서부터 시작되어 제주 4.3사건이라고 불리지만 그 날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1947년 3월 1일부터 한국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계속된,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로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더불어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윤병희 ubiquitas@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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