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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훌륭하게”-上善若水

기사승인 2018.02.26  22: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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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08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싸우지 않으니 훌륭하다.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거하니, 그러므로 道와 가깝다. 땅에 거하니 훌륭하고, 마음이 깊으니 훌륭하고, 仁에 참여하니 훌륭하고, 말에 신뢰가 있으니 훌륭하고, 바르게 다스리는 훌륭하고, 일에 능하니 훌륭하고, 때 맞춰 움직이니 훌륭하다. 대저 오직 싸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 노자, 『도덕경』, 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노자는 물을 비유로 들면서 낮고 천하게 여기는 자연계의 도를 따르는 정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를 따르는 정치는 백성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선(善)은 자연의 도에 따라 잘 다스리는 정치를 의미하고, 싸우지 않는 것은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과 싸우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과도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물은 어디에 담아도 물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개인적으로도 삶의 모범으로 삼아 실천하기에도 좋습니다. 물은 남에게 이로움도 주지만, 남과 다투지 않고 부딪히면 돌아갑니다. 항상 낮은 곳을 향하여 가면서 낮은 곳에 있으니 겸손합니다. 사는 곳은 땅 위가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고 고요한 것이 좋으며, 벗은 어진 사람이 좋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습니다. 정치는 잘 다스리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적당한 때를 가려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이 이렇게 하니 다투지 않고, 잘못됨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물과 같이 되는 것을 최상의 선이라고 합니다.

물의 일곱 가지 덕은
첫째,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둘째,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셋째, 구정물까지 받아주는 '포용력'
넷째,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다섯째, 바위도 뚫는 '인내와 끈기'
여섯째,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
일곱째, 유유히 흐르는 '대의'
이렇게 물은 우리에게 덕의 향기를 줍니다.

또한 물이 최상의 선인 것은 항상 흐른다는 것에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장에 이상이 있어서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신장에서 노폐물을 걸러내고 만들어진 물이 방광으로 흘러야 하는데, 요관이 막혀서 흐르지 못하니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요관이 막히니 신장이 붓고, 몸 전체를 흐르는 혈액에 노폐물이 쌓이고, 고혈압의 원인이 됩니다. 몸 안의 한 부분이 막히니 몸 전체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막힘과 단절을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이 그 막힘과 단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했던 가장 많은 일은 막힘과 관계의 단절을 회복시키는 치유행위였습니다. 물처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막힘과 단절을 뚫고 사랑을 흐르게 하는 일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선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망가진 육체를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단절된 관계들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은 나병에 걸렸던 사람과 예수님이 함께 이루어낸 해방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치유의 기적이 아니라 억압적 제도나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사람을 회복시키는 행동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극도로 비인간화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지배 이념의 충실한 시녀로 전락해버린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악의 숨결과 대면할 힘과 의지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한 숨결을 뿜어내면서 인간성을 오염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사람의 회복, 인간됨의 회복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따라 살려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직하게 마주 서서 당당하 수 있습니다. 당당함은 당돌함, 뻔뻔함, 싸가지 없음과는 다릅니다. 예의 없는 당당함은 싸가지 없음이요, 근거 없는 당당함은 뻔뻔함이요, 조금은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당당함은 당돌함입니다. 거짓을 속에 품은 당당함은 타인을 향한 폭력입니다. 정부와 공권력은 뻔뻔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당당하게 국민을 대해야 합니다. 당당함의 근원이 돈과 권력에 있지 않고, 독선과 오만에도 있지 않습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당당하게”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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