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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창33:1-4, 딤후 4:5-22)

기사승인 2017.12.08  00: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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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작하는 용기를 가지고

약 75여년 전 미국 피츠버그제일장로교회를 담임하시던 맥카시 목사님께서 9월 첫 주일에 이 본문을 갖고 설교하셨습니다.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은 교인들이 매년 같은 설교를 반복해달라고 특별요청을 하였고, 당회에서는 이를 아예 결의사항으로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맥카시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40년 동안 매년 이 설교를 40회 반복하셨습니다.

한 35년 전 미국장로교단에서는 제일 큰 아틀란타의 피치트리장로교회의 해링톤 목사께서 이 얘기를 듣고 20년째 같은 설교를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해링톤 목사님을 통해 이를 알고 난 저도 미국에서 목회할 때 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설교를 듣고 그렇게 시작한 주변의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제가 향린교회에 와서 보니 김호식 목사님 또한 그렇게 하셨더군요.

그런데 매년 하겠다고 말은 해놓고서는 미국에서도 서너번을 하고는 그쳤고, 향린교회에 와서도 두 번하고 그쳤고 그게 10년 전입니다. 당회의 결의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합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일부러 두 번을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본문을 반복하는 것이 제게는 쉽지 않은 일이고 같은 본문이라도 새로운 각도에서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3년마다 반복이 되는 성서일과에 따라 하늘뜻펴기를 시작한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안에는 4개의 본문이 있으니까 강조하는 본문을 바꿔가며 하기에 설교 자체를 반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초에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갑작스레 오늘의 본문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예전에 했던 설교를 찾아보니 약 30년간의 목회의 여정이 새롭게 떠올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 활동으로 열성 유대인들로부터 로마법을 어겼다고 하여 고소를 당한 것입니다.

6절에서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바울로는 이미 사형언도를 받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고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디모데는 바울을 제2의 아버지로 모셨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낼 당시에는 디모데는 자신이 개척한 에페소교회의 목회자로 있었습니다.

진정 바울로가 원했던 바는?

편지의 내용인즉 몇 가지 부탁을 하면서 자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와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라고 단서를 붙이는 것은 겨울이 되면 에베소에서 로마로 가는 뱃길에는 예측할 수 없는 강풍이 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27장에서 죄수의 몸으로 잡혀가던 바울 자신이 유라퀼라라는 강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여 죽음 직전에 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겨울 전에 오라는 말은 빨리 오라는 의미보다는 디모데의 안전을 염려하는 말이었습니다.

디모데에게 세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째는 어두컴컴하고 습기 찬 로마의 감옥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외투가 필요했습니다. 이 외투는 그가 평소에 입던 옷인데 드로아에 있는 가르포 집에 두고 왔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어쩌면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탁을 하면 그곳에서 더 좋은 외투를 구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입던 외투를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 외투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교인이 손수 만들어 준 외투였을 것이고, 또한 그 외투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받은 박해의 흔적이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몽둥이로 맞을 때의 핏자국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선교여행 중에 산길에서 맹수를 만나 찢긴 자국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생의 마지막 자리에서 교우들의 사랑이 담겨있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의 흔적이 남아있는 외투를 원했던 것입니다. 혹 여러분의 옷장 속에도 어떤 추억이 담긴 옷이 있지 않습니까? 사이즈도 맞지 않고 색깔은 바랬지만 그래도 굳이 간직하고 있는 옷.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시신을 관에 넣을 때, 베옷을 입힙니다만, 저는 서양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신이 입던 옷을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하여 왔기에 몇 년 전 한 권사님께서는 한복을 입고 가신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시신을 꽁꽁 묶는 방식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유언장쓰기를 한번 하고 싶긴 한데, 혹 기회가 되면 여러분 자식들에게 그렇게 말씀을 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감옥에 갇혔을 당시 바울은 매우 외롭습니다. 그와 함께 하던 믿음의 제자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떠났습니다. 예수 믿으면 좋을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자 바울을 버린 것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레스겐스와 디도도 각기 다른 곳으로 갔고, 주치의 역할을 했던 누가만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옥에 갇힌 일이 별로 없습니다. 두 번 있었지만, 이는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장기수들의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하시던군요. 30년째 옥살이를 하고 계신던 한 장기수 선생님을 면회를 갔더니 그분이 면회실에 들어오더니 ‘면회실이 이렇게 생겼군요.’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30년만에 처음 면회를 하신 것입니다. 남쪽에는 가까운 가족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면회도 없었고, 서신 왕래도 없이 정말 외롭게 독방 옥살이를 30년동안 하여 오셨던 것이지요.

바울은 외투와 함께 양피지로 만든 책들을 갖고 오라고 부탁하는데, 이는 아마도 제1성서 중 일부일 것입니다. 이 또한 교인들에게 부탁하면 로마에서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외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때가 묻은 책을 원했습니다. 밑줄도 처 있고, 뭔가 여백에 글도 써 놓은 자기 성경책을 갖다 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읽던 성서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여러분의 과거가 담겨 있고, 미래의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또 한 가지를 부탁하는데, 이는 물건이 아닌 마가를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함께 출발했던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 여행 초기에 그만 하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려가기를 원했는데, 바울이 반대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은 이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심한 언쟁 끝에 서로 헤어져서 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각각 다른 길을 떠났다.’ 믿는 사람들이 의견이 갈라질 때에 흔히 이용하는 구절입니다.

바나바와 바울 이 두 사람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겼던 동역자였습니다. 1차 선교여행에서 죽음의 고개를 함께 넘었던 끈끈한 동지였습니다. 지금은 바울이 예수 이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실상 바울은 바나바가 없었다면 그냥 고향 다소에서 묻혀 무명의 한 인간으로 그 삶을 마칠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 거듭났지만, 과거 교회를 핍박했던 악명 높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교인들이 모두 그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의 고향까지 가서 그를 데려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나바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평생 잊지 못할 은인입니다. 그 은인의 소원을 한번 들어주어 마가를 선교 여행에 데려가는 일이 무슨 큰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고집불통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설득을 했을 것입니다. 마가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잘 해보겠다고 하니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 그러나 바울은 이를 끝내 거절하였고 결국 이 두 사람은 각기 제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바나바는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사도행전은 아무런 단서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저자 누가가 바울의 얘기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화해

안디옥 교회의 자랑거리요 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로 인해 영원히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마가라는 인간은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으리라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마가를 다시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고 바울은 당시 내가 너무 고집을 피웠구나 하고 후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마음으로 후회하는 것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후회하는 일로 그치지 않고 그를 직접 만나 용서를 빌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가는 내가 하는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이니 그를 데리고 오시오.’ 복음사역의 동역자로 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편지로도 화해의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마가를 직접 만나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그를 포옹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났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가 바울의 마지막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만났다고 한다면 서로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고 껴안는 순간은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가슴 뭉클한 순간이 많이 있지만, 미워하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나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손을 내밀고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포옹하는 순간처럼 아름답고 감격적인 순간은 없을 것입니다.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의 만남. 세상에 둘도 없는 혈육지간.

그러나 야곱의 간계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는 그를 죽이고자 했고, 야곱은 이를 피해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 방황해야 했습니다. 이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단합니다. 그러나 형이 그를 용서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얍복강에서 하느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만납니다.

이 두 형제가 20년 만에 서로 만나 화해하고 껴안는 장면은 보고 또 보아도 감동적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남과 북의 두 형제들이 함께 만나 화해하고 포옹하는 모습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온 민족이 함께 일어나 그동안 우리가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눈물로 고백하는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서한다고 하는 것 그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물론,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자신을 움직일 때 가능합니다. 이제 남은 질문 하나는 과연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자말자 즉시 마가에게 연락을 하고 외투와 양피지 책을 찾아 로마를 향해 떠났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한 교인이 중병에 걸려 한주 두주 지체하다가 겨울 폭풍 전에 떠나는 마지막 배를 놓쳤든지 아니면 교회 건축을 하느라 겨울을 지나 봄에 로마에 갔다고 가정을 해보십시다. 그가 감옥을 찾아갔습니다. 바울을 면회하러 왔다고 하니까, 간수가 신경질을 부리면서 그런 사람은 여기 없다고 소리를 칩니다.

낙담이 된 디모데는 혹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았을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다가 로마 교회의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아 당신이 바로 바울 선생께서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디모데이시군요. 바울 선생은 지난 겨울 차가운 새벽에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혹 디모데가 오거든 내가 정말 사랑했노라고 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디모데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것입니다. ‘아 그때 만사를 제쳐놓고 왔어야 했는데.. 왜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

가끔 교우들이 이런 말씀 하는 것을 듣습니다. ‘제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믿음생활을 잘 해볼 수 있을텐데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전 속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교우님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사실, 인생은 조금 미루다가 영원히 미완성으로 그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바로 할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 만약에 지금 당장 시작한다면 늦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작도 하지 못하면서 후회한다면 이는 후회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일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시간입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오늘만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지 못하는 일을 내일 한다고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뭐라고 얘기하면 내일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일이 되어도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교회봉사도 사회선교도 그러합니다. 생활이 안정되면, 이번 일만 잘 되면...

제 목회 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평생 그러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10년 전 신앙생활에 미지근한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미지근합니다. 10년 전에 시간이 없는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고 없고는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돈은 아꼈다가 후에 쓸 수 있지만, 시간은 보관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아껴 쓰라는 바울의 말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말입니다. 목회자들끼리 만나면 그렇게 얘기합니다. 일은 시간 없는 사람이 하지, 시간 많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과 국가보안법

바울이 옥에 갇힌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로마는 예수는 물론 그를 따르는 베드로를 비롯한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자들을 죽였을까요? 그냥 죽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정치범들을 처형하는 가장 악독한 처형방식입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로마는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이유라면 스데반의 경우와같이 유대종교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믿음의 행위는 종교의 문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였고 국가지배 체제의 문제였습니다. 유대 율법주의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겉으로는 전통의 고수였지만 안으로는 체제옹호였습니다.

본래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황제가 전하는 전쟁 승리의 복음에 反하는 단어였습니다. 군사의 힘에 기초한 소수의 지배자들에게만 기쁨이 되는 복음이 아닌 가난한 자 눌린 자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는 것이 참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남한의 현실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복음을 반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 전체로 볼 때, 가장 큰 복음은 남과 북이 함께 만나는 일입니다.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고 미워하던 형제가 화해하는 그 순간이 가장 큰 복음입니다. 이 만남을 방해하는 것 그건 국가보안법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진정한 조선 사람이 되기 위해 남한으로 유학을 왔다가 형과 함께 <유학생 간첩>으로 체포되어 무려 17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서준식 선생이 30년 전 1987년 12월 마지막 날에 동생 서경식씨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경식아 보아라. 인간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하여 인간다워진다고 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존재함>이란 <대화함>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랫동안 만남도 없고 대화도 없다. 돌멩이처럼 고집스런 거부와 저항의 세월에는 만남과 대화 대신 숙명적 책임이 있을 뿐. 이렇게 나는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조금씩 돌멩이를 닮아왔다. 때로 무척 인간다워지고 싶었던 돌멩이의 슬픈 밤들.... 그러나 삶이란 어차피 무엇이든지 고루 갖추어진 완벽한 것은 아닐터이다. 소중한 한 가지를 버리는 바로 그 아픔이, 나에게 남아 있는 다른 한 가지를 더욱 아름답게 키워주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의 삶이란 이런 식으로 소중한 것을 버리는 아픔 속에서 그 나름대로 완성으로 완성으로 무르익어가는 것이리라...... 어차피 나는 돌멩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버렸기에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는 돌멩이라면, 나는 아무래도 버려야 할 것에 미련을 두지 않으련다. 나의 인생을 저주하지 않으련다.
<고뇌를 뚫고 떠오르는 희망>, 옥중서간집, 334쪽

서준식 선생은 철장에 갇힌 자신을 ‘하나의 돌멩이’에 비유합니다. 하루 종일 벽을 향해 앉아 있어야 했던 젊음의 날, 7년의 형기를 마쳤지만, <사회안전법>이라는 새로운 법망에 갇혀 또 다시 10년을 영어의 몸으로 살아가야 했던 그는 바깥의 삶에 대한 희망을 끊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그는 자신의 하루하루를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장군이 그 세력을 크게 떨치던 12월 30일 그는 돌멩이를 닮아가던 자신이 결국은 돌멩이가 되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벽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양심수들이 옥에 갇혀 있습니다. 옥에 갇히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쁘다고 하고 멸공을 외쳐야 합니다. 어제도 광화문 한쪽에서는 촛불시민들이 또 다른 쪽에서는 친박계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한쪽은 전쟁광 트럼프는 오지말라고 외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트럼프를 구세주로 여겨 옥에 갇힌 박근혜를 꺼내달라고 읍소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사의 모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내일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삼보일보를 걷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의 믿음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라는 예수의 길에 나섭시다.  

조헌정 choshalom@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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