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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하빈이는 안녕할까

기사승인 2017.10.17  01: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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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긴 한가위 연휴가 끝나갈 무렵 불현 듯 하빈(가명)이 생각이 났다. 서른 중후반 청년, 자부심 강한 연기예술가다. 소극장에서 공연한 여러 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영화 출연도 꾸준히 모색했으나 제대로 된 역은 아직 맡아보지 못했다. 불문학을 전공해 파리 유학까지 다녀오고야 연기가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숨겨져 있던 자기 욕구임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대학로 극장가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출연도 하면서, 재미있고 보람찬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수입은 한 푼도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도 한두 해였다. 자립을 조건으로 월세 반지하방 보증금을 지원 받으며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는 지자체 부설 문화센터의 불어 화화교실의 강사, 저녁에는 주류회사의 판촉 도우미로 뛰었다. 오전 알바는 전공도 살리고 큰 힘도 들지 않았으나, 재능기부 차원의 봉사활동으로 차비 정도 받는 수준이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녁 알바는 수입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술집마다 돌아다니며 취객을 상대로 일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술을 핑계로 막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는 취객을 만나면, 쓸데없는 감정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공연이라든지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주로 저녁에 이루어지는데, 알바와 시간이 겹쳐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정권교체가 우리네 삶의 희망이라고 생각했었다. ⓒ리얼미터 인용

그러나 집세 등 공과금이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모처럼 연극 공연이 잡히면 두어 달 정도는 알바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정말 힘든 것은,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처럼 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예술행위로 승화시켜 우리 문화와 삶을 풍부하게 하는 연기자들을, 전문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와 사회구조가 절망을 키우고 있었다.

하빈이와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풀이에서였다.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는데, 조금은 주눅이 든 것 같은 태도였으나, 영화 얘기를 나누면서 자기 세계가 분명한 당돌한 면도 엿보여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맥주와 함께 나온 안주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라봤더니 민망했는지, “사실은 알바하고 달려오느라 점심을 못 먹어서요.” 하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 여러 가지를 얘기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마치고 따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해 준 솔직한 얘기가 고맙기도 해서 인연이 된 것이다.

전화를 했더니 마침 반갑게 받았다. 테라스가 있는 네팔 티베트 전문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조금 우울해 보였다. 염치도 없고 또 가면 이것저것 묻는 게 부담스러워, 없는 공연 핑계 대며 고향 집에는 가지 않았단다. 연휴가 길어 처음에는 쉬기도 하고 마음껏 책도 읽고 좋았는데, 한가위 날이 지나며 엄습해 오는 외로움에 몹시 힘들었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눈망울이 잠시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죠. 노량진 공시촌에서 라면이나 컵밥으로 추석을 보낸 젊은 친구들도 그렇구요, 원룸 쪽방에서 혼자 소주잔 기울이며 차례도 못 지낸 독거노인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며 씩 웃는다.

연극이나 영화판도 빈익빈부익부여서 자기 같은 돈도 인맥도 없는 연기자는 설 자리도 없다고 하면서도, 정권도 바뀌고 세상도 달라지고 있으니 뭔가 희망도 생기지 않겠냐며, 애써 밝게 웃는 얼굴 뒤로 가을바람이 쓸쓸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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